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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일본사 > 일본근현대사
· ISBN : 9791187373575
· 쪽수 : 396쪽
· 출판일 : 2018-10-15
책 소개
목차
머리말
청일전쟁 관련 연표
제1장 | 전쟁 전야의 동아시아
1. 조선의 근대와 톈진조약 체제
‘속국’과 ‘자주국’ | 개화 정책과 임오군란 | 청일의 대응 | 갑신정변-급진 개화파의 쿠데타 실패 | 조슈파와 사쓰마파의 대립 | 톈진조약과 일본, 청, 영국의 협조 체제 | 극동 러시아-이미지와 실상
2. 일본과 청의 군비 확장
청의 군비 근대화-회군의 팽창 | 북양 해군의 근대화 | 임오군란 이후 일본의 군비 근대화 | 우선시된 해군의 군비 확장 | 육군, 7개 사단 체제로 | 육해군 연합 대연습 | 참모본부의 대청 전쟁 구상의 형성
제2장 | 출병에서 전쟁으로
1. 갑오농민전쟁과 청일 양국의 출병
제2차 이토 히로부미 내각의 성립 | 이토 내각의 고난-조약 개정과 대외경파 | 갑오농민전쟁-동학의 확대와 봉기 | 조선 정부의 파병 요청 | 청과 일본의 출병
2. 갈피를 잡지 못하는 청일 정부
청일 양군의 조선 도착 | 이토 수상의 협조론, 무쓰 외상의 강경론 | 제1차 절교서와 영국·러시아의 간섭 | 청 정부 내의 주전론과 개전 회피론
3. 전쟁이 시작되다.
7월 19일의 개전 결정 | 풍도 해전 | 조선 왕궁 무력 점령 | 혼성 제9여단의 남진 | 성환 전투 | 선전 조서를 둘러싼 혼란-전쟁은 언제 시작되었나? | 개전에 대한 메이지 천황의 생각
제3장 | 한반도 점령
1. 평양 전투
전쟁 지도 체제 | 단기전에서 장기전으로 | 제5사단 본대, 조선으로 | 짐을 옮기는 병사의 부족-“수송의 한계” | 제3사단의 동원 | 노즈 제5사단장의 평양 공격 결의 | 청과 일본의 무기 차이 | 격전-혼성 제9여단의 정면 공격 | 평양 점령과 청군의 패주
2. 황해 해전과 일본 정세
9월 17일의 조우 | 승리-과도기의 군사 기술과 제해권 확보 | 메이지 천황과 히로시마 대본영 | 대본영 어전 회의 | 청일전쟁 와중의 총선거 | 히로시마에서 열린 제7 임시 의회
3. 갑오개혁과 동학 농민군 섬멸
갑오개혁-친일 개화파 정권의 시험 | 이노우에 가오루 공사 부임과 조선의 보호국화 | 제2차 농민전쟁-반일·반개화파 | 동학 농민군에 대한 제노사이드
제4장 | 중국 침공
1. 일본군의 대륙 침공
제1군의 북진과 청군의 요격 체제 | 압록강 도하 작전 | 가쓰라 사단장과 다쓰미 여단장의 독주 | 제2군 편성-뤼순반도 공략으로 | 무모한 뤼순 공략 계획
2. ‘문명 전쟁’과 뤼순 학살 사건
구미의 눈과 전시 국제법 | 뤼순 요새 공략 작전 | 11월 21일, 어둠 속의 뤼순 점령 | 학살-서로 다른 사건의 모습 | 왜 일본군은 학살 행위를 벌인 것인가?-병사의 종군 일기를 읽다 | 서양 각국에 대한 변명 공작
3. 동계 전투와 강화 제기
제1군과 대본영의 대립 | 야마가타 제1군 사령관 경질 | 제1군의 하이청 공략 작전 | 랴오허 평원의 전투 | 산둥 작전과 대만 점령 작전 | 산둥 작전으로 북양 해군 궤멸
제5장 | 전쟁 체험과 ‘국민’의 형성
1. 언론과 전쟁-신문, 신기술, 종군 기자
조선으로 향하는 신문 기자들 | 강화되는 언론 통제 | 국민의 전쟁 지지와 정보 개시 | 신기술 도입과 《아사히신문》의 전략 | 《아사히신문》의 취재 체제 | 고급지 《시사신보》의 전쟁 보도 | 아사이 주와 ‘화보대’ | 《국민신문》과 일본화가 구보타 베이센 부자 | 사진과 회화의 차이 | 가와사키 사부로의 《일청전사》 전 7권
2. 지역과 전쟁
의용병과 군부 | 군부 모집 | 병사의 동원과 환송 | 전장과 지역을 연결한 지방지 | 《후소신문》 기자 스즈키 게이쿤 | 성황이었던 전황 보고회 | 개선, 귀국과 사람들의 환영 | 추도와 위령-‘선별’과 도호쿠의 사정 | 후쿠시마 현청 문서가 남긴 ‘지역과 전쟁’ | 동원과 전시 사무-정·촌장들의 ‘근무 평정’ | 청일전쟁과 오키나와 | 그 후의 오키나와
제6장 | 시모노세키 강화조약과 대만 침공
1. 강화조약 조인과 삼국 간섭
직례 결전 준비 | 정청 대총독부의 이동 | 강화 전권 사절에 취임한 이홍장 | 교섭 개시와 이홍장에 대한 테러 | 청의 고뇌와 조약 조인 | 삼국 간섭-러시아, 독일, 프랑스의 랴오둥반도 환부 요구 | 랴오둥반도 반환과 ‘와신상담’
2. 대만의 항일 투쟁, 조선의 의병 투쟁
대만총독부와 ‘대만민주국’ | 증파되는 일본군 | 남진 작전 수행에 대한 격렬한 저항 | ‘대만 평정 선언’ 이후에도 끝나지 않은 전투 | 민비 살해 사건 | 항일 의병 투쟁과 아관파천
종장 | 청일전쟁이란 무엇이었을까?
전쟁의 규모 | 전쟁 상대국과 전쟁의 계속 기간 | 누가, 왜, 개전을 결단했는가? | 미숙한 전시 외교 | 곤란한 전쟁 지도 | 전비와 청일의 전후 경영
후기
참고 문헌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예전에는 일본이 서구적인 근대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국제 질서의 재편성은 불가결했으며,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 의한 조선·중국 침략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청일전쟁은 피할 수 없었다는 견해가 유력했다. 즉 일본 정부도, 군도 청일전쟁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여 준비를 거듭해 개전에 이르렀다는 견해로, 지금도 이런 생각이 통설로 유포되고 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연구자들 사이에서 이러한 청일전쟁의 필연성은 실증적으로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천황은 점차 전장에 가까운 히로시마로 친정하여 대본영에서 솔선해서 전쟁을 지도하고, 소박하고 자유롭지 못한 삶을 계속했다. 이때 전장의 장병들의 노고를 생각한다는 ‘군인 천황’상이 형성되어 국민의 전쟁 협력과 동원의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보면 뤼순 학살은 단순히 청군의 잔학 행위에 대해서 하급 장교나 하사관과 병사 계층이 흥분해서 보복을 했다는 우발적 사건에 머무르지 않는, 일본군의 조직 자체에서 유래해 청일전쟁 시점에 벌어진 구조적 사건으로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