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logo
x
바코드검색
BOOKPRICE.co.kr
책, 도서 가격비교 사이트
바코드검색

인기 검색어

실시간 검색어

검색가능 서점

도서목록 제공

로마사를 움직이는 12가지 힘

로마사를 움직이는 12가지 힘

(공화정·회복탄력성·공공성·대립과 경쟁·영웅과 황제·후계 구도·선정과 악정·5현재·혼돈·군인황제·유일신교·멸망)

모토무라 료지 (지은이), 서수지 (옮긴이)
  |  
사람과나무사이
2023-11-11
  |  
20,000원

일반도서

검색중
서점 할인가 할인률 배송비 혜택/추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알라딘 18,000원 -10% 0원 1,000원 17,000원 >
yes24 로딩중
교보문고 로딩중
영풍문고 로딩중
인터파크 로딩중
11st 로딩중
G마켓 로딩중
쿠팡 로딩중
쿠팡로켓 로딩중
notice_icon 검색 결과 내에 다른 책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중고도서

검색중
로딩중

e-Book

검색중
서점 정가 할인가 마일리지 실질최저가 구매하기
aladin 12,600원 -10% 630원 10,710원 >

책 이미지

로마사를 움직이는 12가지 힘

책 정보

· 제목 : 로마사를 움직이는 12가지 힘 (공화정·회복탄력성·공공성·대립과 경쟁·영웅과 황제·후계 구도·선정과 악정·5현재·혼돈·군인황제·유일신교·멸망)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서양사 > 로마사
· ISBN : 9791188635849
· 쪽수 : 415쪽

책 소개

로마사 일본 최고 권위자이자 도쿄대 명예교수이며 『세계사를 결정짓는 7가지 힘』의 저자인 모토무라 료지가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 ‘로마사’ 관련 최고의 역작이다. 그는 이 책에서 12가지 코드를 통해 2,206년 장대한 로마사를 명쾌하게 설명하며, 그 로마사가 오늘의 세계를 어떻게 움직이는지 날카롭게 통찰한다.

목차

글을 시작하며_ 로마 역사는 살아 있다
서문_ ‘도전과 응전의 제국’ 로마, 2206년 흥망성쇠의 비밀

part I
‘회복탄력성’과 ‘공공성’, 두 기둥으로 세계 제국이 된 로마
― 최대 경쟁자 카르타고를 멸망시키고 지중해를 통일하다

① Republican Government(공화정)
독재를 혐오한 로마인, 공화정을 선택하다

로마 건국자 로물루스가 인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비니족 여성 대량 납치 사건’을 명령했다? | 로마 공화정 탄생의 기폭제가 된 ‘루크레티아 능욕 사건’ | 로마는 왜 그토록 독재를 경계했을까? | 고대 로마의 민주정(공화정)이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정보다 1년 앞섰다고? | 500년 지속된 로마 공화정 vs. 50년 지속된 아테네 민주정 | 플라톤은 독재정, 아리스토텔레스는 귀족정을 지지한 까닭은? | 고대 그리스가 로마처럼 세계 제국으로 발전하지 못한 이유

② Resilience(회복탄력성)
패배할수록 강해지는 로마군, 패배에서 배우는 로마인

‘로마 제2의 건국자’ 카밀루스는 어쩌다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고도 추방되다시피 했을까? | 카우디움 전투에서 삼니움족에게 당한 굴욕을 되갚아주고 대제국의 기틀을 다진 위대한 로마군 | 막강한 로마군에게 역사상 최악의 패배를 안긴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 | 패전 장수에게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주는 관용과 융통성이 로마를 대제국으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 ‘한니발 전법’을 응용해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 군대를 꺾은 명장 스키피오 | 스키피오는 왜 자신의 묘비에 “은혜를 모르는 조국이여, 너희는 내 뼈를 가질 자격이 없다”라는 글을 남겼나? | 관용의 로마가 카르타고에만은 관용을 베풀지 않고 초토화한 이유 | 보수파 원로원 의원 카토는 왜 스키피오를 그토록 끔찍이 싫어했을까?

③ Publicness(공공성)
로마인의 철두철미한 ‘공공성’이 제국으로 도약하는 디딤대였다?

