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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정치학/외교학/행정학 > 정치학 일반
· ISBN : 9791173574276
· 쪽수 : 412쪽
· 출판일 : 2025-08-21
책 소개
독재정권과 민주주의에 관한 가장 날카로운 보고서
권위주의를 무너뜨릴 정치적 도구에 관한 치열한 통찰
★ 이코노미스트 선정 2024 최고의 책 ★
“독재에 관한 올바른 이해가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확신한다.”
― 김만권(정치철학자), 해제
2025년 3월, 스웨덴 예테보리대학교 산하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V-dem)는 2024년에 이어 2년 연속으로 한국을 ‘독재화 진행 국가(Autocratization Country)’로 평가했다. 특히 한국은 올해 들어 ‘자유민주주의’ 지위가 박탈되며, ‘선거민주주의’ 나라로 분류되었다. 연구소가 정의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시민적 자유 보호, 법 앞의 평등, 행정부에 대한 사법·입법적 통제”가 보장되는 국가이다.
냉전 이후 “2012년까지 폐쇄적 독재체제를 유지하는 국가는 12퍼센트 미만”(37쪽)으로 자유민주주의 모델이 승리하며 새로운 표준이 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권위주의가 다시 부상하는 양상이다. 같은 연구소에서 발표한 「민주주의 보고서 2025」에 따르면, 2024년 22년 만에 처음으로 권위주의 정권이 집권한 국가가 91개로 민주주의 국가(88개)보다 많았다. 동유럽의 헝가리와 폴란드에서는 2010년대부터 권위주의가 진행되었고,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 서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지난 2~3년 사이 극우 정당이 부상하고 있다. 미국 역시 다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며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
그렇다면, 권위주의 정권은 어떻게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가? 굳건하게 보이는 독재자의 권력은 언제 어떤 계기로 무너지는가? 그들이 몰락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마르첼 디스주스(Marcel Dirsus)는 『독재자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국가는 어떻게 살아남는가』(필로스 시리즈 41번)에서 위 질문을 다루며, 현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다.
정치학자인 저자는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며 소련공산당정치국 등 독재체제를 10년간 연구했고, 현재 킬대학교 안보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콘라트아데나워재단 테러리즘및안보상설전문위원회 위원으로 지내며 민주주의 회복 전략을 연구하고 있다.
책에서 저자는 인권 활동가, 반체제인사, 반군 지도자를 포함한 다양한 인물과의 인터뷰 100여 회를 통해 독재체제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권위주의를 무너뜨릴 도구와 그 방법에 대해 독창적이고도 실증적인 분석을 제시한다.
《이코노미스트》는 2024 최고의 책으로 선정했고, 김만권 정치학자는 책의 해제에서 “비상계엄 이후 새로이 민주주의를 정비하고 구축해야 할 지금, 꿈틀대는 독재의 망령을 제압해야 할 바로 이 순간이 이 책을 열어 볼 가장 적합한 때”라고 추천했다. 민주주의가 다시 독재의 유혹과 경쟁해야 하는 이 시기, 『독재자는 어떻게 몰락하는가』는 현재의 정치 담론에 반드시 짚어야 할 주요한 논점을 제공하는 필독서가 될 것이다.
소련공산당정치국 10년 연구·콩고민주공화국 현장연구
인권 활동가, 반체제인사, 반군 지도자 인터뷰 100여 회를 통해
독재의 태생적 한계와 민주주의의 새 가능성을 밝히다
쿠데타의 현장에서 품은 질문
“독재자는 언제 권력을 잃는가? 그 이후 어떤 일이 생길까?”
“사무실〔콩고민주공화국의 한 양조장〕로 돌아오는 길에 날카로운 소리가 고요한 공기를 갈랐다. 총소리였다. 애초에 나를 표적으로 삼은 게 아니라도, 그중 한 발이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 살짝 겁에 질린 나는 동료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제 어쩌죠?” 돌아온 답은 “그냥 있으면 돼요”였다. 콘크리트 벽 뒤에 있는 방문 유럽인인 나와 위험 사이에는 방어막 한 겹이 놓여 있었다. 벽 바깥에 있는 이 도시의 다른 이들은 나처럼 운이 좋지 않았다.
