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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무덤의 천사 (이디스 워튼 기담집)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37431371
· 쪽수 : 320쪽
· 출판일 : 2025-09-19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88937431371
· 쪽수 : 320쪽
· 출판일 : 2025-09-19
책 소개
20세기 미국 문학을 선도한 작가이자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디스 워튼의 색다른 면모와 예민한 통찰력을 만끽할 수 있는 기담집, 『무덤의 천사』가 민음사 쏜살 문고로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저마다 고유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여덟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우연한 만남과 사소한 선택이 빚어내는
얄궂은 운명의 파노라마
인생의 부조리와 인간의 심연을 규명하는
여덟 편의 기묘한 이야기들
***
깨달음은 갑작스럽게 그녀를 찾아왔다. 어느 날 저녁, 책을 읽다가 무심코 고개를 든 순간, 마치 유령처럼 눈앞에 서 있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심스럽게 걸어와서 그녀의 삶 속으로 파고든 것이다. 폴리나는 그동안 정성스럽게 관리해 온 여러 저서들과 초상화들이 있는 서재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래서일까? 세상에서 사라진 온갖 사상과, 선조의 형상으로 장식된 무덤 속에 생매장당한 기분이었다. 그녀는 숱한 이들이 부대끼고, 사랑하고, 생생한 공감을 나누며 서로 손을 맞잡고 살아가는 바깥세상을 향해 도망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무덤의 천사」에서
“이디스 워튼의 공포 소설은 가부장적 사회 구조와 고립된 여성의 고통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자, 현실과 초자연을 통합하는 서사이기도 하다.” -《보스턴 리뷰》
“이디스 워튼이 공포 문학의 거장인 까닭은, 바로 회의적인 감수성을 통해 여과된, 예리하게 엄습해 오는 초자연적 공포감을 누구보다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잭 설리번(영미 공포 문학 평론가)
“이디스 워튼은 어린 시절에 자신을 두렵게 했던 것, 즉 밤의 공포가 우리를 두렵게 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문학 속에 깃든 불안과 공포의 힘은 처음 창조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위력적이다.” -데이비드 스튜어트 데이비스(작가, 「셜록 홈스 시리즈」 연구자)
“유령을 믿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아니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물론 유령을 믿지 않습니다만 “저는 유령이 두렵습니다.”라고 덧붙이곤 합니다. 요컨대 공포 소설은 이성의 영역이 아닌, 우리 심연에 자리한 훨씬 원초적인 어둠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따라서 공포 소설은 단순한 즐길 거리가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인 것입니다. -이디스 워튼
20세기 미국 문학을 선도한 작가이자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디스 워튼의 색다른 면모와 예민한 통찰력을 만끽할 수 있는 기담집, 『무덤의 천사』가 민음사 쏜살 문고로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저마다 고유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여덟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놀랍게도 워튼은 ‘단편’이라는 한정된 지면에 구애받지 않고, 어처구니없는 소동이나 비극적인 운명, 잔인한 욕망과 숨통을 조여 오는 음습한 공포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장르와 주제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사실 이디스 워튼은 한평생 두려움과 신비, 미지의 존재를 탐구하는 데에 열정을 쏟았고, 특히 ‘공포’라는 감정은 어린 시절에 장티푸스로 죽을 고비를 겪은 뒤부터 그를 사로잡았다. 심지어 워튼은 임종의 순간까지 그동안 집필해 온 ‘공포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결산하고자 했으니, 이것이 얼마나 작가에게 중요한 주제였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한편, 이디스 워튼은 평소 셰리든 르 파뉴나 헨리 제임스의 작품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얘기했으나, 그의 ‘공포 소설’과 ‘기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성의 흐름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분위기를 금세 감지할 수 있다. (이디스 워튼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공포 소설은 단순한 즐길 거리가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다.”) 이를테면 워튼의 기묘한 이야기들은, 당대 남성 작가들로선 감히 상상조차 못 했던, 여성의 억압된 삶 속에 도사린 두려움과 고독, 상실, 절망 등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이 책에 실린 각각의 작품들은, 워튼이 여성 차별적 사회와 실패한 결혼 생활에서 비롯한 고통스러운 고립감과 내면적 두려움을 직접 마주하고 극복해 낸 영혼의 결실이자 승리의 증거다.
