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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일본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91185014043
· 쪽수 : 320쪽
· 출판일 : 2013-07-05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밤중에 텔레비전에서 해준 CBS 다큐멘터리였던가, 그런 데서 봤거든. 무고한 사람이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는 사례를 연구하는 미국 법학자가, 수업 전에 아무런 예고 없이 한 남자에게 교실을 지나가게 했어요. 학생들이 다 왔을 때, 남자가 불쑥 교실로 들어와선 말 한마디 없이 칠판 앞을 지나 반대쪽 문으로 나간 겁니다. 그 뒤 교수가 교실로 들어와서 학생들한테 방금 눈앞을 지나간 사람의 특징을 쓰게 시켰다는 실험이죠.”
결과는 어땠습니까?
“그거 참 뒤죽박죽이더군요. 그쪽은 인종이며 머리 색깔, 눈 색깔이 워낙 다채롭잖습니까. 흑인에 백인, 성별, 나이, 체격까지 용케 이렇게 다양한 답이 나온다 싶을 지경이었어요. 동양인 여자였다는 증언에, 키 큰 흑인 남자였다는 증언까지 있었다 하니 말이죠. 실제론 이십대 백인 남성이었는데도.”
그렇군요. 그거 참 심한데요.
“그렇죠? 그러니 난 내가 본 게 옳다고 믿진 않습니다. 하지만 결국 자기가 본 걸 이야기할 수밖에 없단 말이죠.”
“아니, 우리 모두 이상한 겁니다. 인간의 죽음에 점점 둔감해지죠. 교통사고로 한두 명쯤 죽은들 신문에 나긴 할지. 수천 명, 수백 명 죽지 않는 한 신경도 안 써요. 그런 주제에 언론은 한 사람의 목숨이 지구보다 소중하다느니 뭐니 염치도 없이 그런 소리를 합니다. 언론이 이 사건 때문에 얼마나 기뻐했는지 전 기억합니다. 수수께끼에 싸인 대량의 죽음, 정체불명의 대형 참사. 자신도 말려들 수 있었던 비근한 죽음. 얼마나 스릴 넘칩니까? 다들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더군요. 언론도, 시청자도 다음 참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참사가 일어나면 그쪽으로 몰려가 M에서 죽은 수많은 사람들, 지금도 입원 중인 사람들, 끝없이 이어지는 소송 따위 까맣게 잊어버릴 테죠.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래. 인간은 말이지, 나쁜 건 자기 탓이라고 하기 싫거든. 기분 나쁜 일, 불쾌한 일은 남 탓으로 돌리고 싶어 해. 사람을 죽이는 건 나쁜 일이잖아? 하지만 안 죽이면 곤란한 경우라든지 죽이는 게 그 사람한테 유리한 경우가 아주 많단 말이지. 그때 신이 있으면 아주 편리하거든. 신이 명령했다, 신을 위해서, 신의 이름으로,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으니까.
사람을 죽일 때만 그런 게 아냐. 아주 나쁜 일이 있었을 때 남 탓으로 못 돌리면 괴롭잖아? 절대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 누구 다른 사람 잘못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주 편하지. 후회하고 반성하는 것보다 남을 미워하는 게 훨씬 편해. 그런 때를 위해 신이 있는 거야. 난 알았어. 사람은 타인을 죽이는 동물이야. 그렇기 때문에 남을 죽이기 쉽게 하려고 신을 만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