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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파도가 쳐야 재밌제이

인생은 파도가 쳐야 재밌제이

(행복한 농사꾼 홍쌍리, 삶을 노래하다)

홍쌍리, 김도혜 (지은이)
  |  
알마
2014-03-25
  |  
1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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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파도가 쳐야 재밌제이

책 정보

· 제목 : 인생은 파도가 쳐야 재밌제이 (행복한 농사꾼 홍쌍리, 삶을 노래하다)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5430171
· 쪽수 : 280쪽

책 소개

청매실농원 홍쌍리의 삶을 다룬 책이다. 삶의 이야기는 물론 힘들 때마다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써놓았던 편지와 일기 그리고 시詩가 담겨 있다. 홍쌍리는 이 책을 발간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읽고 힘든 시련을 겪는 사람들이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덧붙인다.

목차

홍쌍리의 들어가는 말
김도혜의 들어가는 말

1장 두 아버지
미운 놈 떡도 안 준 아버지/지독한 아버지, 자상한 아버지/어머니의 죽음, 또다른 삶이 시작되다

2장 눈물과 매화
시집살이, 고난이 시작되다/매화꽃이 말을 걸다/뜻하지 않은 시련, 빚더미에 앉다

3장 장사를 잘하는 여자
광복동의 패셔니스타, 홍쌍리/“장사하는 게 재미있더라고”/‘괴기 보태기’ 홍쌍리를 며느리 삼다/못사는 다압면이 먹고살게 되다/고객감동 마케팅의 귀재, 홍쌍리

4장 꽃의 노래, 나의 노래
자연에 말을 걸다/“젊은이들 마음에 남는 글을 쓰고 싶데이”

5장 인간 불도저
매화는 내 딸, 매실은 내 아들/“너무 재밌어서 잠이 안 와. 매실 만지고 싶어서”/매실의 효능을 알고, 매실에 미치다/기적처럼 찾아와준 첫 고객/“매실은 항아리에 담는 게 최고야”/최초로 전통식품 명인이 되다/“개성 없는 농업은 2등이 될 수밖에 없제”/경영자가 아닌 농사꾼의 마음으로

6장 일하는 여왕벌
최고의 스승 시아버지의 우등생 며느리/매화나무만이 희망이다/감동을 선사하는 청매실농원으로/“느리게 가더라도 내 생각대로 가고 싶어”

7장 사람아, 사람아
사람에게는 높고 낮음이 없다/소비자에게 가장 좋은 것을 줘야 한다/표정이 밝고 좋은 기운을 주는 사람을 뽑는다/나를 힘들게 한 인연도 다 좋은 열매를 맺었다/법정스님은 또 한 분의 아버지셨다

김도혜의 나가는 말/편지/홍쌍리 연보

저자소개

홍쌍리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43년 밀양에서 태어나 1965년 스물 셋에 전남 광양 백운산 섬진강변으로 시집갔다. 가업이 망하면서 빚쟁이들에게 시달렸고, 남편은 화병을 얻어 몸져누웠으며, 자신도 머슴처럼 일하느라 만신창이가 됐다. 그러면서도 오랜 세월 ‘매화는 내 딸, 매실은 내 아들’이라 여기며 매화나무를 심고 매실 먹거리를 연구했다. 1994년 청매실농원을 설립하고, 1997년에는 매실 명인으로 선정됐으며, 1998년에는 대통령상을 받았다. 1995년 이후 매년 매화축제를 열어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TV와 잡지 등 다양한 매체에 ‘밥상의 푸른 보석’ 매실을 알려왔다. ‘매실=홍쌍리’라는 등식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일하는 틈틈이 글을 쓰고 시를 지었다. 어떤 글은 편지가 돼 지인의 손에 쥐어졌고, 어떤 시는 노래가 돼 사람들 앞에서 불렸다. 그간 지은 책으로는 『행복아 니는 누하고 살고 싶냐』 『홍쌍리의 매실 해독 건강법』 『밥상이 약상이라 했제!』 『인생은 파도가 쳐야 재밌제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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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혜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66년 겨울에 서울 인사동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에서 불문학을, 성신여자대학교에서 서양미술사를, 뉴욕대학교에서 매체이론과 영화제작을 공부했다. 강제규필름 해외마케팅 실장으로 <쉬리> <은행나무 침대> 등의 해외세일즈를 했고, 고려대학교 영문과에서 ‘문학과 영화’를 강의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리얼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청년필름 제작본부장으로 일하며 <분홍신>을 프로듀싱하고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을 기획했다. 현재 영화・뮤지컬 제작사 ‘탄탄 프로젝트’ 대표다. 그가 쓴 인터뷰집 영화감독 김조광수의 《나는 게이라서 행복하다》는 한국인권재단 ‘2012년 올해의 인권 책’으로 선정되었다. 그가 쓴 뮤지컬 대본 <곤, 더 버스커>는 ‘2013년 공연예술 창작산실 지원사업 우수작’으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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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1장 두 아버지
도혜 : 친정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는 시댁에서의 생활이 많이 힘드셨어요?
쌍리 : 남편과 시숙이 벌인 사업이 망해서 재산 다 날리고, 살림이 말이 아니었지. 십 년 넘게 빚 갚으면서 고생하던 때였어. 임종을 몬하고 나니 죄송한 마음이었지만, 한편으론 한 번이라도 아부지한테 나한테 왜 그랬냐고 물어보기라도 했으면 속이라도 좀 후련했을 것을 싶었지. 딱 한 번 아부지한테 쏘아댄 적이 있어. 시댁으로 나를 찾아온 아부지에게 뭐할라꼬 왔냐고, 이런 데 시집보낼라고 나를 낳았냐고 했지. 지금은 내가 좀더 잘해드리지 몬한 거가 맘에 남고, 내를 공부 안 시킨 것도 어쩌면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부지가 그립고 감사한 마음뿐이야.

