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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책] 태평광기초 5](/img_thumb2/9791173070143.jpg)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중국소설
· ISBN : 9791173070143
· 쪽수 : 455쪽
· 출판일 : 2024-11-28
책 소개
목차
정수(定數) 2
21-1(0482) 배주선(裴?先)
21-2(0483) 유선(劉宣)
21-3(0484) 마거(馬?)
21-4(0485) 최원(崔圓)
21-5(0486) 유인궤(劉仁軌)
21-6(0487) 왕목과 서원겸(王沐·舒元謙)
21-7(0488) 종친(宗子)
21-8(0489) 위씨(韋氏)
21-9(0490) 방관(房琯)
21-10(0491) 이덕유(李德裕)
21-11(0492) 마조(馬朝)
21-12(0493) 원효숙(袁孝叔)
21-13(0494) 혼인을 정해 주는 객점(定婚店)
21-14(0495) 노생(盧生)
21-15(0496) 후계도(侯繼圖)
21-16(0497) 이인균(李仁鈞)
21-17(0498) 이행수(李行修)
21-18(0499) 배유창(裴有敞)
21-19(0500) 장문관(張文瓘)
21-20(0501) 이서균(李棲筠)
21-21(0502) 이 공(李公)
21-22(0503) 최결(崔潔)
21-23(0504) 허생(許生)
권22 명현부(明賢部) 고일부(高逸部) 염검부(廉儉部) 기량부(器量部)
명현(明賢)
22-1(0505) 견빈(甄彬)
22-2(0506) 중정예(仲庭預)
22-3(0507) 이경양(李景讓)
22-4(0508) 고계보(高季輔)
22-5(0509) 원반천(員半千)
22-6(0510) 이응(李膺)
22-7(0511) 장문관(張文瓘)
22-8(0512) 엄안지(嚴安之)
22-9(0513) 범단(范丹)
22-10(0514) 채옹(蔡邕)
22-11(0515) 설하(薛夏)
22-12(0516) 우세남(虞世南)
고일(高逸)
22-13(0517) 공치규(孔稚珪)
22-14(0518) 이원성(李元誠)
22-15(0519) 도현(陶峴)
22-16(0520) 주도추(朱桃椎)
22-17(0521) 원결(元結)
22-18(0522) 하지장(賀知章)
22-19(0523) 진숙(陳琡)
22-20(0524) 공증(孔拯)
22-21(0525) 노홍(盧鴻)
염검(廉儉)
22-22(0526) 육적(陸績)
22-23(0527) 최광(崔光)
22-24(0528) 이이(李?)
22-25(0529) 두황상(杜黃裳)
22-26(0530) 정여경(鄭餘慶)
22-27(0531) 양성(陽城)
22-28(0532) 당 현종(唐玄宗)
22-29(0533) 이적과 왕비(李勣·王?)
22-30(0534) 하후자(夏侯孜)
22-31(0535) 방관(房琯)
기량(器量)
22-32(0536) 유인궤(劉仁軌)
22-33(0537) 누사덕(婁師德)
22-34(0538) 당임(唐臨)
22-35(0539) 이회(李晦)
22-36(0540) 이일지(李日知)
22-37(0541) 곽자의(郭子儀)
22-38(0542) 육상선(陸象先)
22-39(0543) 엄진(嚴震)
22-40(0544) 우적(于?)
22-41(0545) 무원형(武元衡)
22-42(0546) 귀숭경(歸崇敬)
22-43(0547) 하후자(夏侯孜)
22-44(0548) 갈주(葛周)
권23 정찰부(精察部)
정찰(精察)
23-1(0549) 엄준(嚴遵)
23-2(0550) 장항(蔣恒)
23-3(0551) 왕경(王璥)
23-4(0552) 이걸(李傑)
23-5(0553) 최갈(崔碣)
23-6(0554) 장초금(張楚金)
23-7(0555) 동행성과 장작(董行成·張?)
23-8(0556) 소무명(蘇無名)
23-9(0557) 원자(袁滋)
23-10(0558) 이덕유(李德裕)
23-11(0559) 이이간(李夷簡)
23-12(0560) 유태(劉?)