고대 로마를 단순한 공화정이 아닌 ‘공화정 파시즘’으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 | 인류 역사상 ‘공적 개념’을 최초로 발견한 민족, 로마인 | 로마인은 어떻게 그토록 강한 ‘공공 의식’을 갖게 되었을까? | 신앙심이 깊었던 로마인이 현세의 가호를 빌지 않은 까닭 | 고대 로마 명장 투베르투스는 왜 규율을 위반한 친아들의 목을 베었나? | 연대 책임에 기초한 형벌인 ‘10분의 1형’ 데키마티오를 엄격히 시행한 로마군

part Ⅱ
최고 영웅 카이사르와 최고 황제 아우구스투스,
로마를 반석 위에 세우다
― 율리우스��클라디우스 왕조의 성쇠,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

④ Confrontation&Competition(대립과 경쟁)
‘대립’하며 혼란을 겪고, ‘경쟁’하며 발전하는 로마

카르타고와의 포에니 전쟁에 승리한 뒤 ‘승자의 저주’에 빠진 로마 | 명문 귀족 가문 출신 그라쿠스 형제가 가난한 평민을 위한 개혁에 나선 이유 | 가이우스 그라쿠스의 곡물법 개혁안을 반대하던 원로원 의원은 왜 배급을 타기 위해 줄을 섰나? | 마리우스와 술라라는 간판을 내걸고 대립한 ‘평민파’와 ‘벌족파’ | 스파르타쿠스 난 진압으로 명성을 얻은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는 어쩌다 앙숙이 되었을까? | 독재자 술라의 압박에도 카이사르가 아내 코르넬리아와 이혼하지 않은 까닭은? | 폼페이우스 vs. 카이사르 내전에서 카이사르가 최종 승자가 되게 한 결정적 무게추는 그의 ‘관대함’이었다?

⑤ Heros&Emperors(영웅과 황제)
로마를 반석 위에 세운 최고의 영웅과 황제는?

‘파트로네스’와 ‘클리엔테스’라는 사적 관계는 공화정 말기 로마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 군대가 징병제에서 지원제로 바뀌면서 병사의 충성 대상이 ‘국가’가 아닌 ‘장군’으로 바뀐 것이 로마 멸망의 보이지 않는 원인이었다? | 의원 정수를 늘리는 교묘한 방법으로 원로원을 장악한 정치 천재 카이사르 | 수많은 반대파와 정적에게 보여준 무한 관용이 부메랑이 되어 그의 심장에 꽂히다 | 안토니우스는 왜 카이사르의 유언장을 대중 앞에서 공개했을까? | 고대 로마의 공화정 시대에 최고 신관이 최고 권력자인 집정관보다 높은 직위였다고? |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는 왜 권력과 무관한 ‘최고 신관’ 지위에 그토록 집착했을까?

⑥ Succession Structure(후계 구도)
로마 제국의 ‘성쇠’를 좌우했던 후계 구도 문제

카이사르는 왜 병약하고 군사 재능도 뛰어나지 않은 옥타비아누스를 후계자로 점 찍었을까? | 옥타비아누스가 원로원과 민회가 부여한 온갖 특권을 정중히 사양한 까닭 | 아우구스투스는 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고 인간적으로 좋아하지도 않은 티베리우스를 후계자로 지명할 수밖에 없었을까? | 유능한 황제 티베리우스는 어쩌다 로마 시민에게 증오의 대상이 되었나? | 유혈이 낭자한 검투사의 경기에 로마인이 열광한 이유는? | 중병을 앓은 후 폭군으로 변한 ‘미치광이 황제’ 칼리굴라 | 유능한 통치자였으나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비운의 황제 클라우디우스 | 친어머니 아그리피나를 잔인하게 살해한 희대의 폭군 네로 | 네로가 기독교 신자를 박해했다는 설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part Ⅲ
가장 행복했던 ‘5현제 시대’ 이후 찾아온
최악의 ‘군인황제 시대’
― 낮이 지나면 밤이 오듯 번영의 끝에서 몰락이 시작되다

⑦ Good Politics&Bad Politics(선정과 악정)
베스파시아누스・티투스의 선정과 도미티아누스의 악정, 그 놀라운 결과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최고 지휘권에 관한 법령’으로 혼란을 잠재우다  | 재정 회복을 위해 소변에도 세금을 부과한 ‘현명한 짠돌이 황제’ 베스파시아누스 | 형 티투스의 선정 vs. 아우 도미티아누스의 악정 | ‘공화정 부활론’에 정당성을 부여해준 세 명의 폭군, 칼리굴라・네로・도미티아누스