『무덤의 천사』의 표제작 「무덤의 천사」는 위대한 학자인 할아버지 오레스테스 앤슨 박사를 기리고, 그의 업적을 편찬하는 데에 일생을 바친 폴리나 앤슨의 삶을 추적한다. 전 세계 지식인들의 존경을 받고, 친구들이 읽는 교과서에조차 인용되는 저명한 할아버지의 긴 그림자 속에 기거하며 이제껏 그 위인이 이룩한 학문의 금자탑에 모든 것을 의탁한 채 살아온 폴리나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오레스테스 앤슨’이라는 인물이 서서히 잊혀 가는 세태를 직면하고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정녕 그녀의 헌신은 무모하고 부질없는 집착에 불과했던 것일까? 과거의 영광에 생매장당한 ‘무덤의 천사’는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까? 이어 「벨벳 귀마개」는 우연한 인연이 빚어낸 황당하고 기막힌 한바탕의 소동을 들려준다. 주인공 로링 박사는 건강 문제로 편히 요양하기 위해, 그리고 가증스러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반박하기 위해 햇살 가득한 남프랑스로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로링 박사는 아름다운 풍경마저 성가시게 여기는 ‘극한의 내향인’답게 증기선의 소음, 왁자지껄한 승객들의 목소리 등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그저 거슬릴 따름이다. 그는 이 끔찍한 고통에서 놓여나고자 ‘벨벳 귀마개’를 뒤집어쓴 채, 가까스로 몬테카를로행 열차에 올라타지만 돌연 누군가가 그의 손목을 덥석 부여잡는다. 로링 교수는 화들짝 놀라, 얼른 건너편 좌석을 바라보는데, 난데없이 화려하게 차려입은 젊은 여성이 앉아 있다. 그녀는 로링 교수의 철벽 수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인생사를 늘어놓고, 급기야 그의 손에 100프랑짜리 지폐 한 장을 쥐여 준 채 사라져 버린다. “부디 이 돈을 가지고 도박을 해 주세요!” 오직 이 말만을 남긴 채 말이다.
「죽은 손의 집」은 친구의 부탁을 받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미지의 걸작’을 보기 위해 시에나에 들른 영국인 와이언트를 중심으로, 두 남녀의 어긋난 사랑을 오싹하게 그려 낸다. 「기도하는 공작 부인」은 먼 옛날, 이탈리아 비첸차에서 살았던 어느 공작 부인의 비극적인 삶을 그로테스크한 액자식 구성을 통해 들려주고, 「움직이는 손가락」은 죽은 아내에 대한 집착을 그녀의 초상화에 투사하는 한 남성과, 그 같은 파국을 기꺼이 돕는 어느 광기 어린 화가의 모습을 섬뜩하게 보여 준다. 워튼의 대표적인 공포 소설로 손꼽히는 「미스 메리 파스크」는 이웃 그레이스 브리지워스 부인의 부탁을 받고 프랑스 브르타뉴의 외딴곳에서 홀로 사는 그녀의 언니, 메리 파스크를 만나러 가는 한 남자의 기이한 여정을 뒤밟는다. 하필 메리 파스크 양의 집은, 그 이름부터 불길한 ‘죽은 자들의 만’에 위치해 있는데, 끔찍한 연무와 지독한 악령처럼 울부짖는 바닷소리가 주인공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주인공은 마치 밤에 취하거나 유령에게 홀린 듯, 어쩌면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자 끝끝내 메리 파스크 양의 집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이 다정한 방문은 뜻밖의 방향으로 전개되고,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그 순간까지 경악스러운 반전이 거듭된다.
