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7756156
· 쪽수 : 183쪽
· 출판일 : 2018-02-28
책 소개
목차
먼저 읽는 에필로그
초능력 시인
017 이 책은 그에 관한 잡스러운 이야기이지만,
018 <시> 솔레파
019 그의 시에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 킁킁거리면서
021 쓰레빠와 함께하는
023 그를 위한 뒷담화이기도 하면서
024 그의, 또는 우리 안에 있는 초능력적 면모를 돌아볼 계기이기에
026 이야기는 시작된다. 끝은 없을지언정 시작은 있어야 이야기이다
026 초능력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027 그 간지러운 배경은 이렇다
029 단지 시를 짓는 사람을 시인이라고 한다면 물론 나도 아무 시비 걸 생각 없으며
032 이런 습관이 초능력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034 <시> 시(詩)
035 세계는 부분의 총합, 그 이상이다
036 초능력은 전체에서 과정을 제외한 것이다
037 그런 면에서 가장 강력한 초능력은 추상이다
039 <시> 내복풍의 꽃무늬 여인을 위한 세레나데
040 어느 날의 반성이 원자 단위의 윤회로 이끌다
041 그리하여 소크라테스여
043 무엇이 두려운가?
045 20년 넘게 절벽에 매달려 있는
048 시를 쓰는 그가?
050 술을 마신다
052 그러나 거기 안주는 없었다
054 <시> 사랑가
054 튼튼한 촌것이 부르는 칙칙한 사랑 노래를
056 싫어할 자유, 술을 마시지 않을 자유를
060 말하다. 까뮈의 말투를 빌어
062 비밀을 말하고는
065 혼자 비밀스럽게 움직이다
068 <시> 질문
069 경험과 부러움 사이에서
070 인격의 향방을 찾고
071 공허의 자유와 함께
074 운동과 시의 효율성의 관계에서
077 고정되지 않는 인생을 해석하지만
080 아침은 묻지 않고 온다
080 <소설> 초능력 시인 실종 사건
083 <시> 불륜의 아침
093 묻지 않고 아침이 왔지만
094 그 아침에는 점점이 죽음이 박혀 있다고
099 그러나 그 저녁에는 슬픈 술이 박혀 있으며
101 지금 그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그의 무의식이었다
102 <시> 밤을 등지고 왼쪽으로
103 밤을 등지고 왼쪽이면 밤을 마주할 때 오른쪽이다
105 그러나 나는 짐작한다
107 그가 보이는 초능력적 행동의 배경을
112 그리고 그는 털어놓았다
114 돈 안 버는 여러 가지 방법을 뒷받침하는 초능력적 배경에 관해
119 그리고 우주의 시공간에 관해
120 <과학동화> 어둠과 빛, 그리고 파란 하늘의 신화
128 이야기의 공과 과를 이야기하면서
134 <시> 이야기의 역사 1
134 <시> 이야기의 역사 2
135 이야기의 속내도 이야기하다가
136 다시 시에 관한 초능력적 상찬
140 <시> 춤추는 세계 1
141 그리고 시에 관한 잡설과
143 <시> 장마
143 성설(性說)도 함께 나누는
145 성스러운 저녁의 순간
148 세계의 작동 방식에 관해
154 우리 우주의 버릇이
159 넋두리로 화하다
161 우리 우주의 버릇은
163 안팎을 뒤집는 일일지 모른다고
165 <시> 거울이 뒤집는 것
167 안팎을 뒤집는 거라고
169 그래서 갑자기 너무 많이 깨달으면 죽는다는
169 허망한 예언은 허망한 세상의 것이다
170 그래서 동네는 동네가 예언하려고
181 그가 초능력을 증거하는 방법은
182 바로 믿는 것이다
저자소개
책속에서
“비밀이라고 해서 나만 알고 있는 사실은 아니야. 평행 우주라고 알지?”
이건 또 무슨 자다 일어나 삼겹살 굽는 소리인가.
“우리가 사는 세계는 말이야. 페이스트리 빵 안에 있는 겹들처럼 여러 겹이야. 아니 수많은 세계가 겹겹으로 존재하지. 그리고 우리는 하나의 겹 속에 살고 있는 거야.”
