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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동양철학 > 동양철학 일반
· ISBN : 9791185151137
· 쪽수 : 308쪽
· 출판일 : 2015-08-18
책 소개
목차
1. 삶
끽다거喫茶去 7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33
삶에서 죽음으로, 죽음에서 삶으로 37
과거를 떨쳐버려라 74
깨어나라! 90
2. 사랑
사랑은 기적이다 121
사랑을 기도로 삼으라 161
사랑에 대한 세 가지 질문 196
3. 웃음
이심전심以心傳心 227
심각함은 질병이다 259
나는 농담을 좋아한다 267
어린아이로 돌아가라 274
마음을 초월하는 웃음 287
그대, 이제 웃을 수 있는가 298
책속에서
선의 일화 하나를 소개하겠다.
조주 선사가 사원에 새로 온 승려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곳에 와본 적이 있는가?”
“아니요, 처음입니다.”
“그럼 차나 한 잔 들게나.”
선사는 또 다른 승려에게도 이렇게 물었다.
“그대는 이곳에 와본 적이 있는가?”
“네, 전에 왔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조주는 앞에 승려에게 한 것과 똑같이 말했다.
“그럼 차나 한 잔 들게나.”
그것을 보고 있던 사원의 원주가 조주 선사에게 물었다.
“선사께서는 어째서 이곳에 왔던 사람이나, 처음 온 사람이나 다 같이 차나 한 잔 들라고 말씀하십니까?”
이 말에 선사는 원주를 돌아보며 말했다.
“원주! 자네도 차나 한 잔 들게나.”
이것은 아주 단순한 일화이지만,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글이다. 원래 그런 법이다. 단순한 것일수록 이해하기가 더 어렵다. 이해한다는 것은 복잡한 대상이 필요하다는 뜻이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을 나누고 분석해야 한다. 단순한 것은 나누고 분석할 수 없다. 사실 너무나 단순하기 때문에 구분하고 분석할 것이 없다. 가장 단순한 것이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신을 이해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신은 가장 단순한 것이다.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다. 사물이 복잡할수록, 마음은 그것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단순한 것일 때 마음은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논리학자들은 단순한 특성들을 규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 노란색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노란색이라는 것은 너무나 간단한 특성인데, 그것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겠는가? 그대는 ‘노란색은 노란색이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은 ‘그건 나도 안다. 하지만 노란색의 규정은 무엇인가?’라고 말할 것이다. 그대가 노란색은 노란색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일 뿐이다. 동어반복이 될 뿐이다.
20세기에 가장 위대한 인물들 가운데 한 명인 조지 에드워드 무어는 <윤리학 원리>라는 책을 집필했다. 그 책은 온통 ‘선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규정을 다루고 있다. 모든 분야를 통틀어 2, 3백 페이지의 분량에-무어는 다른 사람의 3천 페이지에 해당하는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그는 결국 선善을 규정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선善이란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간단한 특성이다.
복잡한 것 안에는 수많은 요소가 들어 있다. 그대는 그것들을 하나씩 규정할 수 있다. 그대와 내가 방 안에 있고, 그대가 나에게 ‘당신은 누구인가?’라고 물으면, 나는 적어도 ‘나는 그대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는 있다. 이것은 규정이고 표식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방 안에 홀로 있고, 나 자신에게 ‘나는 누구인가?’라고 물었을 때, 그 질문은 계속 떠오르지만, 답안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을 어떻게 규정하겠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늘 신神을 놓쳐왔다. 지식은 그것을 부정하고, 이성은 ‘노No’라고 말한다. 신神은 존재계에서 가장 단순한 근원이다. 그것은 가장 간단하며 기본적인 것이다. 마음이 멈추면, 신神 이외에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과연 신神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겠는가? 신神은 방 안에 홀로 있다. 그래서 종교들이 서로 구분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래야만 신神에 대한 개념을 규정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 속세는 신神이 아니다. 신은 속세가 아니다. 신은 물질이 아니다. 신은 육체가 아니다. 신은 욕망이 아니다.”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신神을 규정한다.
그대는 어떤 것에 대척해서 다른 것을 세워놓는다. 그러면 경계가 만들어진다. 만약 이웃한 것이 없다면 그대는 어떻게 경계선을 그릴 수 있겠는가? 이웃집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자기 집의 울타리를 세우겠는가? 자기 집의 울타리는 이웃의 존재를 통해 가능해진다. 신神은 홀로 있으며, 어떤 이웃도 없다. 그런데 신이 어디서 시작하는가? 신은 어디에서 끝나는가? 그런 것은 없다. 과연 그대는 신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 신을 규정하기 위해서 악마가 만들어졌다. 신은 악마가 아니다. 적어도 그렇게는 말할 수 있다. 신이 무엇인지 말할 수는 없어도, 신이 무엇이 아닌지는 말할 수 있다. 신神은 속세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