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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현대 물리학에서 알려주는 깨달음의 세계)

김준걸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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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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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나는 누구인가? (현대 물리학에서 알려주는 깨달음의 세계)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심리학/정신분석학 > 심령연구/초과학
· ISBN : 9791185038223
· 쪽수 : 187쪽
· 출판일 : 2016-08-08

책 소개

저자는 현대 물리학에서 밝혀낸 과학적 사실만을 가지고 깨달음의 실체와 방법을 논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 어떤 수행서나 철학서에 비해 논리적이고 명료하게 정신세계를 다루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과학의 한계 너머를 제시함으로써 미래 과학의 초안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있다.

목차

o 프롤로그 - 6
1. 기氣란 무엇인가? - 16
2. 정보情報란 무엇인가? - 28
3. 공空이란 무엇인가? - 42
4. 힘力이란 무엇인가? - 56
5. 생명이란 무엇인가? - 104
6. 나는 누구인가? - 126
7.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158
o 부록 차원론 - 172
o 에필로그 - 178

저자소개

김준걸 (지은이)    정보 더보기
空사상 연구가. 저서로는 [空으로 보는 금강경], [大道에 이르는 書], [소설天國誌/전9권], [소설 우주로 간 달마/전3권], [소설 계룡산] 외에 다수가 있다. 그는 현실과 이상이 조화를 이루는 창조적 삶을 道學의 모태로 삼고, 국내외 여러 유수한 단체를 이끌며 21세기에 부합하는 현대적 정신문화 운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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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프롤로그]

세상에는 가치 있는 일이 수없이 많다. 하지만 그 어떤 것이 되었든 ‘나’를 찾는 일보다 우선하는 것은 없다.

나는 누구인가?

이 물음은 인류에게 이성이 싹트면서 시작된 가장 오래되고 본질적인 화두이다. 돌이켜보면 2천5백 년 전에 싯다르타를 위시해서 ‘나’를 찾았다는 사람들이 간간이 있었지만, 그것이 철학적 논거와 과학적 증명으로 객관화된 적은 없었다.
그래도 다행한 것은 그들로부터 ‘나’를 찾을 수 있는 실마리 몇 개를 얻었다는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存’이 있다.

그런데 「마음이 세상을 만들고, 그 세상에 저만 홀로 존재한다」는 얘기는 얼핏 봐도 비논리적이고 독선적이지 않을 수 없다. 문학이나 시詩의 영역이라면 모를까 논리적 사유를 요구하는 철학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 소식 들었다는 각자覺者들의 입에서 이구동성으로 비슷한 얘기가 흘러나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너무 수행에 몰두하다가 판단에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고차원적 진실이 숨어 있는 건지도 모른다.
베일에 싸인 깨달음의 비밀, 그것을 객관적으로 밝혀 우리 모두가 나누어 가질 수는 없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개개인의 영적 진화는 물론이고 인류 평화와 공영에도 적잖은 보탬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큰일을 이루려면 일반 대중들이 납득할 만한 논리부터 갖추어야 한다. 우리의 이성은 보고 듣고 만져지는 것에 흠뻑 길들여져 있다. 뭔가 실체가 분명하면서 합리적이어야 수긍하고 따르게 된다는 얘기인데, 그런 것으로 치자면 과학만 한 것이 없다.

과학…, 바로 여기서 ‘나’에 관한 실마리를 찾아보면 어떨까?

과학이 진부한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면 모르지만, 오늘날의 과학은 우리의 3차원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이제 철학적 견지에서 형이하학形而下學이라고 폄하 받던 과학은 옛말이고, 어느덧 형이상形而上의 영역까지 바싹 다가와 있다. 그렇기에 인류가 그토록 궁구했던 「나는 누구인가?」의 답을 찾기 위해 과학적 사실을 한껏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가령, 생명과학에서 말하는 거울뉴런(mirror neurons)은 인류라는 단 하나의 생명체에 대해 알려 주고, 양자역학의 이중슬릿 실험에서는 관찰자인 ‘나’가 우주 전체일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게 해준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 그냥 지나가는 얘기로 나온 게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현대물리학의 발달로 인해 입자의 존재가 부정되고 파동과 에너지가 부각되었다. 그러자 양자역학자들 사이에서 의식도 과학의 일부라는 말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추상적이고 모호한 ‘일체유심조’가 과학에 조금이나마 개입되고 있는 것이다.