「밤의 승리」는 한 노부인의 비서로 막 취직한 젊은이 팩슨이 맹렬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칠흑 같은 밤, 인적 없는 역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본래 자신을 데리러오기로 한 마차는 아무리 기다려도 올 기미조차 없고, 폭설 탓에 연락할 방법마저 두절된 상태다. 때마침 미국 동부의 내로라하는 재벌의 조카이자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라이너가 마치 구세주처럼 주인공의 눈앞에 나타나고, 팩슨은 행운인지 불운인지 모를 이 기회를 엉겁결에 움켜쥐고 만다. 마침내 첫인상부터 상대를 압도하는 으리으리한 저택과 막대한 재력가인 라이너의 삼촌, 존 래빙턴을 맞닥뜨린 팩슨은 본능적으로 을씨년스럽고 불길한 기운에 사로잡힌다. 한겨울에도 더위가 느껴질 만큼 따사로운 실내와 휘황찬란한 조명으로 형형하게 반짝이는 저택의 이면에서 꿈틀대는 어둠은 과연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하플던의 신사」는 남부 고딕풍의 이야기를 마치 미국 동부로 옮겨 온 듯한, 유서 깊은 한 집안의 기묘한 비밀을 파헤친다. 과거에 좋은 기회를 만나, 해상 무역으로 큰돈을 번 크랜치 집안의 상속자 왈도 크랜치는 오랜 세월 유럽을 떠돌다가, 어느 날 갑자기 고향 하플던으로 돌아온다. 한편, 하플던의 터줏대감인 왈도 크랜치보다 이곳의 내력을 더 잘 아는 사람은 주인공의 숙모, 루실라 셀윅뿐인데, 몹시 연로한 탓에 그녀의 머릿속은 늘 뒤죽박죽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귀담아듣기보다 우스개 정도의 실없는 이야기로 취급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실라 숙모의 기억 속에 뚜렷이 각인된 장면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왈도 크랜치가 다시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오던 날의 풍경이다. “그 이삿짐 위에 진짜 갈기를 단 검고 흰 목마가 하나 놓여 있었지. 내가 본 중에서 가장 멋진 목마였단다.” 아내와 일찍 사별한 까닭에 달리 자식도 없고, 절친한 친구의 아이조차 냉담하게 대하는 왈도 크랜치가 아동용 완구를 싣고 하플던으로 돌아왔다고? 이처럼 숙모의 기이한 기억과, 결코 크랜치 저택의 문을 열지 않는 왈도의 수수께끼 같은 행동이 한데에 뒤섞이며 의혹은 점차 부풀기 시작한다.
얄궂은 운명의 파노라마
인생의 부조리와 인간의 심연을 규명하는
여덟 편의 기묘한 이야기들
***
깨달음은 갑작스럽게 그녀를 찾아왔다. 어느 날 저녁, 책을 읽다가 무심코 고개를 든 순간, 마치 유령처럼 눈앞에 서 있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심스럽게 걸어와서 그녀의 삶 속으로 파고든 것이다. 폴리나는 그동안 정성스럽게 관리해 온 여러 저서들과 초상화들이 있는 서재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래서일까? 세상에서 사라진 온갖 사상과, 선조의 형상으로 장식된 무덤 속에 생매장당한 기분이었다. 그녀는 숱한 이들이 부대끼고, 사랑하고, 생생한 공감을 나누며 서로 손을 맞잡고 살아가는 바깥세상을 향해 도망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무덤의 천사」에서
“이디스 워튼의 공포 소설은 가부장적 사회 구조와 고립된 여성의 고통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자, 현실과 초자연을 통합하는 서사이기도 하다.” -《보스턴 리뷰》
“이디스 워튼이 공포 문학의 거장인 까닭은, 바로 회의적인 감수성을 통해 여과된, 예리하게 엄습해 오는 초자연적 공포감을 누구보다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잭 설리번(영미 공포 문학 평론가)
“이디스 워튼은 어린 시절에 자신을 두렵게 했던 것, 즉 밤의 공포가 우리를 두렵게 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문학 속에 깃든 불안과 공포의 힘은 처음 창조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위력적이다.” -데이비드 스튜어트 데이비스(작가, 「셜록 홈스 시리즈」 연구자)
“유령을 믿나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아니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물론 유령을 믿지 않습니다만 “저는 유령이 두렵습니다.”라고 덧붙이곤 합니다. 요컨대 공포 소설은 이성의 영역이 아닌, 우리 심연에 자리한 훨씬 원초적인 어둠을 들여다보게 합니다. 따라서 공포 소설은 단순한 즐길 거리가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인 것입니다. -이디스 워튼
