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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86644768
· 쪽수 : 368쪽
· 출판일 : 2019-01-15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일러두기
프롤로그
70년 전쟁의 서전
정한론(征韓論)
꿈속의 나라
치졸한 계략
국기의 개념
충신의 눈물
조일 수호조약
청룡기
조선국기 탄생
검은 그림자
열리는 문
조^미 수호조약
거슬러 흐르는 물결
임오군란
한낮의 꿈
환생
진령군
조선국기 반포하다
태극기
저자소개
책속에서
이응준은 마침내 눈물을 흘리며 아뢰었다.
“전하! 황공하오나, 청국 예부에서는 자기 나라 국기를 색깔만 달리하여 조선국기로 사용하라고 하였나이다.”
임금은 화들짝 놀라 옥음을 높였다.
“뭐야, 청국 국기를 그대로 사용하라니! 황제의 윤허가 그러하단 말인가?”
한돈원이 아뢰었다.
“전하, 황공하옵나이다. 예부에서 황제폐하의 윤허를 받았다면서 황색 바탕에 청룡이 그려진 삼각기를 조선의 국기로 사용하라고 하였나이다.”
임금은 마침내 진노하여 말했다.
“대체 청국에는 언제부터 국기라는 것이 있었기에 우리더러 그것을 쓰라고 한단 말이냐?”
중략
묵묵히 앉았던 이응준이 옥판선지(玉板宣紙)를 펴 양쪽에 서진(書鎭: 선지가 말리거나, 날리지 않게 누르는 박달나무 막대)을 놓았다. 임금 앞에서 붓을 들기는 난생처음이라 잠시 숨을 고른 그는 간필(簡筆: 보통 글씨를 쓰는 붓)을 잡았고, 윤자승은 주먹을 움켜쥐며 숨을 삼켰다. 내관은 꿇어앉아 묵묵히 먹을 갈고, 임금은 안석에 기대며 눈을 감았다.
이응준은 붓에 먹을 찍어 벼루에 붓끝을 다듬고는 옥판선지 중앙에 둥글게 원을 그렸다. 왼손 등을 오른쪽 팔꿈치에 받치고 단숨에 그린 원(圓)은 만월(滿月)처럼 매끄러웠다. 원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던 그는 원의 정중앙에 작은 점을 찍고, 원의 상하 중앙 변에도 점을 찍고는 붓에 먹을 찍어 상변의 점에서부터 원의 중앙으로 부드러운 곡선을 오른쪽으로 파고들다가 다시 왼쪽으로 파고들며 거꾸로 된 곡옥(曲玉)모양을 그렸다. 만월은 금방 한 쌍의 정교한 곡옥이 물리고 문 듯이 태극의 문양으로 나타났다.
윤지승은 참았던 숨을 가만히 내쉬며 굳은 몸을 풀었고, 이응준은 그려진 태극문양을 뚫어질 듯 보다가 붓에 먹을 찍어 선지 변의 상^하^좌^우의 중앙에 점을 찍었다. 간필을 놓고 작두필(雀頭筆: 약간 굵은 붓)을 잡은 그는 왼손 등을 오른쪽 팔꿈치에 받치고 원의 좌측 바깥쪽에 세 개의 막대를 세로로 그리고, 원의 우측 바깥쪽에는 좌측의 막대를 절반으로 나누어 여섯 개의 세로 막대를 그렸다. 잠시 숨을 고른 그는 붓에 먹을 찍어 붓끝을 다듬고는 원의 상단 그 지점에 가로로 절반의 막대 두 개를 그리고, 가운데에 긴 막대를 그었고, 그 밑에 절반의 막대 두 개를 그었다. 다시 먹을 찍어 원의 하단 그 지점으로 붓을 옮겨 막대 하나를 가로로 긋고는 그 아래에 절반의 막대 두 개를 그리고 그 밑에 긴 막대 하나를 그리고 붓을 놓았다. 꿇어앉은 이응준의 가슴 앞에 놓였던 하얀 옥판선지에는 태극문양의 상하좌우에 4괘가 그려진 천근의 무게가 실린 듯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중략
박영효는 즉시 국기를 게양할 것을 제안하였다. 선장 제임스는 영국인 선원들에게 조선국기를 게양하도록 명했다. 박영효를 비롯한 수신사 일행은 상갑판에 올라가 조선 주재 영국 영사관 애스턴과 메이지마루호 선장 제임스, 선주 마루야마, 영국과 일본 선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엄숙하게 국기 게양식을 거행했다. 조선국기가 서서히 창공을 향해 올라가고, 마침내 멎으며 활짝 펴져 태극문양의 조선국기가 바람에 휘날렸다.
순간, 이응준은 가슴이 콱 막히는 감격과 함께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온갖 난관을 무릅쓰며 태극과 4괘를 넣은 기를 창안하고, 조선의 국기로 끝내 주장한 이응준의 눈에 감격의 눈물이 넘쳐흘렀다. 어찌 이응준뿐이랴! 박영효도 김만식도 서광범도 가슴이 벅차게 치미는 감격의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이 흘렸다. 조선국기가 최초로 비록 남의 나라 상선이지만 선상의 선수 깃대에 게양된 것이다. 조선 영해를 막 벗어난 망망대해의 작은 선박 깃대에 조선 개국 이래 처음으로 국기가 게양되어 푸르른 창공에 힘차게 펄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