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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이슬람/중동/이스라엘 > 근현대사
· ISBN : 9791186614051
· 쪽수 : 344쪽
· 출판일 : 2016-11-07
책 소개
목차
들어가는 말
1부, 이슬람
제1장 이슬람의 탄생
무함마드의 출현과 코란/ 무함마드는 누구인가?/ 이슬람의 확장
제2장 정통 칼리프 시대
이슬람의 지배 정책/ 첫 번째 피트나(시련기)와 시아파의 태동
제3장 우마이야 시대
두 번째 피트나(시련기)/ 우마이야드의 전성시대/ 우마이야드의 몰락
제4장 압바스 시대
절대 왕조의 출현과 문화의 융성/ 이슬람 법학의 발달과 시리아/ 칼리프 쇠퇴와
이방인의 출현/ 수피즘/ 셀주크 왕조의 몰락/ 시아파의 유전(流轉)
제5장 몽골 시대 이후 이슬람의 확대
오스만제국의 출현과 이슬람의 확장
제6장 시아파제국 사파비
사파비 왕조/ 카자르 왕조의 등장
제7장 인도의 무굴왕조
무굴제국의 흥망성쇠
제8장 오스만 투르크제국
오스만의 황금기/ 와하비즘과 사우디아라비아/ 오스만의 쇠퇴와 유럽의 부흥
제9장 이슬람의 약세와 개혁운동
이슬람의 개혁운동/ 정통 이슬람교의 박해
제10장 원리주의
이슬람의 행동주의 ‘지하드’/ 원리주의자 호메이니
제11장 무장단체
IS(이슬람국가 Islamic State)/ 주요 무장단체
제12장 아랍의 봄과 중동의 미래
독재정치의 악순환
2부, 십자군
제13장 오! 예루살렘
십자군의 예루살렘 지배
제14장 제 1차 십자군 원정
십자군의 핵심인물/ 군중 십자군과 은자 피에르/ 니케아 점령/ 안티오크 점령/
트리폴리 점령과 모자이크 국가 수립
제15장 이슬람의 반격
영웅의 탄생
제16장 살라딘
살라딘의 등장/ 예루살렘 탈환/ 사자심왕 리처드 1세/ 살라딘의 마지막 세월/ 살라딘 이후의 십자군
제17장 몽골의 침입
루이 9세와 마지막 십자군/ 맘룩 왕조와 몽골의 패퇴
제18장 십자군의 종말
템플기사단의 최후/ 세계질서의 재편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선지자가 후계자에게 물려준 이슬람식 법과 행정은 주로 베두인으로 구성된 아랍 군대를 통솔하는데 진가를 발휘했다. 코란을 바탕으로 한 법과 행정은 아직 미숙한 부분이 많았으나 군대를 통솔하고 군인들의 행위를 규제하는 데에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아랍인은 점차 사막의 야만적인 종족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도덕심이 있고 기독교나 유대교와 견줄 수 있는 종교적인 교리를 갖춘 선진 민족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또한 이슬람은 점령지의 문명을 파괴하지 않았다. 이슬람 정복자들은 오히려 여러 점령지의 문화를 존중하고 문화들 상호간의 조화와 융합을 꾀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문화에 있어서도 정복자와 피정복민 간에 차이가 드러났다. 아랍적인 요소가 페르시아 또는 비잔틴적인 요소를 제치고 피정복민들의 삶에 빠른 속도로 침투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초기 정복시대에 이슬람 군의 관용적이고 개방된 태도가 눈부시게 빠른 확장을 가능케 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페르시아와 비잔틴의 오랜 학정에 시달려 온 주민들에게 이슬람 군의 절제 있는 태도는 ‘가뭄 속의 단비’와 같은 존재였을 테니까.
사실 피정복민들에게는 아랍이 자신을 통치한다고 해서 전에 비해 엄청난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들에게는 군주가 바뀐 것에 불과했고 삶에 결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도 없었다. 그러나 기대하지 않았던 아랍의 관용적인 태도가 삶을 보다 편안하게 만들어준 것은 사실이었다. 정복 초창기에 관용을 베풀었다고 해서 아랍인이 전혀 자기 몫을 챙기지 않은 것은 물론 아니었다. 사막 내 경작이 가능한 좁은 지역에 모여 살던 아랍인은 점령지가 생기자 그곳으로 몰려들었다. 아랍인은 곧 점령지의 지배계급이 되었다.