…… 일부 국가에서 심각할 정도로 불안정한 상황을 국민들이 아주 익숙한 상황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떻게 카빌라 대통령은 5년 더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카빌라 같은 지도자들은 언제 권력을 잃는 걸까? 그들이 권력을 잃은 후에는 어떤 일이 생길까? 나는 독재자들이 어떻게 몰락하는지 연구하기로 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같은 국제기구에서도 이 주제를 연구하면서 독재자는 어떻게 몰락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언제나 놓지 않았다.”(25쪽~27쪽 일부 발췌)
마르첼 디르주스는 2013년 콩고민주공화국의 한 양조장에서 일하던 중, 종교 지도자 폴조제프 무쿤구빌라가 조제프 카빌라 대통령을 겨냥해 일으킨 쿠데타를 경험했다. 쿠데타는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당시의 강렬한 경험이 『독재자는 어떻게 몰락하는가』의 집필 계기로 이어졌다.
저자는 현재에도 독재자는 무시할 수 없는 큰 위협이 되고 있음을 주장하며,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전 세계적으로 제기되는 권위주의적 각종 위협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이 책은 현대 독재체제의 본질과 구조적 모순을 이해하고, 평화적 저항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의 회복 전략을 제시하는 실질적 지침서로 역할 한다.
독재자가 직면하는 핵심적인 문제,
공포와 침묵
“비뚤어진 사람들이 독재자가 되면 독재정치가 그들을 더 망가뜨릴 수 있다.”(102쪽)
마르첼 디르주스는 먼저 독재자의 권력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저자의 표현으로 한번 올라서면 “결코 내려설 수 없는 트레드밀에 갇힌” 독재자들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놀라울 만큼 불안정한 권력 위에 서 있음을 증명한다. 이는 ‘독재자의 딜레마’(89쪽)에 기인한다. 독재정권은 외부뿐만 아니라 독재자 본인에게도 불투명해서, 독재자가 국가 전반을 관리하기 매우 어려운 구조임을 짚는다. 하여 독재자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할 수밖에 없다.
독재자가 권력을 유지하는 주요 방법은 1) 충성 기반의 엘리트 구조 강화, 2) 정권 전복을 방지하기 위한 군과 정보기관의 업무 분산 및 중첩화, 3) 대중 통제를 위한 언론 억압과 정보 조작이다.
이러한 구조는 매우 불안정하다. 측근은 언제든 권력을 탐할 수 있고, 군 엘리트는 정치적 배제에 불만을 품기 쉽다. 부패와 정실주의는 대중을 소외시켜 체제의 정당성 자체를 약화한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독재자가 조장한 공포로 인해 비판 세력이 자신의 생각을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침묵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독재자는 국민, 심지어 측근조차 실제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이 사람이 정말 정부 이념을 지지하는 것인가, 아니면 독재자의 등에 칼을 꽂을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 연극을 하는 것인가? 독재자는 알 수 없다.”
독재정권에서 진실을 말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독재자는 수많은 적을 도처에 두른 외로운 존재로 전락하고, 현실감각을 잃은 채 몰락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품었다.
독재자는 왜 현실을 보지 못하는가?
김정은은 “어려서부터 현실에 대한 시각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경험을 가지고 권좌에 올랐으며”(103쪽), 푸틴은 다양한 정보는 차단하고 “군인, 첩보원 등 실로비키의 의견에만 귀 기울이며 점점 더 적대적인 태도”(102쪽)로 전쟁범죄를 정당화했다. 시진핑은 2023년 “과감히 싸워야 한다”(38쪽)라고 말하며, 물리적 격돌도 불가피한 전랑 외교를 강조했다.
사담 후세인의 사례에서는 독재자에 대한 정신분석 연구를 인용하며 “악성 나르시시스트의 피해망상과 공격성, 도덕적 판단 결여가 동반된 반사회적 인격이 독재자로 성공하는 데 오히려 도움 될 수 있다”(107쪽)라고 말한다. 무아마르 카다피의 경우 리비아가 핵무기 개발을 비롯한 국가의 여러 전략적 목표를 제대로 수립할 수 없었던 이유를 독재의 문제와 직결한다. “카다피 개인에게 집중된 정부 시스템으로는 전반적인 문제점을 파악하기 어려웠으며, 과학자들이 하는 일을 감시하고 이해할 기관도 없었다. 외부 위협에 맞서기 위한 보호책과 내부 안보를 맞바꾼 탓에 핵무기 문턱에도 가지 못했다.”(210쪽). 이는 제대로 된 군사전문가들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조차 제대로 된 조언을 받지 못했던 사담 후세인의 사례와도 비슷하다.