⑧ The Age of Five Good Emperors(5현제 시대)
인류 역사상 가장 행복했던 현군들의 시대

네르바 황제가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해 한 ‘후계자 선택’이 로마의 5현제 시대를 열어준 역사의 아이러니 | 최초의 속주 출신 황제 트라야누스, ‘로마 역사상 가장 행복한 시대’를 열다 | 경제적으로 어려운 집안의 자녀를 위한 장학금 조성 정책인 ‘알리멘타’를 시행해 민중의 삶을 개선한 현군 트라야누스 | 트라야누스, 연이은 원정 승리로 역사상 최대 규모의 로마 제국을 이룩하다 | 하드리아누스는 과연 전임 황제 트라야누스의 지명이 아닌 황후 플로티나의 계략으로 제위에 올랐을까? | 하드리아누스, 제위에 오른 후 자신에게 쏟아진 불신과 혼란을 탁월한 정책과 업적으로 잠재우다 | 치세 기간의 절반을 속주 시찰에 할애하면서도 ‘하드리아누스 르네상스’를 이루고 대제국의 내실을 다진 또 한 명의 현군 | 유대 반란에 후계자 사망, 건강 악화까지 불운으로 점철된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만년 | 내정과 외정을 두루 안정시켜 5현제 중 가장 뛰어난 황제로 평가받는 안토니누스 피우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로마 역사상 최초로 ‘공동 통치 체제’를 구축하다 | 아우렐리우스가 플라톤의 이상에 부합하는 황제인 까닭

⑨ The Beginning of Chaos(혼돈의 시작)
막장 황제들이 활개 치고 제위를 사고팔던 참담한 시대

로마 역사상 최악의 황제로 기록된 코모두스, 돈으로 평화를 사고 기행을 일삼다 | 근위대에게 돈을 주고 제위를 샀으나 66일 만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어리석은 황제 디디우스 | 로마를 ‘로마인의 제국’에서 ‘로마 제국’으로 탈바꿈시킨 북아프리카 출신 황제 세베루스 | 공동 통치자인 친동생 게타를 암살하고 ‘기록말살형’에 처한 폭군 카라칼라 | 여장과 동성애 등 온갖 기행을 일삼으며 제국을 혼란에 빠뜨린 ‘광인 폭군 황제’ 엘라가발루스

part IV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 로마 멸망
― 관용을 상실한 로마, 멸망의 길로 질주하다

⑩ The Military Emperors’ Time(군인황제 시대)
최고의 세계 제국 로마를 멸망으로 몰고 간 최악의 황제들

로마 제국 멸망을 ‘쇠퇴・멸망 시대’가 아닌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변혁 시대‘로 보아야 한다? | 로마 제국 황제의 출신지가 이탈리아반도가 아닌 발칸반도에 집중된 까닭 | 로마 제국을 멸망의 길로 몰고 간 군인황제 시대를 열어젖힌 최악의 황제 막시미누스 트락스 | 고트족 침공을 막기 위해 군대의 전권을 맡긴 데키우스에 의해 제위를 잃은 아랍 출신 황제 필리푸스 | 내정 질서를 수립하고 민심을 바로잡은 ‘명군’ 데키우스가 ‘폭군’으로 평가되는 이유는 ‘기독교 박해’ 때문이었다? | 로마 역사상 최초로 이민족의 포로가 되어 비참하게 죽은 황제 발레리아누스 | 로마 제국의 판도 안에 ‘삼국시대(로마 제국・팔미라 왕국・갈리아 제국)’가 형성된 적이 있다고? | 팔미라 왕국・갈리아 제국을 격파하고 잃어버린 영토를 회복한 황제 아우렐리아누스 | 로마 제국의 고질병이 되어 50년간 이어진 ‘황제 암살 사건’ | ‘3세기의 위기’를 초래한 군인황제 시대에 마침표를 찍고 개혁을 완성한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등장

⑪ The Monotheistic World Empire(유일신교 세계 제국)
유일신교 기독교는 로마 제국에 어떤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불러일으켰나?

