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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68361188
· 쪽수 : 324쪽
· 출판일 : 2022-01-14
책 소개
목차
1부
2부
3부
4부
5부
후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어른들은 엄마를 생과부라고 불렀다. 나는 어려서 과부가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엄마가 듣기 싫어하는 말이라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버지가 살아 있다고 믿고 사셨다. 아버지의 무사 귀환을 위해서 서면(西面) 삼악산에 있는 상원사 큰 절에 가서 부처님께 무릎이 닳도록 빌었다. 할머니는 상원사에 갈 때면 꼭두새벽에 길을 떠나 어둑어둑한 밤중에나 돌아오셨다. 나는 절에 가보지 못했으나 온종일 걷느라고 발이 아프다고 하시는 거로 봐서 무척 먼 곳이라고 짐작했다. 왜 하필이면 절이 먼 곳에 있어서 할머니를 고생시키나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절에 행사가 있을 때면 엄마도 같이 갔다. 할머니가 무릎 통증이 심해서 잘 걷지 못할 때도 엄마가 대신 절에 다녀왔다.
내가 할아버지를 존경하는 것과 달리 엄마는 할아버지가 어려워서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엄마가 할아버지를 싫어하는 것이 어린 내 눈에도 느껴졌다.
나중에 커 가면서 고모들한테서 들은 이야기로는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는 작은댁을 거느리고 살면서 기생집에도 단골로 드나들었다고 했다. 시내에서 제일백화점을 운영하면서 기생이 마음에 들면 집을 한 채 사서 주는 걸 예삿일처럼 여겼다. 증조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토지며 전답을 팔아먹던 이야기는 모두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었다.
할아버지가 젊었던 시절에는 사회 분위기가 그랬다. 재산 좀 있다 하면 기생집 드나드는 건 당연했고 작은댁 하나둘씩 거느리는 것도 눈감고 넘어가던 시절이었다.
복작대는 시장 골목 작은 방에서 살려니 답답하고 지루해서 못 견딜 것 같았다. 살림집만 있는 동네가 아니어서 내 또래 아이들이 없는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없어서 들통날 것도 없으니 가난해도 창피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새벽이면 두부 장사가 종을 치며 지나갔다. 종소리가 가깝고도 크게 들렸다. 종소리만큼 두부 장사의 발걸음도 빨랐다. 두부 장사가 지나가고 나면 장꾼들이 부산 떠는 소리에 늦잠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누나가 학교에 가고 할머니도 장사하러 나가고 나면 나는 너무 심심해서 밖으로 쏘다녔다. 빈집에 들어가 봐야 점심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무작정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하루해가 너무 길었다.
갓 뽑은 실국수 가락을 회초리만 한 작대기에 걸어서 말리는 국수 방앗간 앞에서 간혹 바람에 날려 떨어진 날국수 가락을 몰래 집어서 먹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