3차원은 無와 有, 쉽게 말해 0과 1로 이루어진 세계이다. 그래서 인류가 이룩해 온 모든 학문은 0과 1의 대들보 위에 놓여 있다. 원래 학문은 철학 딱 하나였다. 철학은 0에서 1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밝히는 학문이다. 이것이 풀어지면 「나는 누구인가?」의 화두 역시 해결된다.
그런데 아무리 궁구해도 이것에 대한 납득할 만한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자 0을 부정하고 1의 자존自存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는데, 여기서 종교가 태동하였다.
종교가 번성해도 철학자들은 1의 자존自存을 거부했고, 어떻게든 0에서 실마리를 찾으려 했다. 이때 그 해법을 이성보다 직관과 심리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니, 수행자들이다. 그리고 1을 밝혀 0으로의 연결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바로 과학자들이다.

이렇게 철학의 0과 1의 문제 때문에 종교와 수행, 과학이 떨어져 나오게 되었다. 그래서 과학의 본래 목적은 0에 있다. 물론 오늘날 제1원인과 실존實存을 화두로 걸어 놓고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거의 없다. 그렇더라도 과학이 철학에서 떨어져 나올 때는 이런 거창한 명분에 의해서였다.
「1→0」의 사명을 알든 모르든 과학자들은 본능적으로 0을 추구한다. 그래서 입자가 있으면 그것을 쌍소멸시킬 반입자가 있어야 하고, 물질이 있으면 그것에 반대되는 반물질도 함께해야 한다.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과 에너지가 있으면 감춰져 있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도 준비돼 있어야 한다.
시간과 공간도 대칭으로 맞물려 하나가 되어야 하며,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을 합하면 질량이 0이 되어야 한다. 이때 극히 일부의 에너지라도 외계로 빠져나가면 안 되기에 「열역학 제1법칙」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주의 질서를 무너뜨려야 0에 가까워지기에 「열역학 제2법칙」도 따라오게 된다.
미시세계 역시 모든 입자들이 대칭을 이루어 질량이 0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현대물리학의 상징과도 같은 표준모형은‘게이지(gauge)대칭’을 써서 우주의 질량 총합을 0으로 만든다. 그런 연후에 1이 나오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자발적 대칭성 깨짐(spontaneous symmetry breaking)’을 도입하고 ‘힉스 입자’를 찾아 나서게 된다.

과학자들이 알고 그랬든 모르고 그랬든 과학은 1을 풀어 0을 완성하기 위한 학문이다. 만일 우주의 에너지 총합이 0이 아니라 1이면 종교의 영역이 되고 만다. 그래서 빅뱅을 일으킨 특이점 역시 0이 되어야 한다. 만일 계산 결과 질량이 있는 것으로 나오면 특이점 이전으로 숙제를 미루어야 한다. 어떡하든 총합은 0이 되어야 하며, 이것이 과학이 태동한 본래 이유이다. - 질량이 무한대로 커지면 차원이 역전되면서 0과 같아진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 시점에 다시 한 번 0과 1을 떠올려 보자? 둘 가운데 무엇이 먼저이고 진실인가?
1의 자존성自存性을 인정하면 과학과 철학은 그 순간 학문으로서의 사망선고가 내려진다. 1이 실존이면 종교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0→1을 이성理性으로 밝힌다. [철학]
1의 자존自存을 믿는다. [종교]
0→1을 직관直觀과 심리心理로 깨닫는다. [수행]
1을 관찰하고 실험하여 0을 증명한다. [과학]

1의 자존自存을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렇기에 「나는 창조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한다[구약/출애굽기]」고 자처하는 창조주 신이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던 철학과 과학은 어떡해서든 0에서 답을 구하려 했다.

그렇다면 철학은 0에서 1이 나오는 원리를 풀었는가?

완전히 실패했다. 물론 그것을 연구하다 파생된 방대한 철학 분야는 인류의 정신 문명에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되었다.

수행은 어떤가?

특별한 소수의 사람들만 성공했다고 하는데 증명할 길은 없다. 그렇더라도 수행 문화를 세상 곳곳에 퍼뜨려 인류의 영성에 기여한 점은 높이 칠 만하다.

과학은 어떤가?

0에서 1을 만들면서 그 0 속에 자꾸 1을 넣고 있다. 뭔가 알 수 없는 고차원의 존재가 있고 그곳에서 1이 나온 것으로 예상한다. 즉 과학은 1을 연구해서 수많은 업적을 쌓았지만 여전히 0의 문제에 있어서는 오리무중이다.

도대체 실존은 0이냐? 아니면 1이냐?

1이면 종교가 되고, 0이면 1을 창조할 수 있는 논거가 없고, 이거야말로 진퇴양난에 사면초가이다. 수천 년 전 철학이 태동할 때에 비해 0과 1은 조금도 변한 게 없이 제자리이다. 문명이 이토록 발전하였건만….

왜 이 문제를 못 푸는가?