위대한 개혁 군주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범죄의 창조자’로 폄하된 이유는 ‘기독교 박해’ 때문이었다? |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로마의 옛 신앙’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한 이유는 권력과 권위를 황제에게 집중시키기 위해서였다고? | 77명의 정식 로마 황제 중 스스로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난 유일무이한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 공동 황제 시대의 혼란에 마침표를 찍고 로마를 재통일하며 단독 황제가 된 콘스탄티누스 | 콘스탄티누스, 순도 99.8퍼센트 금화 ‘솔리두스’를 무기로 화폐 개혁에 성공하며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다 | 임종 직전 세례를 받고 기독교 신자가 된 콘스탄티누스가 다른 황제들과 함께 로마의 ‘신’이 된 아이러니 | 오랫동안 정체돼 있던 기독교 신자 수가 3~4세기 군인황제 시대에 급증한 이유는 세상이 혼란스러워졌기 때문이다? | 율리아누스 황제가 30대 초반에 죽지 않고 20년만 더 살았다면 오늘날의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 콘스탄티누스 이후의 황제들이 그토록 열심히 기독교 보호 정책을 펼친 뜻밖의 이유는? | ‘관용 상실’이 로마 제국 멸망의 첫 번째 원인이라고? | 유능한 황제 테오도시우스를 유일하게 무릎 꿇린 인물, 밀라노 주교 암브로시우스

⑫ The Fall of the Roman Empire(로마 제국 멸망)
‘관용’을 잃어버린 로마, 자기 심장에 비수를 꽂다

테오도시우스 황제 사후 영원히 동로마와 서로마로 갈라진 로마 제국 | 서로마의 마지막 황제 이름이 로마 건국자 ‘로물루스’와 같은 얄궂은 운명과 역사의 아이러니 | 20년에 걸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영토 확장 정책이 오히려 동로마 제국의 수명을 단축시켰다는데? | ‘세 개의 세계’가 로마를 중심으로 통합되었던 고대 지중해 세계가 중세에 다시 ‘세 개의 세계’로 분열하며 새 시대를 열다 | 지금까지 나온 로마 제국 멸망 원인이 210가지에 달한다고? | 노예가 노예를 낳아 새로운 노예를 충당할 수 없었던 시대의 로마는 어떻게 400년간이나 노예제를 유지할 수 있었나? | 로마의 ‘공공 의식’ 상실이 인프라 노후화로 이어졌고, 멸망을 앞당기는 원인이 되었다? | 로마 제국의 ‘황제 권력 상실’이 역설적으로 권력을 회복한 듯 보였던 콘스탄티누스 시대에 시작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까닭 | 서로마 제국 멸망은 어느 날 갑자기 게르만족이 로마 영토로 밀고 들어오며 벌어진 사건이 아니었다? | 공화정 시대의 로마인과 제정 시대의 로마인이 전혀 다른 사람들처럼 보이는 이유는? | 3세기 로마 제국 내 기독교 신자 수가 급증한 또 하나의 원인, ‘스토아 철학’ 확산 | 관용이 사라진 로마 제국 말기 상황과 닮은꼴인 현대 사회가 나아갈 길은?

저자소개

모토무라 료지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47년 구마모토현에서 태어났다. 도쿄도립 기타타마고등학교를 거쳐 1973년 히토쓰바시대학교 사회학부를 졸업했다. 1980년 도쿄대학교대학원 인문과학 연구과에서 박사 과정을 이수했다. 1984년부터 도쿄대학교 교양학부에서 조교수를 지냈으며, 1994년 교수로 승격했다. 1996년부터 도쿄대학교대학원 종합 문화연구과 교수로 활동했다. 2012년 도쿄대학교를 정년퇴직한 뒤 도쿄대학교 명예교수가 되었다. 퇴직 후 전임직에서 벗어나 지금은 집필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잡지 《KODAI》의 편집장으로 일본 고대 서양사 연구를 해외에 소개하고 있으며, 일본 서양 전학회 위원과 지중해 학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대 로마 사회사 전문으로, 산토리 학예상, 지중해 학회상, JRA마사 문화상(JRA賞馬事文化賞受賞: 일본 중앙 승마회에서 문학, 평론, 예술 등 문화 활동을 통해 승마문화 발전에 공헌한 사람에게 1987년부터 수여하는 상_ 옮긴이)을 수상했다. 저서로 『세계사를 결정짓는 7가지 힘』『다신교와 일신교』『로마제국 인물 열전』『말이 바꾼 세계사』『애욕의 로마사』『지중해 세계와 로마제국』 등이 있다.
펼치기
서수지 (옮긴이)    정보 더보기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접한 일본어에 빠져들어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일본어를 공부해 출판 번역의 길로 들어섰다. 옮긴 책으로 『과학잡학사전 통조림 ― 일반과학편』 『과학잡학사전 통조림 ― 인체편』 『과학잡학사전 통조림 ― 우주편』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63가지 심리실험 ― 뇌과학편』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61가지 심리실험 ― 인간관계편』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88가지 심리실험 ― 자기계발편』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물리 이야기』 『소수는 어떻게 사람을 매혹하는가?』『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세계사를 바꾼 37가지 물고기 이야기』 『세계사를 바꾼 21인의 위험한 뇌』 『세계사를 결정짓는 7가지 힘』 『로마사를 움직이는 12가지 힘』 『한 권으로 읽는 미생물 세계사』 등이 있다.
펼치기

