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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

필립 지앙 (지은이), 장소미 (옮긴이)
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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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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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엘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프랑스소설
· ISBN : 9791187928225
· 쪽수 : 278쪽
· 출판일 : 2018-06-15

책 소개

에디션D 시리즈 15권. 일상 곳곳에 내재한 폭력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는 한 여성에 관한 이야기다. <베티 블루>(1985년)를 비롯해 23권의 장편소설을 출간한 필립 지앙의 19번째(2012년) 장편소설이자, 폴 버호벤 감독.이자벨 위페르 주연의 영화 [엘르]의 원작.

목차

목차가 없는 도서입니다.

저자소개

필립 지앙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49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언론학을 전공했다. 장편소설 『37.2도 아침』(1985년)이 영화 [베티 블루]로 각색되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간결하고 리듬감이 살아 있는 문체, 강한 필치와 독특한 소재로 큰 사랑을 얻고 있다. 『지옥처럼 푸른』 『소토의 안을 들여다보면 머리가 하얗게 센다』『살인자』 『불순』 『나쁜 것들』 『엘르』『파문』 등 장편소설과 소설집 『악어들』을 비롯한 다수의 단편을 발표했다. 문학 외에도 작사와 번역, 시나리오 집필 등을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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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미 (옮긴이)    정보 더보기
숙명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파리3대학에서 영화문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옮긴 책으로 알베르 카뮈의 『결혼 여름』,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부영사』, 『뒤라스의 말』, 프랑수아즈 사강의 『패배의 신호』, 미셸 우엘벡의 『지도와 영토』, 『복종』, 『세로토닌』, 로맹 가리의 『죽은 자들의 포도주』, 파울로 코엘료의 『히피』, 발레리 페랭의 『비올트, 묘지지기』, 아민 말루프의 『초대받지 못한 형제들』, 에르베 기베르의 『내 삶을 구하지 못한 친구에게』, 베르나르 키리니의 『아주 특별한 컬렉션』, 필립 지앙의 『엘르』, 샤를 페로의 『거울이 된 남자』, 조제프 퐁튀스의 『라인』, 브누아 필리퐁의 『루거 총을 든 할머니』, 『포커플레이어 그녀』, 앙리 피에르 로셰의 『줄과 짐』, 『두 영국여인과 대륙』, 마르크 레비의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두려움보다 강한 감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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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햇살이 놀라우리만치 아름답고 부드럽다. 어떤 위협의 기운도 감지되지 않는다. 이토록 찬란한 날에 저 푸른 하늘이 내게 겪게 한 일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욕실이 태양의 홍수에 잠겼다. 멀리서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와 아우성이 들려온다. 반짝이는 지평선이 보인다. 새들이며 다람쥐들……. 이렇게 좋을 데가. 이 목욕은 기적에 가깝다. 나는 눈을 감았다. 얼마쯤 지났을까. 모든 것을 깨끗이 지웠다고 할 순 없지만, 정신만큼은 완벽하게 추슬렀다. 예견된 두통도 오지 않았다. 나는 음식점에 전화를 걸어 스시를 주문했다.


오후 5시 무렵, 다시 강간범에 생각이 미쳤다. 불과 48시간 전, 바로 이 무렵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놈은 내가 마르티에게 정신이 팔린 틈을 노려, 상자에서 악마가 튀어나오듯 문을 벌컥 밀치며 내 집에 침입했다. 불현듯 놈이 나를 감시하고 있었다는 깨달음이 머리를 스쳤다. 놈은 호시탐탐 적기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감시했던 것이다.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 나는 사무실에 들러 우편물을 챙기고 메모를 확인한 뒤, 전화 몇 통을 돌려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다. 안나가 찾아 업무상 논의를 마치고 나서 말했다. “그런데 자기 얼굴이 영 이상하네.” 나는 어리둥절한 체했다. “무슨 소리. 컨디션이 최상인걸. 오늘 날이 얼마나 화창해, 햇살은 또 얼마나 눈부시고.” 안나가 미소 지었다. 만일 내가 누군가와 의논하기로 마음먹는다면 안나는 분명 가장 적절한 상대다. 우리는 오랜 세월 알고 지냈으니까. 하지만 내 안의 무언가가 나를 저지했다. 내가 안나의 남편과 관계를 가졌기 때문일까?


까만 자동차 한 대가 집 근처에 은밀하게 주차되어 있다. 나무에 아직까지 끈질기게 붙어 있는 무성한 이파리들로 반쯤 가려졌다. 이틀 연속이다. 어제는 감히 용기를 내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오늘은, 준비되었다. 좀 전에 자동차가 주차되었을 때 해가 완전히 떨어졌고 나는 쌀을 헹구느라 창문 앞에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차 안의 아무것도 식별되지 않을 만큼 사위가 어둡다. 달도 하늘 높이 드리워진 구름의 베일에 가려 한 귀퉁이만 모습을 드러낸 채 가늘고 파리한 빛만을 내뿜고 있다. 차종도 가려낼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운전석에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의 신경이 내게 향하고 있다는 것은, 그가 맹렬히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나는 정신을 집중한 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두렵지 않다. 그동안 수차례 경험을 통해 더는 물러설 수 없을 때 두려움도 사라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내가 그 상황이다. 나는 결연하다. 기다리고 있다. 그가 내게 오기를. 나는 어둠 속에 자리 잡은 채 그가 차에서 내리기를 기다렸다. 그를 맞을 준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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