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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학 > 사회학 일반
· ISBN : 9791188841455
· 쪽수 : 350쪽
· 출판일 : 2025-11-21
책 소개
목차
추천사__ 4
여는 글__ 8
제1장 순우리말이나 지명이 반영된 도로명
사뜸로__ 16
장전로__ 23
짐대로__ 29
원흥로__ 36
수곡로__ 43
원마루로__ 51
증안로__ 57
주성로__ 61
Tip 1. ‘청주’라는 이름은 언제부터?__ 66
제2장 역사적인 유물과 유적이 연관된 도로명
토성로__ 72
탑동로__ 80
탑골로__ 85
성안로__ 91
모충로__ 98
율봉로__ 103
것대로__ 109
흥덕로__ 114
상당로__ 121
사직대로__ 127
Tip 2. 1,000년 전 이름 ‘서원’이 현재도?__ 134
제3장 산과 하천 그리고 샘과 관련된 도로명
구룡산로__ 140
당산로__ 145
낙가산로__ 151
우암산로__ 158
무심동·서로__ 166
쇠내로__ 174
사천로__ 180
운천로__ 185
쌍샘로__ 190
Tip 3. 공충도는 충청도?__ 195
제4장 기준점이 있어 위치를 나타내는 도로명
산남로__ 200
내수동로__ 206
교서로__ 212
교동로__ 217
남들로__ 222
청남로__ 228
안덕벌로__ 234
중고개로__ 240
Tip 4. ‘호서지방’이 어디여?__ 245
제5장 특정 지형과 시설을 나타내는 도로명
용암로__ 250
가로수로__ 256
무농정로__ 262
현암로__ 268
대성로__ 273
호미로__ 279
청주역로__ 285
Tip 5. 다양한 도로명들__ 291
제6장 지명 결합형과 기타 도로명
분평로__ 296
풍년로__ 302
풍산로__ 306
용정로__ 312
산미로__ 318
호국로__ 324
향군로__ 328
두꺼비로__ 335
Tip 6. 도로명주소란?__ 343
참고문헌__ 348
저자소개
책속에서
▶제1장 순우리말과 지명이 변형된 도로명
▶사뜸로
내덕동 충북학생수영장 앞 학생수영장삼거리에서 율량동 방향으로 있는 도로 이름은 ‘사뜸로’다. ‘사뜸’이 과연 무엇이기에 도로명으로 정해졌을까?
도로명주소 안내시스템은 ‘사뜸로’의 도로명 부여 사유를 “옛 지명인 사뜸마을 명칭 및 역사성 반영”이라고 간략하게 소개한다.
‘사뜸로’라는 도로명이 생기게 된 이유인 ‘사뜸마을’은 어디쯤이고, ‘사뜸’은 무슨 의미일까? 현재 이 일대는 아파트와 상가가 들어서면서 옛 지형과 상당히 달라졌지만, ‘사뜸마을’의 위치는 개발되기 전에 제작된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도에 율량동 덕성초등학교(덕성국교) 아래쪽에 ‘사뜸’이라는 마을이 있다. 그래서 그 일대의 도로 이름이 ‘사뜸로’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마을 이름은 왜 ‘사뜸’일까? ‘사뜸’은 ‘사’와 ‘뜸’의 결합형인데, ‘뜸’은 국어사전에 “한동네 안에서 따로따로 몇 집씩 한데 모여 있는 구역”이라고 나온다. 이렇듯 ‘뜸’이 “외떨어진 작은 마을”을 의미한다면 ‘사’는 어떤 의미일까?
《청주 지명 유래》를 보면 ‘사’는 ‘사이’에서 ‘이’가 생략된 어형으로 보는데 ‘사이골’ · ‘사이내’ · ‘사이재’처럼 ‘사이뜸’에서 ‘사뜸’으로 변형된 것이다. 즉 ‘사뜸’은 마을과 마을 사이, 아니면 산과 산 사이, 혹은 산과 하천 사이 등 무언가의 사이에 형성된 마을이었을 것이다. 정리해보면 ‘사뜸’은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사뜸’은 마을 이름 외에도 ‘사뜸골’(사뜸에 있는 골짜기)·‘사뜸들’(사뜸 앞에 있는 들)·‘사뜸교’·‘사뜸방죽’ 등 다양하게 사용되었는데 현재도 ‘사뜸로’를 제외하고 ‘사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남아 있을까? ‘사뜸로’ 일대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연관된 지명이나 상호를 찾아보았는데 딱 하나 ‘사뜸경로당’이 운영되면서 ‘사뜸’의 명맥을 잇고 있었다.
경로당에서 만난 어르신께 ‘사뜸’의 유래를 여쭤보니 “옛날에 이 마을에 ‘사씨’가 처음으로 들어와 살아서 그런 이름이 생긴 겨…….”라는 의외의 답변을 통해 ‘사뜸’의 의미가 와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뜸’에서 유래한 ‘사뜸로’라는 도로명이 있듯이 청주에는 ‘뜸’이 들어가는 다른 도로명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분평동에 있는 ‘안뜸로’다.
