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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외국에세이
· ISBN : 9791185393308
· 쪽수 : 288쪽
책 소개
목차
본문
작품해설
조지 오웰 연보
리뷰
책속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현상은 파시스트 탈주병이 전선을 넘어와, 감시병이 알쿠비에레로 데려오는 것이다. 이쪽 전선 맞은편 병사는 파시스트라기보다 전쟁이 발발한 시점에 병역의무 기간이 겹치는 불행에 시달리다가 탈영할 기회만 엿보는 징집병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몇 명이 모여서 우리 쪽으로 넘어오는 위험을 감수할 때가 잦았다. 파시스트 지역에 사는 가족만 없다면 더 많은 병사가 우리 쪽으로 넘어왔을 게 분명하다. 이렇게 탈영한 병사가 내가 목격한 첫 번째 ‘진짜’ 파시스트였다. 나는 그들이 우리와 다를 게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바지가 카키색이라는 게 유일한 차이였다. 우리 쪽으로 데려올 때마다 그들은 하나같이 굶어 죽기 직전이었다. 사람이 하나도 없는 중립지대를 하루 이틀씩 피해 다녔으니 너무나 당연한 결과인데,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 쪽에서는 파시스트 군대가 굶주린다는 증거라고 의기양양하게 떠벌렸다.
나는 탈주병 가운데 하나가 농가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정말 안타까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스무 살 정도로 보이는 커다란 청년이 살갗은 바람에 상할 대로 상하고 군복은 넝마에 가까운 행색으로 불가에 쭈그려 앉아서 절박한 표정으로 스튜를 접시째 들이마시는데, 그러는 동안에도 두 눈은 주위를 동그랗게 에워싼 채 가만히 지켜보는 민병대를 초조하게 흘끔거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는 우리가 피에 굶주린 <빨갱이>라서 자신이 식사만 마치면 곧바로 총살할 거라는 생각을 완전히 떨쳐낼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를 데려온 감시병은 그 어깨를 계속 도닥이며 안심하라고 달래주었다.
탈영병 열다섯 명이 한꺼번에 몰려온 기념비적인 날도 있었다. 그들은 백마에 올라탄 감시병이 인솔하는 가운데 마을 전체를 의기양양하게 돌았다. 나는 사진을 한 장 찍어두었다. 초점이 안 맞아서 희미하게 나온 사진인데, 나중에 누군가가 훔쳐가고 말았다.
민병대 편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장교와 사병이 동등하다는 사상이다. 장군에서 사병까지 모두 똑같은 보수를 받고,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옷을 입고, 완전히 평등한 상태로 함께 뒤섞이며 생활했다. 사단을 지휘하는 장군에게 등을 톡 치면서 담배 한 대 달라고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되는데, 그걸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론적으로 민병대원 각자는 계급 체계가 아니라 민주주의 원칙에 따랐다. 명령에 복종한다는 공감대는 있지만, 명령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게 아니라 동지가 동지에게 하는 거였다. 장교도 있고 부사관도 있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 말하는 군대 계급은 아니었다. 계급 명칭도, 계급장도, 뒤꿈치를 찰싹 붙이는 경례도 없었다. 민병대에서 계급 없는 사회 모델을 일시나마 만들려고 했던 거다. 물론 완벽하게 평등한 건 아니지만, 내가 그때까지 목격하거나 전시에 생각할 수 있는 이상으로 가까이 접근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전선에서 너무 무질서한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끔찍하게 여겼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군대를 가지고 전쟁에서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 당시에는 모두가 이렇게 말했는데, 이 말은 맞는 말이면서 동시에 부당한 말이기도 했다. 다양한 여건상 민병대는 어차피 그 수준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대식 기계화 부대는 땅에서 갑자기 솟아나는 게 아니다. 인민전선 정부가 제대로 훈련된 군대를 준비할 때까지 기다렸다면 프랑코에게 아무런 저항도 못 한 채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민병대를 비난하는 게 유행으로 변하고, 훈련도 부족하고 무기도 부족한 건 평등한 군 체계 때문이라고 공격하는 사람도 나왔다. 하지만 새로 모병한 민병대가 오합지졸인 건 장교가 사병을 “동지”라고 불러서가 아니라, 신병 부대는 어디나 오합지졸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주적이고 <혁명적>인 규율은 흔히 예상하는 이상으로 믿음직하다. 노동자 군대에서 규율은 원칙적으로 자발적일 수밖에 없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혁명 정신에 근거해서 움직이지만, 부르주아 징집병은 궁극적으로 공포에 근거해서 움직인다. (민병대를 대체한 인민군은 두 가지 유형에서 중간이다.) 민병대는 일반 군대에서 일상 일어나는 기합이나 학대를 조금도 용납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군법회의나 징계는 있지만, 극히 심각한 범죄에 한정했다. 병사가 명령에 복종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처벌하는 대신, 동지애로 호소했다. 사람을 다룬 경험이 없고 냉소주의만 가득한 사람이라면 이런 방식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고 단번에 말하겠지만, 실제로 그런 방법은 장기적으로 볼 때 “효과”가 확실하다. 아무리 엉망진창이던 민병대 신병이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규율은 눈에 띄게 나아졌으니 말이다.
부대가 전선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하사로 ? ‘카보’로 ? 승진해, 보초 열두 명을 지휘했다. 쉬운 업무가 아닌데, 처음에는 특히 심했다. <센투리아>는 훈련을 조금도 못 받은 오합지졸로 대부분 십 대 청소년이었다. 민병대 여기저기에서 열한 살이나 열두 살짜리 어린애도 툭하면 마주치는데, 파시스트 지역에서 피신해 가장 손쉽게 먹고사는 방법으로 민병대에 입대한 아이들이다. 후방에서 쉬운 일을 맡는 게 보통이지만 교묘하게 빌붙어서 전선까지 오는 사례도 가끔 있으니, 이들은 전선에서 정말 커다란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어느 조그만 녀석이 “장난삼아서” 참호 모닥불에 수류탄을 던진 기억도 난다.
포세로 산에는 열다섯 살 이하가 없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평균 연령은 스무 살을 한참 밑도는 게 분명하다. 이런 어린애는 전선에 보내면 절대 안 된다. 참호전에서는 잠이 항상 모자랄 수밖에 없는데, 어린애는 그걸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밤에 진지에서 보초를 제대로 세울 수 없을 정도였다. 우리 분대에 속한 아이들은 가련하게도 발을 잡고 참호 밖으로 질질 끌어내야 잠에서 겨우 깨어나다, 지휘관이 등을 돌리는 순간에 위치에서 벗어나 잠잘 곳으로 찾아들거나, 끔찍하게 추운 날씨에도 참호 벽에 기댄 채 그대로 잠들기 일쑤였다. 적군에게 모험심이 많지 않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보이스카우트 스무 명이 공기총으로 무장하고 달려들어도, 아니, 걸스카우트 스무 명이 빨랫방망이만 들고 달려들어도 우리 진지를 단숨에 휩쓸어버릴 거란 생각이 밤마다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