20세기 미국 문학을 선도한 작가이자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디스 워튼의 색다른 면모와 예민한 통찰력을 만끽할 수 있는 기담집, 『무덤의 천사』가 민음사 쏜살 문고로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저마다 고유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여덟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놀랍게도 워튼은 ‘단편’이라는 한정된 지면에 구애받지 않고, 어처구니없는 소동이나 비극적인 운명, 잔인한 욕망과 숨통을 조여 오는 음습한 공포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장르와 주제를 종횡무진 넘나들며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사실 이디스 워튼은 한평생 두려움과 신비, 미지의 존재를 탐구하는 데에 열정을 쏟았고, 특히 ‘공포’라는 감정은 어린 시절에 장티푸스로 죽을 고비를 겪은 뒤부터 그를 사로잡았다. 심지어 워튼은 임종의 순간까지 그동안 집필해 온 ‘공포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결산하고자 했으니, 이것이 얼마나 작가에게 중요한 주제였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한편, 이디스 워튼은 평소 셰리든 르 파뉴나 헨리 제임스의 작품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얘기했으나, 그의 ‘공포 소설’과 ‘기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성의 흐름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분위기를 금세 감지할 수 있다. (이디스 워튼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공포 소설은 단순한 즐길 거리가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다.”) 이를테면 워튼의 기묘한 이야기들은, 당대 남성 작가들로선 감히 상상조차 못 했던, 여성의 억압된 삶 속에 도사린 두려움과 고독, 상실, 절망 등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이 책에 실린 각각의 작품들은, 워튼이 여성 차별적 사회와 실패한 결혼 생활에서 비롯한 고통스러운 고립감과 내면적 두려움을 직접 마주하고 극복해 낸 영혼의 결실이자 승리의 증거다.
『무덤의 천사』의 표제작 「무덤의 천사」는 위대한 학자인 할아버지 오레스테스 앤슨 박사를 기리고, 그의 업적을 편찬하는 데에 일생을 바친 폴리나 앤슨의 삶을 추적한다. 전 세계 지식인들의 존경을 받고, 친구들이 읽는 교과서에조차 인용되는 저명한 할아버지의 긴 그림자 속에 기거하며 이제껏 그 위인이 이룩한 학문의 금자탑에 모든 것을 의탁한 채 살아온 폴리나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오레스테스 앤슨’이라는 인물이 서서히 잊혀 가는 세태를 직면하고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정녕 그녀의 헌신은 무모하고 부질없는 집착에 불과했던 것일까? 과거의 영광에 생매장당한 ‘무덤의 천사’는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까? 이어 「벨벳 귀마개」는 우연한 인연이 빚어낸 황당하고 기막힌 한바탕의 소동을 들려준다. 주인공 로링 박사는 건강 문제로 편히 요양하기 위해, 그리고 가증스러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반박하기 위해 햇살 가득한 남프랑스로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로링 박사는 아름다운 풍경마저 성가시게 여기는 ‘극한의 내향인’답게 증기선의 소음, 왁자지껄한 승객들의 목소리 등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그저 거슬릴 따름이다. 그는 이 끔찍한 고통에서 놓여나고자 ‘벨벳 귀마개’를 뒤집어쓴 채, 가까스로 몬테카를로행 열차에 올라타지만 돌연 누군가가 그의 손목을 덥석 부여잡는다. 로링 교수는 화들짝 놀라, 얼른 건너편 좌석을 바라보는데, 난데없이 화려하게 차려입은 젊은 여성이 앉아 있다. 그녀는 로링 교수의 철벽 수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인생사를 늘어놓고, 급기야 그의 손에 100프랑짜리 지폐 한 장을 쥐여 준 채 사라져 버린다. “부디 이 돈을 가지고 도박을 해 주세요!” 오직 이 말만을 남긴 채 말이다.
