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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액션/스릴러소설 > 외국 액션/스릴러소설
· ISBN : 9791185051949
· 쪽수 : 392쪽
· 출판일 : 2015-03-23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허겁지겁 팔로 옆을 더듬자 벽이 만져졌다. 무릎을 끌어올리려고 했지만 뭔가에 부딪쳐 올라오지 않았다. 발을 버둥거려봐도 쿵쿵거리는 둔탁한 소리만 날 뿐이었다. 그녀는 갇혀 있었다. 몸을 더 빨리 비틀었다. 이 좁고 어두운 감옥을 벗어나야 한다. 다급하게 온몸을 튕기던 에바는 점점 더 큰 공포에 휩싸였다. 비명을 지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주먹으로 천장을 두드렸다. 몇 번이고 계속. 그러다가 모두 멈추고 가만히 누웠다.
흉곽이 바삐 오르내렸다. 숨을 쉴 때마다 흐느낌이 함께 흘러나왔다. 그러는 동안 이성은 이 상황에 대한 해명을 찾아 머릿속을 쑤시고 다녔다. 몇 분이나 지난 뒤에 드디어 의식의 수문이 열리고 생각이 한가득 쏟아졌다. 이 생각들을 잡아야 한다. 공포를 눌러야 한다.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세상에, 내가 갇혀 있어. 공포……, 생각을 짜내야 한다……. 지금 당장.
사방 몇 센티미터 앞이 모두 벽이었다. 공기는 탁하고 눅눅한 맛이 났다. 그 와중에 머리를 받친 베개는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럽고 폭신했다. 조심스럽게 손을 끌어올려 벽을 더듬다가, 몸이 심하게 떨려 말을 듣지 않는 바람에 자기도 모르게 벽을 몇 번 세게 눌렀다. 벽은 단단했고 표면은 매끈했다. 마치 공단이나 실크를 댄 것처럼. 머리 위쪽 벽에도 같은 직물이 대어져 있었다.
이건…… 마치……. 심장이 쿵쿵 뛰었다. 맥박이 점점 더 빨라졌다. 숨이 멎을 듯했다.
마치 관 속에 있는 것 같잖아.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꼼짝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정적, 죽음 같은 정적.
“안 돼.”
에바는 속삭이듯 말했다.
“절대 안 돼. 이건 아니야.”
관. 그녀는 관 속에 누워 있었다.
남자는 늘 그렇듯 눈을 뜨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새벽 4시가 막 지난 시각이었다. 머릿속에서 거침없이 생각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음침한 장면과 기괴한 조각들, 들끓는 용암처럼 의식을 흐르는 끝 모를 증오의 증거들이었다.
남자는 벌떡 일어나 분노에 찬 손길로 티셔츠와 팬티를 급하게 벗었다. 몸에 아무것도 걸쳐서는 안 된다. 그건 잘못된 일이다. 살갗을 거칠게 쓸던 그의 양손이 때때로 멈추었다가 다시 움직였다. 그가 증오하는 더러운 몸이다.
더운데도 몸이 떨렸다. 남자는 팔을 내리고 그 자리에 선 채, 근육을 미친 듯이 진동시키는 경련을 견뎌냈다. 그 순간이 지나갔다. 차분해진 그는 자기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여자의 얼굴이, 그 눈에 깃들었던 비굴한 공포가 떠올랐다.
“공포를 느끼는 사람은 삶과 마주하지 못하는 법이지.”
그가 이렇게 말했는데도 여자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힌트를 하나 더 주었다.
“공포는 인간을 더럽히고 소심한 겁쟁이로 만든다.”
그러나 여자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눈동자에 극심한 공포가 어려 있었다. 여자의 비명이 또 들려왔다. 자기 손이 보였다. 그녀의 얼굴로 다가가 그 비명을 꾸르륵거리는 신음으로 바꾸어놓고는 다시 입을 누르는 손. 여자는 겁쟁이였다. 남자는 여자가 그 사실조차도 모른다는 걸 확실하게 깨달았다. 여자는 너무 둔해서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힌트를 또 주었다.
“징벌과 지식은 달콤 쌉싸름한 자매 관계다. 징벌은 이행되어야 한다. 그게 사회를 정화하는 옳은 길이자 유일한 길이다.”
그런 다음 남자는 그녀를 가두었다. 그는 자신의 행위가 옳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여자는 결국 알아들었을까?
그는 어둠 속에 한참이나 그대로 서서, 머릿속에 다시 떠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목소리는 상상할 수도 없이 끔찍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소름 끼치는 사건, 산 채로 매장된 여성 발견
그리고 그 아래에는 약간 작은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그렘베르거 숲에 관이 묻혀 있다는 익명의 제보가 경찰에 전해지다
여성? 산 채로 매장? 하필 내가 그 꿈을 꾼 다음에?
그러나 더 끔찍한 일이 있었다. 누군가 붉은 사인펜으로 표제에 여러 번 밑줄을 긋고, 그 옆의 공간에 가늘고 삐뚤삐뚤한 글자를 끼적여놓았다.
이제 좀 깨어나라!
에바의 손이 제멋대로 올라가더니, 한없이 느리게 움직여 입술에 가 닿았다. 시선은 손으로 쓴 세 단어에 그대로 못 박혀 있었다.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펄떡였다. 누가 쓴 거지? 이게 무슨 뜻일까? 깨어나라니? 어디서? 혹시 꿈에서? 산 채로 매장……. 하지만 그 꿈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리고 왜 그 꿈을 하필 지금 꾼 거지? 누군가 실제로 산 채로 매장되기 직전에……. 혹시 그게 꿈이 아니었다면?
“세상에.”
에바는 손을 입에 그대로 댄 채 중얼거리다가 벌떡 일어나 부엌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을 쉴 새 없이 비비고 손가락을 깍지 꼈다 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머릿속이 완전히 뒤죽박죽이었다.
설마 내가 예지력을 갖게 된 걸까? 아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하지만…… 그 꿈은 너무 생생했잖아. 어쩌면 내가 영매 비슷하게 일종의 혼수상태에 빠져서 이 여자가 겪을 일을 미리……. 에바는 성큼성큼 걸어 세 걸음 만에 식탁에 가서 다시 앉은 다음, 기사가 보이게 신문을 똑바로 폈다.
“어, 어떻게…….”
셋째 줄에 희생자의 이름이 있었다.
여자의 이름과 마주치자 심장이 그대로 멎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