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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판타지/환상문학 > 한국판타지/환상소설
· ISBN : 9791188793143
· 쪽수 : 282쪽
· 출판일 : 2018-03-15
책 소개
목차
에피소드5 어이딸
에피소드6 주머니 속 안심국
에피소드7 세상의 이면
리뷰
책속에서
그가 가져온 두루마리 족자는 상태가 매우 나빠 보였다.
본래는 아름다웠을지도 모르겠지만 보호천이 빛바래고 해진 데다 주지인 소나무 그림도 시커멓게 얼룩져 있었다. 족자 아래쪽에 달린 풍진은 금세 부스러져 버릴 것처럼 온통 하얀 실금으로 덮였다.
“일전에 사 갔던 족자일세. 한동안 잘 썼네만, 이것이 한두 달 전부터 슬슬 낡아 가기 시작하더니 요새 이 모양이 되더란 말일세.”
두 달 만에 멀쩡한 물건이 이렇게 변했다고요? 혹시 습기 많은 지하실이나 비바람 들이치는 곳에 방치하신 건가요? 족자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꼴이었다. 마뜩찮은 표정을 하고 족자를 내려다보자 노인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손을 휘저으며 열심히 변명했다.
“난 자네가 알려 준 대로 다 했어. 햇빛 잘 들고 바람 좋은 방에 걸어 놓고, 하루에 한 번씩 맑은 물을 한 대접 갖다 주고.”
예? 족자에게 왜 물을 줘요……?
묻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기억이 없다는 게 들통 날 터였다. 힐끗 유하의 눈치를 보는 수밖에. 그녀는 태연히 노인을 상대해 수리가 되면 연락하겠다며 그를 보냈다. 노인이 가면서 “산 지 6개월 만에 생긴 일이니 애프터서비스겠지?”라고 물었지만 알 게 뭐야. 6개월 전의 일 따위는 기억도 없는데.
한편으로 속을 끓이고 한편으로는 머리를 굴리며 앉아 있는데 좌우에서 부스럭부스럭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힐끗 보니 도깨비들이다. 내가 팔짱 끼고 앉아서 화분만 노려보고 있자 뭐 하나 궁금했나 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도깨비들의 수는 점점 늘어났다.
뭐야, 뭐야? 김 서방 뭐 해? 쉿, 화난 것 같아. 뭐 해? 뭐 해? 몰라. 몰라. 물어볼까? 살짝 물어볼까? 옆구리 찔러 봐. 머리카락을 당겨 봐. 소곤거리는데 다 들린다.
모른 체하며 화분을 노려보고 있자 결국 부채 도깨비가 살랑살랑 바람을 일으키며 물었다.
“김 도령, 무얼 하오?”
너네 두목이 시켜서 바늘 키우고 있다. 왜?
쏘아붙이고 싶지만 죄 없는 얘들에게 화낼 수는 없지. 짜증을 꾸욱 눌러 참으며 대답했다.
“기다리고 있어.”
“무엇을 기다리오?”
“바늘이 바늘 나무가 되는 걸.”
“그럼 9년 동안은 도령의 연주를 못 듣는 거요?”
무슨 소리냐? 부채 도깨비를 쳐다보자 살랑살랑, 선면을 팔락이며 말한다.
“바늘을 심어 놓고 3년 동안 거름 주고 3년 동안 물을 주고 3년 동안 햇볕 쬐면 나무가 된다오. 정성 들여 잘 키우면 좋은 바늘이 쑥쑥 열리오.”
농담이죠? 아니. 아니. 옛날이야기죠? 응?
나는 부채 도깨비의 진지한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도깨비는 거짓말을 못 한다. 그럼 정말로 바늘이 나무가 된다는 거야? 그것도 9년에 걸쳐서…….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내게 남은 시간은 아홉 시간조차 안 된다.
“저, 혹시 싹 난 나무 바늘을 구해 올 수 있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부채 도깨비에게 묻자 녀석이 부챗살을 탁 접었다.
“북망산에 가면 바늘 나무가 많다오.”
그 북망산이 설마, 사람 죽으면 묻힌다는 그 북망산이냐?
“얼마나 먼 곳인데?”
“사흘 밤 사흘 낮을 달려가면 닿소.”
왕복 6일이네. 9년보다는 빠르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