23-13(0561) 배자운과 조화(裴子雲·趙和)
23-14(0562) 유숭귀(劉崇龜)
23-15(0563) 처를 죽인 자(殺妻者)
권24 준변부(俊辯部) 유민부(幼敏部)
준변(俊辯)
24-1(0564) 변문례(邊文禮)
24-2(0565) 제갈정(諸葛?)
24-3(0566) 손자형(孫子荊)
24-4(0567) 허계언(許誡言)
24-5(0568) 범백년(范百年)
24-6(0569) 장융(張融)
24-7(0570) 유고지(庾?之)
24-8(0571) 이응과 상갱(李膺·商?)
24-9(0572) 장후예(張後裔)
24-10(0573) 소침(蕭琛)
24-11(0574) 최광(崔光)
24-12(0575) 양개(陽?)
24-13(0576) 설도형(薛道衡)
24-14(0577) 달야 객사(達野客師)
24-15(0578) 왕원경(王元景)
24-16(0579) 이길보(李吉甫)
24-17(0580) 권덕여(權德輿)
24-18(0581) 동방삭(東方朔)
24-19(0582) 이표(李彪)
24-20(0583) 반몽(班蒙)
유민(幼敏)
24-21(0584) 가규(賈逵)
24-22(0585) 진원방(陳元方)
24-23(0586) 손책(孫策)
24-24(0587) 종육(鍾毓)
24-25(0588) 양수(楊修)
24-26(0589) 손제유(孫齊由)
24-27(0590) 왕자(王慈)
24-28(0591) 왕현(王絢)
24-29(0592) 이백약(李百藥)
24-30(0593) 노장도(盧莊道)
24-31(0594) 왕발(王勃)
24-32(0595) 원가(元嘉)
24-33(0596) 배염지(裴琰之)
24-34(0597) 소정(蘇?)
24-35(0598) 유안(劉晏)
24-36(0599) 임걸(林傑)
24-37(0600) 고정(高定)
24-38(0601) 이덕유(李德裕)
24-39(0602) 최현(崔鉉)
24-40(0603) 이하(李賀)
24-41(0604) 노덕연(路德延)
24-42(0605) 혼감(渾?)
권25 문장부(文章部) 재명부(才名部)
문장(文章)
25-1(0606) 사조(謝?)
25-2(0607) 유신(庾信)
25-3(0608) 노사도(盧思道)
25-4(0609) 노조린(盧照?)
25-5(0610) 왕유(王維)
25-6(0611) 원화 연간의 승려(元和沙門)
25-7(0612) 이한과 양빙(李翰·楊憑)
25-8(0613) 왕복치(王福?)
25-9(0614) 당 덕종(唐德宗)
25-10(0615) 한굉(韓?)
25-11(0616) 융욱(戎昱)
25-12(0617) 유공권(柳公權)
25-13(0618) 이단(李端)
25-14(0619) 배도(裴度)
25-15(0620) 백거이(白居易)
25-16(0621) 장호(張祜)
25-17(0622) 천교의 나그네(天嶠遊人)
25-18(0623) 담수(譚銖)
25-19(0624) 마외파의 시(馬嵬詩)
25-20(0625) 이위(李蔚)
25-21(0626) 주광물(周匡物)
25-22(0627) 왕파(王播)
25-23(0628) 주경여(朱慶餘)
25-24(0629) 두순학(杜荀鶴)
25-25(0630) 한정사(韓定辭)
25-26(0631) 설수 등(薛收等)
무신유문(武臣有文) 부(附)
25-27(0632) 조경종(曹景宗)
25-28(0633) 고앙(高?)
25-29(0634) 왕지흥(王智興)
25-30(0635) 고숭문과 고병(高崇文·高騈)
재명(才名)
25-31(0636) 동방규와 심전기(東方?·沈佺期)
25-32(0637) 이옹(李邕)
25-33(0638) 진자앙(陳子?)