광장에 나선 무장하지 않은 시민을 무참히 탄압한 빅토르 야누코비치의 경우는 어떠한가?(226쪽) “탄압과 급진화의 시소게임”은 흔하게 나타나는 문제이기 때문에 독재자는 애초에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지 못하게 노력하지만, 이 자체가 어불성설임을 저자는 짚는다.
헝가리를 사실상 권위주의의 한 형태인 “비자유적 민주주의”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오르반 빅토르와 야당이 선거에서 승리하기 점점 더 어려워지는 구조를 만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38쪽)의 경우를 보면, 독재정권하에서는 근본적으로 시민의 영향력 행사의 측면에서 불행한 사람들이 항상 넘쳐 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독재자의 운명은 비유적으로든 실제 상황이든 늘 죽음에 가까이 있다. 권력의 마지막 날인 사망 직전까지 너무나 자신감이 넘쳐서 헬기를 조종하던 측근에게 “대의를 따르라”라고 종용했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63쪽), 경제회복을 연설하던 때 상공의 드론 공격으로 죽은 뻔한 고비를 넘긴 니콜라스 마두로(282쪽), 탄자니아와 벌인 전쟁에서 사우디아라비아로 도피한 이디 아민, 역시 같은 곳으로 도피한 벤 알리, 모로코에 정착한 모부투 세세 세코(59쪽)를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은 사망했거나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고 도피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권력을 잃은 독재자 다섯 중 한 명은 해외로 도피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수년간 개인적 권력을 어마어마하게 축적하는 데 성공한 나자르바예프는 어떤가? 대통령을 사임하고도 기소 면제와 같은 특권을 계속 누렸지만, 그는 곧 다른 필연적 문제에 부딪친다. “바로 권력을 포기하는 순간 자신을 방어하기 어려워진다는 것.”(50쪽)
이 책은 이 외에도 찰스 테일러, 이센 아브르, 이슬람 카리모프, 야히아 자메,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보카사, 마오쩌둥, 폴 포트 등 독재자를 분석하며,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 적을 만들지 않으면서 독재자가 될 수는 없다는 점을 역설한다. 독재자는 가능한 한 오래도록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불가능한 일들을 계속 해내며” 몰락의 상태로 나아간다.
독재 붕괴 현장의 생생한 증언들,
인권 활동가, 반체제인사, 반군 지도자 인터뷰
저자는 독재정권의 붕괴가 시작되는 주요 원인으로 1) 내부 쿠데타, 2) 대중의 저항, 3) 외세의 개입을 제시한다. 군부나 측근 그룹이 등을 돌리는 순간 체제는 순식간에 무너지며, 광범위한 시민의 집단적 불복종 운동은 시간이 걸리지만 체제 전환의 성공 가능성을 높인다. 저자는 특히 ‘비폭력 시민 저항운동’이 장기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을 강조한다. 인구의 약 3.5퍼센트가 참여하는 평화적 저항이 있을 경우, 정권 붕괴 가능성은 급격히 높아진다는 연구가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체노웨스 ‘3.5퍼센트 법칙’(222쪽)] 반면 외세의 무력 개입은 예측 불가능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짚는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저자가 직접 만난 인물들의 인터뷰이다. 동독의 억압적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언론인(슈타지로부터 ‘사탄’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린 지그베르트 셰프케, 241쪽), 부룬디에서 잔혹한 학살을 주도한 반군 지도자(민족해방군 아가톤 르와사, 306쪽), 조국을 해방시키려는 모의를 했다는 이유로 투옥된 감비아계 미국인 활동가(인권활동가 반카 마네, 118쪽) 등은 독재의 태생적 한계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각각의 사례는 다음 질문을 던진다. “비무장 시위대에 독재자가 발포를 명령했을 때, 실제로 명령이 수행될 수 있는가? 독재자는 잔혹한 진압을 명령하고 싶겠지만, 총 든 이들이 총구 앞에 선 이들에게 공감한다면?” “내전을 끝내는 것은 왜 그렇게 어려운가?” “독재의 평화적 전복은 가능한가? 그 이후 무엇이 기다리는가?”
