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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86142875
· 쪽수 : 260쪽
· 출판일 : 2024-06-13
책 소개
목차
1. 유다의 키스
2. 남해금산
3. 곧 죽어도 로맨티스트
4. 당신은 픽사베이에 있다
5. 죽은 자의 블로그
6. 왈츠를 배우는 남자
7. 당신의 마지막 연인
8. 흑싸리
9. 1944, 테러리스트. 첼로
저자소개
책속에서
엄마의 결혼식을 기억한다. 그날은 그녀의 쉰여덟 번째 생일이기도 했다.
트렁크와 작은 백이 거실 한가운데 있다. 한 시간 후에 나는 떠날 예정이다. 혁명은 고속도로가 막힌다고, 조금 늦을지도 모르겠다고 전화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나는 시간을 확인하고 정지된 화면을 보는 것처럼 고요한 밖을 보며 담배를 피웠다. 저 고요 속으로 나는 기꺼이 들어갈 생각이다. 모든 사람이 잠이 들고, 세상의 움직임은 존재하지 않는 곳. 길 위에는 오직 나의 남자만 있는 곳. 헤드라이트를 끈 혁명의 차가 미끄러지듯 집 앞에 서자 나는 문을 열었다. 천천히 그를 향해 걸어갔다. 아무리 걸어도 그와의 간격은 가까워지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꿈이라도 생각하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계속 걸어가고 있다. 끝없이 걸어가고 있다. 나는 아침이 되어도 결코 눈을 뜨지 않을 것이다.
다음 날 경아는 떠났다. 쪽지는 간결했다. 나, 드디어 유곽에서 빠져나왔네.
남해 금산도 나를 떠났다. 나도 떠났다. 나의 이생은 저 생보다 아름답지 않은가. 통짜로 여민 옷을 벗고 예의와 학습된 문장과 구깃구깃해진 ‘가다마이’를 다시 입었다. 모든 것들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숨이 끊어지려 하는구나. 떠나려 하는 나에게는, 그 헐떡거림조차 눈부셨다. 부욱 찢어 문에 붙여놓은, 초판이라고 애지중지하던 시집 한 장도 가냘프게 헐떡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