2차원 평면 세계에 나타난 사각뿔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 높이가 도입되어야 한다. 높이를 떠올리지 못하면 영원히 사각뿔의 정체를 풀 수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0과 1을 풀기 위한 우리만의 높이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정보이다.
여기서의 정보란 어떤 관념과 지식을 전달하는 일반적인 information과는 다르다. 이는 물질의 바탕이 되는 참된 질료로서의 정보를 말하는데, 0과 1에만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낯설고 기괴하게 다가올 것이다. 아마 적잖은 독자들이 이 부분에서 책을 덮을 수도 있겠다.
평면 세계에 높이가 없듯, 우리 3차원 세계에도 질료로서의 정보는 눈에 띄지 않는다. 아니 관찰 정도를 넘어 상상으로도 그런 것은 떠올릴 수 없다. 그건 정보가 0과 1의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0과 1을 동시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0도 아니고 1도 아닌 제3의 존재 형태라는 것이다. - 수학의 허수 i를 연상해도 좋다.

우리는 입자가 실재하는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나를 포함해 우주의 모든 것은 당연히 1(有)이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입자가 실재한다고 증명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실험실에서 나온 것은 입자의 성질을 띤 파동뿐이다. 그 파동에 질량이란 수치를 붙이고 무슨 입자라고 이름을 지어준 것이다.
입자는 존재하지 않고 존재한 적도 없다.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파동뿐이다. 존재하지 않는 선과 면이 합해 입체가 됐듯, 우리 세계의 물질 역시 존재하지 않는 입자들을 굴비처럼 엮어 마치 있는 것처럼 여기게 됐다. 파동이 일으킨 홀로그램에 에너지가 실리면서 입자와 물질로 착각하게 된 것이다.
파동, 그것의 본질은 정보에 있다. 정보에서 파동이 나오고, 파동이 중첩되면서 입자성을 띠었다. 이 점을 밝히는 것이 본서의 일관된 주제이다.

필자는 이제부터 정보가 우주의 질료라는 사실에 대해 사고실험을 진행하고자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0과 1, 그리고 그것을 초월한 정보를 가지고 진실 게임을 펼칠 것이다. 그래서 첫 주제를 아리송한 氣에서부터 출발한다. 동양철학에서 에너지 파트를 맡고 있는 氣를 잠시 짚어 보고 본격적으로 현대물리학과의 한판 승부를 벌이려 한다. 물론 다툼의 장은 4차원과의 접경지대인 소립자의 세계로 한정한다. 그리고 여기서 도출된 승부 결과를 가지고 실존實存을 찾고 아울러 「나는 누구인가?」의 화두를 풀고자 한다.

각성覺性의 보편화,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현대물리학의 도움을 받는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고 본다. 이 책을 다 읽고 ‘일체유심조’와 ‘천상천하유아독존’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한 발 더 나아가 혹시 자신의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나는 누구인가?」의 첫단추가 꿰어졌다 할 것이다.
끝으로 본서가 각박한 삶 속에서 ‘나’에 목말라 하는 현대인들에게 일말의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에필로그]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입자들이 엉겨 붙어 세상이 만들어진 것으로 누구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현대물리학은 입자가 파동에서 나온 것임을 속속들이 밝혀냈다.
그런데 그 파동은 흔히 알고 있는 매질 속으로 퍼지는 진동과는 여러모로 달랐다. 마치 홍길동의 분신술처럼 매질도 없이 파도를 치면서, 상태중첩(superposition)과 양자도약(quantum jump)과 같은 마법을 연신 펼쳐내고 있다. 물질을 쪼개고 들어갔더니 난데없이 허깨비들의 신기루가 펼쳐진 것이다. 이것들이 우리 우주의 실체였다니…!

파동이 일으키는 허깨비들의 잔치를 인정하면 우리 세상은 하루아침에 신기루로 전락할 것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파동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입자를 모델로 한 설계도, 즉 표준모형을 그렸다. 이것이 실제여야 한다는 믿음 하나로 실험과 검증에 매진했고 그렇게 하기를 무려 반세기, 우리 우주에 가장 잘 들어맞는 모델을 선보이게 되었다.

하지만 표준모형의 여러 가지 놀라운 업적에도 불구하고 입자가 실재實在한다는 증거는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힉스 입자를 찾고 그 이상의 입자를 발견한다 해도 어떤 알갱이로 이루어진 최소 단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표준모형에 나오는 입자들은, 3차원 세계에 편리하도록 임의로 질량을 붙여 만든 가공된 것들이다.

가령 2차원 평면 세계에 ‘높이’라는 것이 등장했을 때,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하여 허깨비로 치부하면 어떻겠는가?