이는 독재에 관한 분석에서 나아가, 국가는 어떻게 생존하고 재건될 수 있는지의 여러 가능성을 다룬다. 영원한 권력을 꿈꾸었던 이들의 몰락, 독재정권 붕괴의 다양한 시나리오와 사례 분석을 통해 그 속에 숨겨진 정치사회적 메커니즘을 면밀히 추적한다. 이 책은 위기에 놓인 민주주의의 현실을 꿰뚫는 통찰을 던진다.
독재자의 퇴진 이후가 진짜 시작
시민사회, 언론 자유, 정치제도 개혁의 과제
“아르메니아의 벨벳혁명(Velvet Revolution)이 일어난 지 1년 후에 한 기자가 과일 상인에게 상황이 어떻게 변했는지 묻자, 상인은 혁명이 모든 것을 바꿀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바보뿐이라고 대답했다. 양파와 사과, 토마토가 가득 담긴 골판지 상자 앞에 앉아 있던 이 백발 여인은 “혁명은 텅 빈 새집을 얻는 것과 비슷합니다. 여전히 고치고 가구를 채워야 하죠”라고 덧붙였다. 그 말이 맞았다. 평화로운 봉기는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들어 낼 기회지만,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300쪽)
이 책에서 저자는 독재자의 몰락보다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많은 경우 권위주의는 다른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며, 민주주의 회복은 단발적 사건이 아닌 지속적인 노력과 제도 구축을 필요로 한다. 시민사회의 조직화, 언론 자유의 회복, 정치제도의 개혁 없이는 진정한 체제 전환은 불가능하다.
저자는 독재자의 몰락이 곧바로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것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독재 이후의 혼란스러운 과도기를 국가가 어떻게 극복하고 생존하며, 진정한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깊이 있게 분석하며, 오히려 독재자의 퇴진 직후가 가장 위험한 시기라고 경고한다.
이 책은 독재 이후 국가가 생존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한 핵심 조건으로 세 가지를 제시한다. 1) 시민사회의 재건과 참여 확대. 민주주의는 선거만으로 유지되지 않으며, 일상 속에서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정부를 감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독재정권에서는 시민들은 정치에서 소외되거나, 체제에 대한 불신과 무력감을 내면화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시민단체, 노동조합, 지역 공동체 등 다양한 중간 조직이 다시 활성화되어야 하며, 이는 단순한 반정부활동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위한 책임 있는 참여로 전환되어야 한다.
2) 언론 자유와 정보 투명성의 회복. 독재정권은 언론을 철저히 통제하고, 비판적 시각을 억압하며, 거짓과 선전을 통해 대중을 통제한다. 반면에 민주주의는 다양한 정보의 흐름과 공개된 토론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저자는 진실한 정보를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을 때 권력 감시가 가능하고, 시민들이 현실을 직시하며 주체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한 필수적 과제로 독립 언론의 보호, 공공정보의 공개, 인터넷 검열 폐지(안전한 메신저 앱 개발 지원) 등을 제시한다.
3) 정치제도의 구조적 개혁. 겉보기에 민주적 제도가 존재하더라도, 그 안에 내재된 권위주의적 작동 방식을 바로잡는 것을 의미한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 시스템, 독립적인 사법부, 권력의 견제와 균형이 가능한 입법·행정부 관계 등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권력의 집중을 방지하고, 후계 구도를 민주적으로 설계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는 지속 가능해진다.
이 세 가지 조건 외에도 저자는 국제사회의 역할도 언급한다. 외부에서 민주주의 회복을 강제하는 것보다는, 자국 내 시민들이 스스로 체제를 바꾸어 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외교적 압박, 제재, 기술 지원, 정보 확산 등이 그러한 비개입적 접근에 포함된다.