“내가 종이처럼 얇다고? 자네 인품이 얇은 게 아니고?”
“은유야. 우리가 살고 있는 4차원 시공간을 생각하기 쉽게 2차원 평면이라고 가정하는 은유야. 하여간 우리는 이런 세계 사이를 옮겨 다닐 수 있어. 초능력이지.”
비밀 어쩌고 하니까 관심을 가지고 우리 얘기를 듣던 주인아주머니는 뭔 시답잖은 소리냐는 듯 파리채를 휘두르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다른 세계에 가는 능력, 이 초능력은 나만 가진 건 아니야. 그 중요한 동력은 바로 예술이야. 예술은 그 자체로 다른 우주를 다녀올 수 있는 티켓이야. 좋은 시를 읽었을 때, 어떤 그림에 푹 빠질 때, 어떤 음악이 우리의 영혼을 쥐고 흔들 때. 우리는 단순히 감동하는 게 아니야. 그 예술과 진동수가 맞아 공명하는 거야. 폭염이 쏟아지는 늦여름의 공간에서 첫 번째 가을바람을 알아보는 일과 비슷해. 그 멍한 순간 바로 다른 우주, 다른 세계에 가 있는 거야.”
맛있는 벌레를 잡아먹은 개구리가 눈을 끔벅이며 입안 이리저리로 혀를 굴려 뒷맛을 즐기고 있었다. 그의 표정이 그랬다.
“기억에 휩쓸려 떠내려가다가 어느 순간 첫사랑의 대문 앞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 적 있지? 죽은 고모의 손을 잡고 익숙한 골목을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경험은? 어느 행성인지 모를 곳에서 핏물처럼 고이는 노을을 혼자 온전히 감당했던 적 있지? 아니면 말고.”
뭐라고 따지기 힘들었다. 현대 우주론을 빌려와 만든 개똥철학 같지만 일일이 따지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아니 부정하기 싫었을지도 모른다.
“예술에 푹 빠져 다른 세계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 우리는 정말 다른 세계에 가 있는 거야. 생각해 봐. 고층 건물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마다 다른 층에 내릴 수 있잖아. 예술은 엘리베이터 같은 거야. 다른 세계에 내릴 수 있는, 이곳이 아닌 온전한 하나의 세계 말이야.”
나는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집중하려 노력했다. 취중에 듣기에 뭔가 있는 얘기 같았다.
“내가 보기에는 음악이 가장 강력해. 소리는 공격적이잖아. 시각예술은 눈을 뜨면 보이기는 해도 집중이 필요하고, 활자는 더욱이 능동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이 필요해. 음악은 내 의사와 상관없이 바로 압도해 들어오거든. 눈을 감고 베토벤을 들어 봐. 그리고 다른 세계에 가 봐.”
더 생각해 보니 하나의 현상을 그의 방식대로 해석하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좋아. 그렇다 치고, 그럼 네가 가 보았던 세계들이 단지 감동으로 느끼는 환상이 아니라 진짜 세계인지 어떻게 증명하지?”
“진짜? 진짜 세계가 뭐지? 네 앞에 앉아 있는 나는 진짜인가? 모두 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야. 자극이라는 신호를 받고 해석해서 뇌의 신경세포들이 활성화되는 패턴들일 뿐이야. 이 소주병은 진짜라고 확신해? 활성 상태의 뉴런들이 그리는 패턴이 같으면 같은 거야. 네가 소주병을 만질 때 발생하는 패턴과 똑같은 패턴만 만든다면 소주병 없이도 너는 똑같은 것을 보고 느끼게 되지. 그러면 같은 거야. 지금 우리 바깥에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어. 현실이 뭐야?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기준이 뭐지? 모두 뇌 속에 그려지는 그림, 그러니까 패턴들 이상도 이하도 아냐. 우리는 진짜라는 환상 속에서 살고 있는 거야. 그렇다면 실재하는 세계라고 말하기 전에 그냥 세계라고 불러야지. 비밀로 치면 어마어마한 비밀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