25-34(0639) 소영사와 이화(蘇穎士·李華)
연재(憐才) 부(附)
25-35(0640) 측천무후(天后)
25-36(0641) 장건봉(張建封)
25-37(0642) 한유(韓愈)
25-38(0643) 양경지(楊敬之)
25-39(0644) 노조(盧肇)
25-40(0645) 최현(崔鉉)
25-41(0646) 두목(杜牧)
책속에서
22-28(0532) 당 현종(唐玄宗)
숙종(肅宗)은 태자(太子)로 있을 때 항상 현종의 식사 시중을 들었다. 상식(尙食 : 임금의 어찬을 담당하는 관리)이 삶은 고기를 차렸는데 양의 앞다리가 있었다. 황상이 태자를 돌아보며 고기를 자르게 했는데, 숙종이 고기를 자르고 나서 손에 묻은 찌꺼기를 떡으로 닦아 내자, 황상은 이를 유심히 보면서 기뻐하지 않았다. 숙종이 그 떡을 들어서 먹자 황상이 몹시 기뻐하며 태자에게 말했다.
“복이라는 것은 응당 이처럼 아껴야 한다!” 미 : 50년 태평성세의 천자가 된 것은 복을 아꼈기 때문이다.
24-24(0587) 종육(鍾毓)
종육과 종회(鍾會)는 어려서부터 훌륭한 명성이 있었는데, 그들이 열세 살 때 위(魏) 문제(文帝)가 이를 듣고 그 아버지 종요(鐘繇)에게 말했다.
“경의 두 아들을 들라 하시오.”
그리하여 문제가 친견하게 되었는데, 종육의 얼굴에 땀이 흐르자 문제가 물었다.
“그대의 얼굴엔 어찌하여 땀이 흐르는가?”
종육이 대답했다.
“두렵고 황공해서 땀이 국물처럼 흐릅니다.”
문제가 다시 종회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땀을 흘리지 않는가?”
종회가 대답했다.
“두렵고 떨려서 땀이 감히 나오지 않습니다.”
또 두 형제는 아버지가 낮잠 자는 틈을 타서 함께 술을 훔쳐 먹었다. 그 아버지는 이때 깨어 있었지만 잠시 잠든 척하고 이를 지켜보았는데, 종육은 배례(拜禮)한 후에 마셨으나 종회는 마시면서도 배례하지 않았다. 얼마 후에 아버지가 그 이유를 물었더니 종육이 말했다.
“술을 마심으로써 예를 이루기 때문에 감히 배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종회가 말했다.
“훔치는 것은 본래 예가 아니기 때문에 배례하지 않았습니다.”
25-19(0624) 마외파의 시(馬嵬詩)
마외불당(馬嵬佛堂)은 양귀비(楊貴妃)가 목을 맨 곳이다. 그 후로 재사(才士)들이 그곳을 지나가면서 지은 시는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모두 미인의 서글픔과 원망이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것이었다. 비록 곡조가 애달프고 가사가 청신하다 할지라도 이러한 뜻에서 벗어나는 글은 없었다. 승상(丞相) 정전(鄭?)이 봉상현(鳳翔縣)의 종사(從事)로 있을 때 이런 시[〈마외파(馬嵬坡)〉]를 지었다.
“숙종(肅宗)이 말 머리 돌렸을 때 양귀비는 죽었나니, 비와 구름 사라지고 해와 달이 새롭게 떠올랐네. 결국 성조 천자(聖朝天子 : 현종)의 일이긴 하지만, 경양궁(景陽宮)의 우물에 또 어떤 사람이 빠질런고?” 미 : 이전의 평가를 잘 뒤집었다.
이를 본 사람들은 진실로 나라에 도움이 되는 글귀라고 여겼다.
당(唐)나라 희종(僖宗)이 [황소의 난을 피해] 촉(蜀) 땅으로 몽진(蒙塵)했을 때, 어떤 시인이 마외역(馬嵬驛)에 이런 시를 적었다.
“마외의 안개 낀 버들은 옛 모습 그대로인데, 난여(鸞輿 : 어가)가 촉 땅으로 행차했다 돌아가는 걸 다시 보는구나. 황천 아래의 아만(阿蠻 : 양귀비의 아명)은 응당 할 말 있으리니, 이번에는 더 이상 양귀비를 원망하게 하지 마시라.” 미 : 또 뒤집었다.
이름은 밝히지 않았는데, 어떤 사람은 시랑(侍郞) 적귀창(狄歸昌)의 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