12·3 비상계엄이 보여 준 민주주의의 취약성
꿈틀대는 독재의 망령에 맞서는 방법
“민주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더 이상 보수 vs. 진보가 아니다,
민주 vs. 반민주다!”
저자가 말하듯, 독재는 민주주의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오랜 정치의 역사에서 더 일반적인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민주주의의 시대가 예외나 다름없다.” 그런 까닭에 자칫 방심하는 순간 민주주의의 틈새를 비집고 독재의 싹이 커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앞서 언급한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의 「민주주의 보고서 2025」는 전 세계적으로 언론 통제, 정치적 양극화, 제도 약화라는 구조적 요소들이 민주주의를 잠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경고했다.
마르첼 디르주스 역시 독재 이후 많은 국가들이 헌법을 개정하거나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과정에서 다시금 권위주의로 회귀하는 경향을 경계한다. 오늘날 독재는 더 이상 군사 쿠데타나 노골적인 권력 찬탈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현대의 독재자들은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권력을 획득한 뒤, 언론을 억압하고, 사법부를 장악하며, 헌법을 개정하는 식으로 점차적으로 권위주의체제를 강화해 나간다. 이를 통해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유와 견제의 기능을 무력화시키는 권위주의가 확산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12·3 비상계엄을 경험하며 이런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실제로 독재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는 12·3 비상계엄에 대한 지지라는 결과로 나타나기도 했으며, “민주정치에서 보수와 진보의 대결 구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민주 대 반민주 세력의 대결이 오히려 더 중요해진 듯”(11쪽, 김만권 해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처럼 민주주의와 권위주의가 다시 충돌하고 있는 위기의 시대에 이 책은 독재와 민주, 강압과 동의, 지배와 저항 사이에서 권력의 작동방식에 대한 분석을 통해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과 한계를 모색하고 있다. 또한 독재 몰락 이후 국가가 민주주의로 살아남기 위한 실질적 조건을 제시하며, 민주주의 위기를 넘어서 지속 가능한 체제 구축을 위한 전략적 방향을 제시한다.
체제 전환에 대한 실질적 통찰과 함께 인권 활동가, 반체제인사, 반군 지도자, 망명 중인 혁명가를 비롯해 권위주의에 맞선 사람들의 구체적인 이야기가 어우러진 이 책은, 오늘날 점점 위협받고 있는 민주주의의 방향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동시에 오늘날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키고 되살릴 수 있을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시하는 정치적 안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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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해제 꿈틀대는 독재의 망령에 맞서는 방법
서문 황금 권총의 역설
1장 독재자의 트레드밀
2장 내부의 적
3장 군사집단 약화하기
4장 반군, 총, 돈
5장 외국의 적과 국내의 적
6장 총을 쏘면 패한다
7장 다른 선택지는 없다
8장 말이 씨가 된다
9장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방법
감사의 말
주
찾아보기
책속에서
얼핏 보면 이 통치자들은 미친 것 같다. 확실히 정상적인 인간들은 아니다. 이들은 대체로 나르시시스트이고 때때로 사이코패스이면서 거의 항상 무자비하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이들 중 대다수가 이성적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이들은 정신을 놓지 않았다. 이들이 운영하는 체제와 가지고 있는 정보를 생각해 보면, 대통령 궁에서 부를 축적하는 동안 대중을 고문하고 죽이고 굶주리게 하는 전략은 합리적이다. 이것이 그들이 생존하는 방식이다. ― (서문 황금 권총의 역설)
여기에는 해결할 수 없는 중대한 딜레마가 존재한다. 한편으로 물러나기를 원하는 독재자는 권력을 손에서 놓았을 때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을 만큼 강력하고 유능한 누군가를 찾아야 한다. 반면에 독재자를 보호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고 유능한 후임자는 독재자를 파멸시킬 수도 있다. 그리고 종종 후임자는 물러나는 독재자를 완전히 짓밟아 버린다. 자존심 강한 독재자가 전임자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데 만족할 리 없기 때문이다. 횃불을 넘겨주려는 독재자는 종종 그 불 때문에 상처를 입는다. 상처를 입지 않고 자리에서 내려올 수 없다면, 이미 트레드밀에 올라선 독재자에게 어떤 다른 방법이 있을까? ― (1장 독재자의 트레드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