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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91168553316
· 쪽수 : 192쪽
· 출판일 : 2025-05-15
책 소개
목차
생텍쥐페리 사진 2
어린 왕자 13
생텍쥐페리 연보 142
『어린 왕자』 작품 해설 150
─이명경(번역가)
옮긴이의 말 188
─이명경(번역가)
책속에서
01
여섯 살 적에 나는 한번은 『실제 이야기』라는 제목의 원시림에 관한 책 속에서, 깜짝 놀랄만한 그림 하나를 본 적이 있다. 그것은 맹수를 집어삼키고 있는 보아뱀 그림이었다. 위의 그림은 그것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그 책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보아뱀들은 먹이를 씹지 않고 통째로 삼킨다. 그러고 나서는 먹이를 소화하는 여섯 달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잠을 잔다.’
나는 그때 밀림의 모험담들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본 끝에 색연필로 내 나름대로 나의 첫 번째 그림을 그리는 데 성공했다. 내 그림 1호는 이런 것이었다.
나는 나의 이 걸작을 어른들에게 보여주면서 무섭지 않냐고 물었다.
그들의 대답은 이랬다. “왜 모자가 무섭다는 거니?”
내 그림은 모자를 그린 게 아니었다. 그것은 코끼리를 소화하고 있는 보아뱀 그림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보아뱀의 내부를 그렸다. 어른들은 항상 설명이 필요하다. 내 그림 2호는 이런 것이었다.
어른들은 속이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보아뱀 그림 같은 건 집어치우고 차라리 지리, 역사, 산수와 문법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지라고 충고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여섯 살 적에 화가라는 멋진 직업을 포기하고 말았다. 나는 내 그림 1호와 2호의 실패로 낙담해 버린 것이다. 어른들은 언제나 혼자 힘으로는 절대로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항상 설명해 주어야 한다는 것은 아이들로서는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직업을 선택해야만 했고 비행기 조종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세계 곳곳을 거의 다 빼놓지 않고 날아다녔다. 바로 말해, 지리학이 내게 많은 도움을 준 건 사실이다. 한눈에 중국과 애리조나를 구별할 수 있었으니까. 밤에 길을 잃었을 때, 그것은 대단히 유익한 것이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나는 수많은 진지한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어른들 틈에서 오래 살면서 그들을 아주 가까이서 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 대한 내 생각이 썩 달라지지는 않았다.
나는 어른 중에 좀 통찰력 있어 보이는 어떤 사람을 만날 때면, 늘 가지고 있던 내 그림 1호로 그 사람을 실험해 보곤 했다. 그 어른이 정말로 뭘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인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어른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모자네.” 그럴 때면 나는 그 사람에게 보아뱀 얘기도, 원시림 얘기도, 별들 얘기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관심거리에 맞추었다. 브리지, 골프, 정치, 넥타이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어른은 상당히 생각 있는 어떤 사람을 알게 된 것을 몹시 기뻐했다.
(중략)
여우가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 안녕.
여우가 말했다.
— 안녕.
어린 왕자는 공손히 대답하고 돌아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나 여기 있어. 사과나무 아래…
좀 전의 그 목소리가 말했다.
— 너는 누구니? 참 예쁘구나…
— 난 여우야.
— 이리 와서 나랑 놀자, 나는 굉장히 슬프단다…
어린 왕자가 여우에게 제안했다.
— 나는 너랑 같이 놀 수 없어, 나는 길들지 않았거든.
여우가 말했다.
— 아! 미안해.
그러나 잠깐 생각한 뒤, 어린 왕자가 덧붙여 말했다.
—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니?
— 넌 여기 사는 아이가 아닌가 보구나. 넌 여기서 뭘 찾고 있니?
여우가 말했다.
— 난 사람들을 찾고 있어. 그런데 ‘길들인다’는 게 뭐냐니까?
어린 왕자가 물었다.
— 사람들은 총을 가지고 있고 또 사냥을 하지. 그건 아주 성가신 일이야! 사람들은 닭들도 키워. 그게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야. 너도 닭들을 찾고 있니?
— 아니, 난 친구들을 찾고 있어. ‘길들인다’는 게 뭐냐니까?
어린 왕자가 다시 물었다.
— 그건 너무 잊혀진 거야, 그건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해…
여우가 대답했다.
— 관계를 맺는다고?
— 그래. 넌 아직 내겐 수많은 소년과 똑같은 한 소년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네가 필요하지 않아. 너도 똑같이 내가 필요하지 않고. 난 네게 수많은 다른 여우들과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불과해. 그렇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하게 돼. 너는 내게 세상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아이가 될 것이고, 나도 네게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