-제2장 정통 칼리프 시대
아랍 세계에서 두 번째 피트나(시련기)가 시작된다. 야지드의 칼리프 취임에 대해 쿠파의 알리 파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알리의 둘째 아들 후세인Husain을 지지하는 세력이다. 알리 파라고 해도 다수는 우마이야 측의 위협에 이내 잠잠해졌으나 후세인은 70여 명에 불과한 소수의 지지자들과 함께 메디나로부터 이라크로 향했다. 아마 쿠파에 있는 친 알리 세력을 결집하여 우마이야드와 일전을 벌리려고 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이들은 쿠파에 도달하기도 전에 야지드가 보낸 우마이야 군에 포위되어 이라크의 케르발라Kerbala 평원에서 전멸하고 만다. 할아버지와 이름이 같은 어린 아들 알리를 품에 안은 후세인은 맨 마지막으로 죽었다. 형편없이 허약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싸우다 죽은 후세인은 순교자의 표상으로 등장했고 지지자들은 이를 종교적으로 승화시켰다. 이 사건은 이슬람교를 수니와 시아로 갈라놓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알리의 죽음으로 인해 비통함에 잠겨있던 알리 파는 이 사건으로 인해 비 알리 파와 완전히 결별하고 만다.
시아파는 알리 이전의 칼리프 3명을 권력 찬탈자로 규정하며 아예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시아파의 이맘은 알리를 필두로 큰 아들 하산, 작은 아들 후세인 그리고 후세인의 아들 알리 자인 알 아비딘Ali Zayn al-Abidin 등으로 선지자의 핏줄을 따라 내려간다. 시아파는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개의 분파로 나뉘게 된다. 그 이유는 알리의 후손이나 친척 중에서 누구를 이맘으로 삼을 것이냐는 문제를 놓고 추종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했기 때문이다. 시아파가 많은 분파로 나뉜 것은 종교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적인 헤게모니를 놓고 분쟁이 벌어진 때문이다. 오늘날 시아는 전체 이슬람교도의 10-15%를 차지하는 소수파이다. 대부분이 이란, 이라크 및 인도아대륙에 몰려있다. 아프리카에는 시아가 거의 없고 레반트에서는 레바논 인구의 약 30%가 시아이다. 예멘의 산악지대에 살고 있는 자이디Zaydis도 시아파에 속한다.
사실 수니와 시아에 교리상의 차이는 거의 없다. 이들의 차이는 신앙적인 것이 아니라 다분히 역사적, 정치적인 것이다.
수니의 세계관은 시아에 비해 훨씬 긍정적이다. 수니는 ‘순나의 사람들people of the sunnah'이라는 뜻이다. 즉, 선지자와 그의 추종자인 정통 칼리프들의 언행과 정책으로 만들어진 전통을 따르는 사람들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오서독스orthodox 무슬림이다. 수니파는 4명의 라쉬둔을 모두 인정하고 경배한다. “신은 갈등과 시련의 시기에도 늘 움마와 함께 하므로 움마의 단결은 신성한 것이다. 비록 칼리프들이 인간적 약점을 가졌다고 해도 움마의 대표이므로 칼리프를 섬기는 것이 이슬람인의 도리이다” 이러한 것이 수니의 주장이다. 수니와 시아는 종교가 그들을 갈라놓은 것이 아니라 역사가 갈라놓은 것이다.
-제3장 우마이야 시대
압바스 왕조의 군주들은 절대적인 권력을 누렸으며 종교보다는 힘에 의존해 열방을 통치했다. 신하들은 칼리프 앞에 서면 엎드려 먼저 땅에 입을 맞추어야 했다. 페르시아 식으로 칼리프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왕 옆에는 항상 사형집행인이 배석했다. 왕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무언의 암시인 셈이다. 칼리프는 더 이상 움마의 일에 직접 간여하지 않고 총리vizier가 대신했다. 도저히 조정이 불가능한 일에만 직접 개입했다. 칼리프가 점점 일상적인 국정에서 멀어질수록 총리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총리는 칼리프의 대리로서 제국의 운영을 위임받은 존재가 되었으며 그의 권위도 칼리프에 버금갈 만큼 커졌다. 칼리프는 가장 큰 행사인 금요일 오후 예배를 직접 주재했으며 군사를 이끌고 주요 전투에 직접 참가했다. 군대는 더 이상 국민의 군대가 아니라 왕의 군대였다. 무슬림이면 누구나 군인이 될 수 있었으나 페르시아 인으로 구성된 부대가 군의 핵심이었다. 압바스 왕조를 창건하는데 큰 공을 세운 페르시아 부대는 왕의 근위병과 비슷했다.
유명한 칼리프 하룬 알 라쉬드(Harun al-Rashid: 786-809년 재위) 시절이 되면 압바시드의 골격이 모두 갖추어진다. 하룬이 이야기 속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하는 <천일야화>가 <아라비안나이트>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소개되면서 하룬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하룬은 학식이 풍부하고 신앙심이 깊었으며 가난한 백성에 귀를 기울여주었던 자비로운 군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는 학문과 예술을 적극 장려하여 문화적 르네상스기를 꽃피웠다.
-제4장 압바스 시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