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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사 일반
· ISBN : 9791167072443
· 쪽수 : 280쪽
· 출판일 : 2026-08-15
책 소개
목차
간행사|서문|감사의 말
1. 우리가 몰랐던 일본제국의 ‘주변국 선점’ 정책 37
1) 자본주의 경제발달과 무관한 요시다 쇼인의 ‘주변국 선점론’
2) 운요호 사건, 조선에 시행해 본 ‘주변국 선점’ 정책의 최초 사례
3) ‘주변국 선점’ 정책, 대한제국의 자력 근대화 성과 파괴
2. 수구-개화파의 근대사 설명 틀, 과연 바른 것인가? 49
1) 연원으로서 ‘유교 망국론’, ‘세도정치론’
2) 임오군란(1882) 때 등장한 조선 개진당(開進党) 명단
3) 1884년 10월 갑신정변과 일본 수뇌부
4) 청일전쟁(1894) 전후 수구-개화 프레임 고착과 일본 역사 교과서
5) ‘민씨 세도’가 용납되지 않는 청년 군주 고종의 왕정 수련
3. 새롭게 주목해야 할 청일전쟁 중 이루어진 ‘국민’ 창출의 역사 110
1) 1894년 10-12월 동학 농민군의 근왕(勤王) 항일 투쟁
2) 동학 농민군의 분전에 답한 군주 고종의 「교육 조칙(詔勅)」 반포(1895.2.26.)
3) 「교육 조칙」으로 동학, 서학이 하나가 된 국민 탄생의 역사
4) 갑오개혁, 일본의 친일 개혁 강요에 맞선 조선 정부의 자주적 대응 성과
5) ‘국민 탄생’을 위한 한글 세계의 창출, 『독립신문』 창간
4. 대한제국의 ‘광무 토지측량[量田] 사업’, 그 계기와 성과 139
1) 동학 농민군의 「보국안민」 여망을 담은 이기(李沂)의 ‘토지측량[양전] 사업’ 건의
2) 워 싱턴 D.C.를 모델로 한 서울 도시개조사업-대한제국의 황성 만들기
3) ‘광무 토지측량 사업’으로 상승하는 대한제국의 재정 실황
5. 다시 살펴보는 1919년 독립 만세운동의 안팎 175
1) 1909년 3월 15일 태황제 고종의 주권 이양 선언
2) 고종황제 ‘독살’에 대한 근왕 국민 대중의 거국적 항변3,· 1 독립 만세운동
3) 또 하나의 ‘근왕’ 국민의식 발현 역사 「대동단 선언(」1919.11.)
6. 임시정부 국권 회복 운동, 국제연맹(LN)을 움직였다 188
1) 대한제국의 ‘1905년 보호조약’ 무효 운동의 한계
2)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 대표부의 국권 회복 운동
3) 1935년 국제연맹의 ‘1905년 보호조약’ 무효 판정
4) 1963년 국제연합(UN) 총회의 ‘1905년 보호조약’ 무효 판정 수용
상권을 마치며 231
[사진 차례]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1 — 일본제국 파멸의 주범 요시다 쇼인 숭배의 현장 40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2 — 강화도 초지진에 나타난 운요호, 일본 국기를 달지 않았다. 44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3 — 1880년대 조선 왕궁(건청궁, 경복궁 북단)의 서양 전기 문명 시설 47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4 — 임오군란 때, 일본 공사관은 일본인 직원들이 불태우고 달아났다 62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5 — 구미 열강과 맺은 최초의 조약, 「조미수호통상조약」 75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6 — 이토 히로부미가 조종한 갑신정변, ‘대동아전쟁’ 선전 도구로까지 81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7 — 1902년 한국 역사 병합부터 먼저 한 일본제국 문부성 95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8 — 청년 군주 고종, 근대 서양 과학 지식을 읽다 105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9 — 메이지 천황을 격노하게 한 일본군의 ‘경복궁 침입’ 사건 112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10 — 고종, 마침내 동학 농민군의 뜻을 끌어안다 116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11 — ‘국민 탄생’을 위한 한글 세계 창출, 『독립신문』 창간의 진실 134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12 — 워싱턴 D.C.를 모델로 한 서울 도시개조사업 147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13 — 서울에서 역사로 만나는 해학 이기와 버튼 홈스 156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14 — 대한제국의 국고(國庫) 은행과 중앙은행의 수난 168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15 — 1919년 파리 강화회의 대표로 떠난 김규식과 고종황제의 죽음 200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16 — 1935년 국제연맹의 ‘1905년 보호조약’의 불법 무효 판정 217
사진으로 읽는 근대사 17 — 1905-10년 국권 피탈 조약 원본의 실태, 너무나 뚜렷한 강제의 증거들 225
저자소개
책속에서
이 모든 개혁의 성과와 노력은 1904년 2월 러일전쟁의 발발로 중단되거나 시설물들을 일본에 빼앗기고 말았다. 고종의 근대화는 어디까지나 일본제국의 ‘주변국 선점정책’에 짓밟히고 저지된 것이지 근대화 지향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결단코 아니다. 조선·대한제국의 근대화 노력의 진실 앞에 우리는 일본제국의 ‘주변국 선점’ 정책의 혼자 살아남기 침략주의의 잘못을 먼저 비판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전후 일본 역사학계가 제국 시대 ‘주변국 선점’ 정책의 잘못에 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도 크게 문제 삼아야 할 것이다.
―1. 우리가 몰랐던 일본제국의 ‘주변국 선점’ 정책
『근세조선정감』을 열심히 읽은 나카 미치요는 1894년 청일전쟁 개전 직전에 일본 중등 역사 교육의 정비 강화를 제안하였다. 교과서의 이름이 본방사, 지나사, 외국사 등으로 제멋대로 붙여진 것을 일본사, 동양사, 서양사 셋으로 바꾸어 통일하고 그 내용도 문부성 ‘지침’에 따르게 하였다. 8년간의 준비 끝에 나온 결과물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동양사였다. 지나사(중국사)에 북방의 여러 유목민족사를 합친 동양사는 중원이 한족(漢族)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다시 말하면 어느 한 유목민족이 강성하면 중원을 차지하여 중국사의 주역이 된 점을 부각시켰다. 일본제국이 한반도를 거쳐 만주를 지배하면 중원을 차지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한국사를 동양사가 아니라 일본사에 편입한 사실이다. 조선은 4세기 중반 진구(神功)황후 신라정벌 때 일본에 조공을 바치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1902년 현재 일본제국은 한국의 역사부터 일본에 병합하여 제국 신민의 정신 무장의 효과를 노렸다.
―2. 수구-개화파의 근대사 설명 틀, 과연 바른 것인가?
기독교 선교사들이 가르치는 학교에서 「교육 조칙」은 기독교의 입지를 확고히 해 주었을 것이다. 호머 헐버트는 11년 뒤 1906년 7월 12일 자 순한글 신문 『그리스도신문』 에 「한국의 교육」이라는 글을 투고하여 심육(心育=덕육)·지육·체육을 현장의 교육목표로 제시하면서 전인(全人)교육을 통한 문명국가 건설을 강조하였다. 기독교 계통 학교뿐만 아니라 이제 동학 연원의 각지 소학교 등에서도 3육 교육론이 강령으로 자리를 굳혀 갔다면 이는 곧 새로운 국민 창출을 향한 기독교와 동학의 만남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3. 새롭게 주목해야 할 청일전쟁 중 이루어진 ‘국민’ 창출의 역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