책속에서

막 걸음마 단계의 나라를 다스리던 로물루스왕에게는 로마에 아기를 낳아줄 가임기 여성이 부족하다는 고민이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인구가 감소해 머지않아 로마라는 나라가 없어질 수도 있는 위기였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로물루스왕은 로마와 이웃한 사비니라는 나라에서 여성을 납치해 온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아내와 딸을 빼앗긴 사비니 사람들도 당연히 가만있을 리 없었다. 사비니 사람들은 로마에 복수를 맹세했고 이윽고 두 나라는 서로 칼끝을 겨누는 원수지간이 되었다.
그런데 팽팽하게 대립 중인 두 나라 사이에 끼어들어 중재자 역할을 자처한 이들이 있었다. 바로 로마에 억지로 끌려간 사비니 여성들이었다.
“어느 쪽에서 희생자가 나오든 슬픔을 감내해야 합니다. 부디 싸움을 멈춰주세요.”
사비니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사비니가 패하면 자신들의 아버지와 형제가 죽임을 당하고, 로마가 패하면 남편과 어린 아들이 죽임을 당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억지로 끌려갔으니 그들도 처음에는 로마인을 원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살을 맞대고 함께 산 지 일 년이 지나 아이가 태어나면서 사비니 여인들의 마음은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사비니 여성들이 평화를 호소하자 로마와 사비니 사이의 분쟁은 조정 국면에 접어들었고 바야흐로 양국은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었다.


물론 로마도 비겁하게 싸운 자나 자신만 살려고 적 앞에서 도망친 자에게는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하지만 용감하게 싸우다 패한 자에게는 벌을 내리지 않았다. 대신 관대하게 받아주며 다음번에 설욕할 기회를 주었다. 칸나에 전투에서 7만 명의 사망자를 낸 패전 장수 바로도 로마로 무사히 귀환했고 로마는 그를 모질게 내치지 않았다.
로마가 패전 장수에게 관용을 베푼 데는 이유가 있었다. 로마인이라는 긍지를 지닌 그들에게 패배를 맛본 순간의 굴욕이 이미 충분한 사회적 재판이 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로마는 패전 장수를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기회가 생기면 다시 장수로 기용해 설욕할 기회를 주었다. 로마인은 실패할 경우 그 실패에서 배울 수 있다고 믿었다. 로마인이 몇 번이고 쓰라린 패배를 경험하면서도 언제나 최후의 승자가 되었던 비결은 실패에서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들은 모름지기 로마인이라면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힘이 있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기원전 123년 티베리우스보다 여덟 살 어린 가이우스도 형의 뒤를 이어 호민관으로 취임해 국가 재편에 매진했다. 가이우스의 개혁은 형의 유지를 이으면서도 원로원의 지배 영역을 깊숙이 파고드는 대담한 정책이었다.
가이우스의 개혁이 한창이던 와중에 흥미로운 일화가 남아 있다. 당시 주요 식량인 곡물을 수입에 의존하던 로마에서는 기상 이변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며 곡물 가격이 크게 요동쳤다. 가난한 사람들은 곡물 가격이 상승하자마자 배를 곯기 시작했다. 가이우스는 경제적 약자들이 곡물 배급을 받을 수 있도록 곡물법을 제정했다. 그 당시 곡물 배급을 받으러 민중들이 늘어선 줄에 곡물법 제정에 반대하던 유력 원로원 의원이 끼어 있었다.
“형편이 어려운 이들을 위한 배급입니다. 왜 당신이 여기 있습니까?”
“내 몫을 찾으러 왔소. 나한테 뜯어간 세금 아니오. 그러니 내 몫을 찾아가는 게 당연하지 않겠소?”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서점(www.aladin.co.kr)
최근 본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