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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91185393513
· 쪽수 : 128쪽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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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속에서
그래서 양을 그렸다. 아이는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다 말했다.
“안 돼! 병들었어. 다른 양으로 그려줘.”
나는 다시 그렸다. 어린 친구가 너그럽고 상냥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아이, 참…… 얘는 양이 아니라 염소잖아. 뿔이 달려서……”
그래서 또 그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퇴짜를 맞았다.
“얘는 너무 늙었어. 난 함께 오래 살 수 있는 양이 필요해.”
나는 짜증이 치밀기 시작했다. 비행기 엔진을 한시바삐 분해하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그림 하나를 끼적거려서 아이에게 툭 던지며 설명했다.
“이건 상자야. 네가 원하는 양은 안에 있어.”
그러자 어린 심판은 내가 깜짝 놀랄 만큼 환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내가 원하던 양이야! 양한테 풀을 많이 줘야 할까?”
“왜?”
“내가 사는 별은 무엇이든 조그마해서……”
“그래도 양이 먹을 풀은 충분할 거야. 내가 너한테 준 양은 아주 조그마니까.”
아이가 고개를 숙여서 그림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렇게 작은 건 아니야, 보라고! 어느새 잠들었네……”
나는 이렇게 해서 어린 왕자를 만났다.
“커다란 바오밥나무도 처음에는 아주 조그맣겠지?”
“그렇겠지. 양이 조그만 바오밥나무를 먹길 바라는 이유는 뭐야?”
“아이, 참! 그것도 모른단 말이야?”
어린 왕자는 어이없다는 어투로 반문하고, 나는 혼자서 수수께끼를 푸느라 머리를 짜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알았는데, 어린 왕자가 사는 별도 다른 별처럼 좋은 식물과 나쁜 식물이 있다. 좋은 식물에서는 좋은 씨앗이, 나쁜 식물에서는 나쁜 씨앗이 나온다. 그런데 씨앗은 눈에 안 보인다. 땅속에 은밀하게 숨어서 잠자다, 어느 날 문득 깨어나, 기지개를 켜곤, 아무한테도 해를 끼칠 마음이 없다는 듯 햇빛을 향해 조그만 싹을 슬며시 내민다. 싹에서 빨간 무나 장미가 나온다면 마음대로 자라도록 가만히 두어도 된다. 하지만 나쁜 식물이 나오는 싹이라면 눈에 띄는 대로 뽑아야 한다.
“아저씨는 모든 걸 엉망진창으로 혼동해. 모든 게 뒤죽박죽이라고! 내가 아는 별이 있는데, 몸이 뚱뚱하고 얼굴은 뻘겋게 달아오른 아저씨가 살아. 아저씨는 꽃향기를 맡은 적이 없어. 별을 바라본 적도 없고 누구를 사랑한 적도 없어. 평생, 숫자를 더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안 해. 그러면서, 지금 아저씨가 그런 것처럼, 온종일 ‘나는 중요한 일 때문에 바빠!’라는 말만 되풀이하는데 여간 거만한 게 아니야. 하지만 그건 사람이 아니라 버섯이라고!”
“뭐?”
내가 묻자 어린 왕자는 화나서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버섯! 꽃은 수백만 년 전부터 가시를 키웠어. 양은 수백만 년 전부터 꽃을 먹었어. 그런데 꽃이 쓸모도 없는 가시를 만들려고 그토록 애쓴 이유를 알아내는 게 하나도 안 중요하다는 거야? 꽃하고 양하고 싸우는 게 하나도 안 중요하다는 거야? 그런 건 몸뚱이가 뚱뚱하고 얼굴이 뻘건 아저씨가 계산하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거야? 내가 사는 별에 아주 귀한 꽃이 있어도, 우주 전체에 한 송이밖에 없어도,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어린 양이 무심코 먹어치워도, 그런 건 안 중요하다는 거야?”
어린 왕자가 급기야 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계속 다그쳤다.
“수백만 수천만 개나 되는 별에 한 송이밖에 없는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별 무리를 바라보는 자체로 마음이 행복한 걸 느낄 수 있어. ‘저기 어딘가에 내가 사랑하는 꽃이 있겠지……’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그런 꽃을 양이 먹으면 어떻게 되겠어? 그러면 그 사람이 사랑하는 수백만 수천만 별이 한순간에 빛을 잃는 거야! 그런데도 중요하지 않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