「죽은 손의 집」은 친구의 부탁을 받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미지의 걸작’을 보기 위해 시에나에 들른 영국인 와이언트를 중심으로, 두 남녀의 어긋난 사랑을 오싹하게 그려 낸다. 「기도하는 공작 부인」은 먼 옛날, 이탈리아 비첸차에서 살았던 어느 공작 부인의 비극적인 삶을 그로테스크한 액자식 구성을 통해 들려주고, 「움직이는 손가락」은 죽은 아내에 대한 집착을 그녀의 초상화에 투사하는 한 남성과, 그 같은 파국을 기꺼이 돕는 어느 광기 어린 화가의 모습을 섬뜩하게 보여 준다. 워튼의 대표적인 공포 소설로 손꼽히는 「미스 메리 파스크」는 이웃 그레이스 브리지워스 부인의 부탁을 받고 프랑스 브르타뉴의 외딴곳에서 홀로 사는 그녀의 언니, 메리 파스크를 만나러 가는 한 남자의 기이한 여정을 뒤밟는다. 하필 메리 파스크 양의 집은, 그 이름부터 불길한 ‘죽은 자들의 만’에 위치해 있는데, 끔찍한 연무와 지독한 악령처럼 울부짖는 바닷소리가 주인공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주인공은 마치 밤에 취하거나 유령에게 홀린 듯, 어쩌면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자 끝끝내 메리 파스크 양의 집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이 다정한 방문은 뜻밖의 방향으로 전개되고,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그 순간까지 경악스러운 반전이 거듭된다.
「밤의 승리」는 한 노부인의 비서로 막 취직한 젊은이 팩슨이 맹렬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칠흑 같은 밤, 인적 없는 역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본래 자신을 데리러오기로 한 마차는 아무리 기다려도 올 기미조차 없고, 폭설 탓에 연락할 방법마저 두절된 상태다. 때마침 미국 동부의 내로라하는 재벌의 조카이자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라이너가 마치 구세주처럼 주인공의 눈앞에 나타나고, 팩슨은 행운인지 불운인지 모를 이 기회를 엉겁결에 움켜쥐고 만다. 마침내 첫인상부터 상대를 압도하는 으리으리한 저택과 막대한 재력가인 라이너의 삼촌, 존 래빙턴을 맞닥뜨린 팩슨은 본능적으로 을씨년스럽고 불길한 기운에 사로잡힌다. 한겨울에도 더위가 느껴질 만큼 따사로운 실내와 휘황찬란한 조명으로 형형하게 반짝이는 저택의 이면에서 꿈틀대는 어둠은 과연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하플던의 신사」는 남부 고딕풍의 이야기를 마치 미국 동부로 옮겨 온 듯한, 유서 깊은 한 집안의 기묘한 비밀을 파헤친다. 과거에 좋은 기회를 만나, 해상 무역으로 큰돈을 번 크랜치 집안의 상속자 왈도 크랜치는 오랜 세월 유럽을 떠돌다가, 어느 날 갑자기 고향 하플던으로 돌아온다. 한편, 하플던의 터줏대감인 왈도 크랜치보다 이곳의 내력을 더 잘 아는 사람은 주인공의 숙모, 루실라 셀윅뿐인데, 몹시 연로한 탓에 그녀의 머릿속은 늘 뒤죽박죽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귀담아듣기보다 우스개 정도의 실없는 이야기로 취급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실라 숙모의 기억 속에 뚜렷이 각인된 장면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왈도 크랜치가 다시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오던 날의 풍경이다. “그 이삿짐 위에 진짜 갈기를 단 검고 흰 목마가 하나 놓여 있었지. 내가 본 중에서 가장 멋진 목마였단다.” 아내와 일찍 사별한 까닭에 달리 자식도 없고, 절친한 친구의 아이조차 냉담하게 대하는 왈도 크랜치가 아동용 완구를 싣고 하플던으로 돌아왔다고? 이처럼 숙모의 기이한 기억과, 결코 크랜치 저택의 문을 열지 않는 왈도의 수수께끼 같은 행동이 한데에 뒤섞이며 의혹은 점차 부풀기 시작한다.
목차
벨벳 귀마개
죽은 손의 집
기도하는 공작 부인
움직이는 손가락
무덤의 천사
미스 메리 파스크
밤의 승리
하플던의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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