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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91185851150
· 쪽수 : 480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천박하기는.” 나의 어릴 적부터 절친인 줄리는 그렇게 말한 적이 있다. 아, 우리 얘기가 아니라 멜라니 얘기였다. 멜라니는 또 다른 친구이다. 멜라니가 어머니날에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이랍시고 다이아몬드 박힌 롤렉스 시계를 구입하고는 우리가 연 디너파티에 와서 자기 아이들이 손수 만들어준 도자기가 ‘별 볼 일 없는 것’이라는 말을 심드렁하게 던진 날이었다.
“저 시계를 팔면 시리아 난민수용소에 1년 치 식량을 대고도 남겠네.” 손님들이 모두 떠난 후 줄리가 내 부엌에 들어와 구시렁거렸다. “천박하기는.”
나는 까르띠에 시계를 찬 손목을 대리석 아일랜드 식탁 밑으로 숨기느라 어정쩡한 자세로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내 시계는 멜라니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니, 내 삶도 멜라니의 삶과 같지 않다고 나를 타일렀다. 우선, 이 시계는 내가 나를 위해 충동적으로 산 것이 아니라 커크가 결혼 15주년 기념 선물로 준 것이다. 그뿐 아니라, 나는 핀치가 어릴 때 나를 위해 선물이나 카드를 손수 만들어 갖다 주는 것을 늘 기쁘게 받았으며 이제는 그런 것들이 과거의 유물이 되어버림을 깨닫고는 슬퍼했단 말이다.
“그 패션이라는 걸 소피가 빌려주더냐?” 소피는 라일라가 종종 베이비시터로 돌봐주는 꼬마 여자아이다. “그 옷은 소피에게도 너무 짧다 싶다만.”
“참 재미있네요.” 라일라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하며 한 눈으로 나를 쏘아본다. 다른 눈은 앞으로 늘어뜨린 짙은 빛깔의 곱슬머리에 가려있다. “아예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되시죠.”
“그러마. 어쨌건, 라일라, 그 옷으로는 이 집에서 못 나간다.”
나는 최대한 낮고 차분한 목소리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십 대 자녀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그렇게 하라고 일러주던 심리학자의 조언을 따라서다. 최근 라일라의 학교에서 있었던 강의를 통해 알게 된 얘기였다. 우리가 소리를 치는 순간 아이들은 우리가 하는 말을 아예 무시하죠. 그 심리학자는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강당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많은 부모들이 이를 받아적고 있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이 사람들에게는 아이들과 언쟁이 벌어졌을 때 노트를 꺼내 펼쳐 들 시간이 있단 말인가?
그녀는 또한 칭찬을 가장한 모욕 주기의 대가이기도 했는데, 주로 “어머나, 저런 어째”라고 말하면서 칭찬을 가장해 모욕을 주기 일쑤였다. 그녀는 내게 와서 “어머, 그 드레스 너어무 마음에 든다. 내가 잘 아는 솜씨 좋은 재봉사가 있는데 그이가 단을 좀 줄여줄 수 있을 거야”라고 하거나 아니면 스피닝 클래스가 끝나고 나를 졸졸 따라와 주차장에 세워진 내 차 뒷좌석을 들여다보고는 “세상에, 나도 너처럼 느긋한 성격이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저렇게 너절하게 늘어놓고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고는 곧 이런 말이 뒤따라 나온다. “얘, 너 이렇게 땀 흘려 운동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니? 몸속에 쌓인 저 독소들이 다 빠져나갔을 거야!”
멜라니는 나더러 캐시의 말을 그저 칭찬이려니 하고 여기란다. 커크의 회사 매각과 동시에 내가 내슈빌 엘리트 사회에서 여왕벌 노릇하던 캐시의 왕위를 찬탈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 그녀의 논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