도혜 : 빚 때문에 꽤 긴 세월을 고생하던 시절인데도, 내가 잘되는 것을 보여드리겠다는 의지가 강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네요. 무슨 일을 어떻게 도모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어요?
쌍리 :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난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내가 많이 배운 것도 아니고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것도 아니었지. 우리 시아부지가 나를 잘 가르쳐주셨어. 그래야 냉중에 해나갈 거라고 생각하신 건지. 지금 생각하면 아부지는 내 머리 꼭대기에 앉아서 나를 키우신 것 같애. 농사지어서 자기 식구 입치레하는 것이 아니고, 온 동네가 다 같이 잘사는 법, 좋은 것을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롭게 쓰는 것을 생각하시던 분이었어. 자연히 나도 생각하는 크기가 달라졌지. 시아부지 뜻을 이어야 한다는 게 늘 머릿속에 있었어. 일만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부모 없이 자란 당신의 어린 시절 설움과 일본에서 탄광 일 할 때의 고생담 같은 온갖 속내 이야기를 내게 다 하셨지.


2장 눈물과 매화
“여기는 사람이 없어, 너무너무 외로워서 도저히 몬 살아. 이 산속에서 물 길러 갈라면 항아리 끼고 꼬불꼬불 가도가도 끝이 없어. 빈 항아리만 해도 너무너무 무거워. 머리에 이고 오는데 건득건득하다 물은 전부 앞에고 뒤에고 쏟고, 다후다 치마는 버스럭버스럭 소리가 날 정도로 젖어가, 눈물인지 쏟아진 물인지 뒤섞여 엉망이 돼가꼬 주저앉았어. 항아리를 바윗돌 위에 올려놓는데, 돌 사이 양지바른 데 매화 한 송이가 나풀나풀하고 있어. 근데 꽃이 나를 보고 엄마, 울지 말고 나랑 같이 살아, 하는 것 같은 거야. 그 꽃 앞에서 하염없이 울고 나니 속이 후련하더라고. 울다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저 멀리 섬진강 위에 새벽안개가 솜이불 덮어놓은 것 같고 그 뒤에 지리산이 감싸고 있네. 내가 여기서 오늘 살다가 내일 도망을 가더라도, 이 아름다운 곳에 꽃 천국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불러들이자, 그럼 안 외로울 것 아닌가, 이런 맘이 들더라고.
처녀 때 진해 벚꽃장에 놀러갔던 게 생각난 거지. 옛날에는 버스에 다 뚜드려 밀어였는다 아이가, 안에서 찡겨 죽든가 말든가, 차장도 올라붙어가 땀이 나가지고 버스 안에서 목욕을 다 해삐려. 근데 가보면 별거 아니라. 그냥 꽃이 피어 있는 거야. 해군기지 앞에 요렇게 있는 평지에 사람이 바글바글하는데. 4월달이었지. 근데 여기 와 보니 세상에, 설 쇠고 바로 눈 속에서도 꽃이 피더라고. 2월 설중매를 처음 봤지. 벚꽃은 봤어도 겨울에 핀 매화는 여기 와서 처음 봤는데 너무 아름다운 거야. 너무 예쁜 이 꽃을 보러 진해 벚꽃장 만치만 와라…”


3장 장사를 잘하는 여자
도혜 : 닭백숙 장사와 김치 장사는 어떻게 해서 시작하셨어요? 부산 시절엔 도매상에서 판매를 맡아 하셨지만, 음식을 직접 만들고 파는 것은 더 큰 일이었을 텐데요.
쌍리 : 시장에 가서 장사하는 것은 해봤으니 겁이 안 났지. 내가 우리 친정 엄마를 닮았는지 손맛이 꽤 있었거든.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어. 김치 장사는 1986년인가, 광양시에 나가서 했었고, 백숙은 그 담에 우리 집에서 했지. 한창 광양이 개발되면서 제철소 생기고 그럴 때, 시장에 가서 장사하는 자리를 뽑았는데 내가 제일 좋은 자리를 뽑았어. 비싼 이자를 계속 갚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돈을 좀 벌어보려고 시작을 했지. 거기서 오랫동안 장사한 상인들이 많고 단골손님들도 다 있는데, 새로 나타난 내 물건을 누가 사겠노. 우리 밤이랑 감이랑, 여수에서 떼어온 건어물 이런 거 놓고 파는데 잘 안 되더라고. 다들 전라도 말 쓰는데 나만 경상도 말을 쓰잖아. 근데 광양제철엔 포항에서 일하다 온 사람들이 꽤 있었어. 그 사람들이 내 말을 듣더니 반가워하면서, 경상도 아지매니까 경상도 사람들 입맛에 맞는 김치를 담가서 팔면 좋지 않겠냐고 해. 자기들이 와서 사먹을 테니까 해보라고. 내가 김치 양념을 어떻게 했냐면, 맛있는 걸 열 가지쯤 넣었지. 펄떡펄떡 뛰는 생새우는 제일 작은 것을 김치 담기 일주일 전에 사서 소금 간을 약하게 해서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써. 소금은 5년 묵혀 간수 뺀 것으로 하고. 참조기는 여수에서 나는 샛노랗고 작은 것을 머리만 떼고 통째로 갈아서 썼어. 육수는 멸치, 디포리, 무 넣고 푹 끓여서 만들고. 그리고 찹쌀 풀, 매실, 청각, 갈치속젓, 멸치액젓도 들어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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