실험실에 나타난 사각뿔을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사각형과 삼각형으로 쪼갠다면 영원히 평면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물론 2차원 세계의 특성상 평면을 통하지 않고는 인지할 수 없기에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다.
현실이 그렇더라도 차원이 지닌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 무모한 것 같지만 역사는 그런 기발한 도전 정신에 의해 진보해 오지 않았던가.

3차원 세계에 사는 우리들 역시 입체를 통하지 않으면 인식의 한계에 걸리고 만다. 그래서 존재하는 모든 것을 물리량이나 입자로 치환하여 따진다. 이렇게 해야 계산도 편하고 실제 물리법칙에도 잘 맞아 유용하게 된다.

하지만 한 세기 전부터 더 이상 그런 방식이 먹혀들어가지 않는 상황으로 돌변했다. 물질을 너무 쪼개다 보니 4차원 세계와 경계를 마주하게 됐고, 그곳은 3차원 입체의 잣대로 헤아리기에는 너무나 불확실하였다.
마치 동화 속 세상을 방불케 하는 그곳은 우유부단한 파동들이 제멋대로 움직이며 어느 공간이든 헤집고 다닌다. 정리되지 않은 단상斷想처럼 온통 앞뒤가 맞지 않는 파동들로 채워져 있는데, 어찌 보면 3차원 감옥에 갇히기 전에 실컷 자유를 만끽하려는 듯도 보인다. 그러면서 3차원 폐쇄 정보와 맞닥뜨리기라도 하면 언제든 응축하여 입자처럼 모습을 꾸민다.

2차원 평면 세계에 사각뿔이 나타난 것처럼, 이제 우리 3차원 세계에도 4차원 존재가 등장했다. 이것을 이상한 나라의 괴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했던 고차원 세계의 영물靈物로 볼 것인지의 기로에 섰다. 전자前者처럼 여겨 거리를 둔다면 우리는 평면 세계 생물들이 한 것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게 된다. 자신이 속한 차원의 잣대로만 해석하려 해서는 고차원의 수수께기는 영원한 미제로 남을 것이다.

우리가 미시세계로 쪼개 놓은 곳, 그곳은 4차원과의 중립지대이다. 그래서 3차원의 통치 방식이 먹히지 않는다. 그렇다고 온전한 4차원의 질서를 따르지도 않는다. 이곳은 4차원을 구성하는 정보가 상당 수준 폐쇄되어 파동의 형태로 존재하는데, 그것이 3차원의 정보를 접할 때 응축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입자의 모습을 띤다. 그렇기에 3차원 세계를 만들어낸 물질들은 모두 파동이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정보이다. 그리고 정보의 모체는 5차원 空이고 말이다.

정리하면 차원에 따른 질료質料와 의식의 발전은 「물질→ 입자 →파동→ 정보→ 空」의 순서를 밟게 된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천지창조는 그 역순위가 된다.

이제 우리 세계는 과학자들의 노고에 힘입어 세 번째 파동의 위치까지 왔다. 여기서 다시 입자로 복귀하려는 저항이 만만치 않게 일어난다. 왜냐, 입자를 포기하면 3차원 우리 세계를 부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곳에 사는 인류 자체의 정체성도 증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리와 진실을 구별하여 조심스럽게 접근하면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훨씬 클 것이다.
3차원 우물 안에 있기에는 인류의 지혜가 너무 크게 자라났다.

모쪼록 미시세계에서 파동들이 일으키는 기괴하고 신비로운 현상을 이해하려 힘쓰고,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파동이 정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되면 우리 인류는 양자(quantum)가 도약하는 것처럼 3차원의 벽을 뚫고 4차원 문명으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차원이란 결국 우주를 바라보는 관점과 해석에 의해 갈라진 것이기에, 우리의 인식을 바꾼다면 얼마든지 그런 고차원 문명을 실현할 수 있다.

필자는 비전공자로서 주제넘게 현대물리학에 관해 풀어 보았다. 천학에 의한 오류가 적지 않겠지만, 딱 한 가지만은 결코 양보할 수 없다. 그것은 바로우리 우주가 정보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물질이나 입자는 정보가 일으킨 파동이 폐쇄되면서 생성된 부산물이다. 이 점을 명백히 해서 훗날 정보물리학의 탄생에 일조하게 된다면 펜을 잡은 보람은 충분할 것이다.

요컨대 2차원 평면 세계의 화두가 ‘높이’이듯 3차원 입체 세계의 화두는 단연코 ‘정보’이다. ‘정보’가 세상의 질료가 된다면, ‘나’는 피조물에서 벗어나 저절로 우주적 존재로 승화하게 된다. 그리고 그‘정보’가 空으로까지 연결되면 비로소 「나는 누구인가?」의 화두가 풀어지면서 실존實存의 의미를 찾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꼭 그렇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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