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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91169091701
· 쪽수 : 392쪽
· 출판일 : 2023-11-06
책 소개
목차
서문
제1장 영원한 러시아
제2장 러시아의 십자가
제3장 모스크바의 밤
제4장 환영의 도시
제5장 푸시킨
제6장 레르몬토프
제7장 고골
제8장 벨린스키
제9장 튜체프
제10장 곤차로프
제11장 투르게네프
제12장 톨스토이
제13장 도스토옙스키
제14장 체호프
후기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책속에서
러시아인과 러시아의 자연, 러시아의 흑토는 피로 맺어져 있다. 이것이 없다면 러시아인은 그 무엇도 될 수 없다. 서구적 문화에 대한 러시아인의 끈질긴 반역은 여기서 비롯된다. 문화의 필요성을 몇 배로 민감하게 느끼고 문화를 열망하는 한편 이를 증오하고 반역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태도는 러시아 특유의 것이다. 이와 같은 국가에서 사람들은 서구 문화나 휴머니즘에서 행복을 찾을 수 없다.
러시아인에게 조화를 향한 동경은 일종의 병적이며 광적일 만큼 격렬한 정열이다. 하지만 러시아 정신의 부조화가 독특한 부조화의 일종이었듯이, 그것이 추구하는 조화 역시 단순한 조화가 아니다. 러시아인은 스스로 그 특수성을 의식하고 이를 ‘러시아적 해조諧調’라 이름 붙였다.
이 러시아적 해조를 의식적으로 탐구한 최초의 사람은 시인 푸시킨이었다. 그로 인해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적인 문학으로서의 러시아 문학이 시작되었다. 궁극의 해조, 마지막 조화를 탐구하는 일이 푸시킨 이후의 19세기 문학계에 있어서 가장 큰 과제였다. 러시아 문학 전체는 이 근원적인 테마를 중심에 두고 주위를 에워싸듯 전개되었다.
푸시킨 이전의 고문학 중에서 거의 유일한 문예작품인 『이고리 군기』가 러시아 민족의 참담한 패배 감정을 서술한 사시史詩라는 사실도 마치 민족의 역사를 상징하는 것 같지 않은가. 이렇듯 러시아 문학은 패배에 대한 찬미에서 비롯되었다. 다른 민족들은 고대 문학을 장식하는 서사시에서 각자 민족적 영웅의 용맹함을 칭송하고 이민족에 대한 자신들의 승리를 자랑스럽게 노래했던 반면, 러시아에서는 자신의 패배를 노래했던 것이다. 따라서 관점에 따라 19세기 문학의 주인공 대부분이 ‘패배의 인물’이었다고 봐도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 사실 오네긴, 페초린, 오블로모프 등 도스토옙스키의 주인공들과 체호프, 가르신의 주인공들뿐만 아니라 혁명기에 이르는 19세기 문학은 수없이 많은 패자와 실의에 빠진 사람들로 차곡차곡 채워졌다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19세기에 갑자기 생긴 우발적 현상이 아니라 그 배후에는 수백 년에 걸친 기나긴 역사가 있었다. 바로 이 역사의 시초가 된 것이 13세기 초 타타르인의 침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