‘안뜸로’는 분평동 어디에 있는 도로명일까? 현재 분평동과 산남동 사이에 있는 청주온천 뒤편 계룡리슈빌아파트 앞 작은 도로가 바로 ‘안뜸로’다. ‘안뜸’의 ‘안’은 ‘안쪽’을 뜻하는 ‘內’(안 내)이고, ‘뜸’은 “작은 마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안뜸’은 “안쪽에 있는 작은 마을”이라는 뜻으로 마을이 산 안쪽으로 쑥 들어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도를 보면 ‘안뜸’ 아래에 ‘샛뜸’도 보이는데 ‘샛뜸’은 지금의 우성1차아파트 105동 뒤에 있던 마을이다. ‘새’는 ‘間’(사이 간) 또는 ‘新’(새로울 신)으로 보아 ‘샛뜸’은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 또는 “새로 생긴 작은 마을”로 해석된다.
‘안뜸’과 ‘샛뜸’이 있는 지도 오른쪽에 ‘일곱집매’와 ‘여섯집매’가 있다. ‘일곱집매’는 ‘일곱집’과 ‘매’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매’는 ‘山’(뫼 산)의 뜻이니 ‘일곱집매’의 본래 의미는 “일곱 채의 집이 있는 산”이 된다. 산기슭에 일곱 가구가 모여 살아서 ‘일곱집매’라 한 것인데 ‘뜸’과 더불어 우리말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안뜸’의 흔적은 ‘안뜸로’라는 도로명 외에 청주남중 옆 잠두봉(누에머리산) 반대편 기슭에 있는 구계서원 입구 근처 ‘안뜸빌라’와 분평동 행정복지센터 뒤에 있는 ‘안뜸공원’ 등이 있다.
현재 청주에는 ‘사뜸로’와 ‘안뜸로’처럼 “한동네 안에서 몇 집씩 따로 모여 있는 구역”을 의미하는 ‘뜸’이 도로명으로 들어간 사례 이외에도 ‘뜸’을 사용했거나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여럿 있다.
금천동 ‘벌뜸’(벌판에 있는 작은 마을), 정상동 ‘송뜸’(속뜸의 변형으로, 속으로 들어와 있는 작은 마을), 사천동 ‘아랫뜸’과 ‘웃뜸’, 그리고 ‘골뜸’(골짜기 안에 조성된 작은 마을), 우암동 ‘양지뜸’과 ‘음지뜸’ 등이 《청주 지명 유래》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뜸’을 현재도 사용하는 사례로는 ‘뿌르뜸’과 ‘박뜸말’이다. ‘뿌르뜸’은 용담동 북단 명암동과의 경계에 있는 마을이다. 명암저수지 도로변에 형성되어 있다.
‘뿌르뜸’은 ‘뿌르’와 ‘뜸’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뿌르’에 대해서는 영어 ‘pool’에 대한 일본식 발음으로 간주한다. 실제로 이 마을에 풀장이 있었기에 이에 근거해서 마을 이름이 만들어졌다고 믿고 있다. 한편 ‘뿌르뜸’을 ‘뿌리뜸’의 변형, 즉 ‘뿌리’를 ‘부리’·‘산부리’(산의 어느 부분이 부리같이 쑥 나온 곳)의 된소리 어형으로 보아 “산부리에 있는 작은 마을”로 설명하기도 한다. 현재 ‘뿌르뜸’ 마을 입구에는 위 지명 유래 두 가지를 모두 소개하는 안내판이 서 있다. 인근 버스정류장 이름으로도 ‘뿌르뜸’이 사용된다.
목련공원으로 가는 길에 월오동 ‘박뜸말’이 있다. ‘뜸’과 ‘말’은 모두 마을을 뜻하는데 중복 사용되었다. ‘박뜸’은 월오동 가운데 있는 마을인데 월오동의 중앙에 있어서 ‘중월’이라고도 한다.
‘박뜸’의 ‘박’은 ‘박씨’를 가리키는 것으로, ‘박뜸’은 “박씨 마을”로 해석된다. ‘밀양 박씨’가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박뜸말’에서 만난 박노욱 어르신께 “예전에는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박씨였고, 지금도 50호 중 20호 이상이 박씨여…….”라는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마을 이름에 근거해서 현재 버스정류장 이름도 ‘박뜸말’이다.
‘사뜸로’, ‘안뜸로’, ‘뿌르뜸’, ‘박뜸말’ 등 ‘뜸’(한동네 안에서 따로따로 몇 집씩 한데 모여 있는 작은 마을)이 들어간 도로명과 마을 이름들이 오래오래 기억되길 바란다.
【그림】 ‘사뜸로’의 기점과 종점 그리고 도로 구간
【사진】 덕성국교(덕성초등학교)와 율량천 사이에 있는 마을 이름이 ‘사뜸’
【그림】 ‘사뜸’의 명맥, 율량동 사뜸경로당
【그림】 안뜸과 샛뜸 그리고 여섯집매와 일곱집매가 표시된 분평동 일대
【사진】 ‘안뜸’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안뜸빌라’와 ‘안뜸공원’
【사진】 명암저수지·명암타워 앞 ‘뿌르뜸’ 버스정류장
【사진】 월오동 박뜸말 버스정류장
▶장전로
청주시 서원구 성화동에 있는 주요 도로명은 ‘성화로’·‘신성화로’·‘신화로’(개신동과 성화동을 연결)·‘성봉로’(성화동과 봉명동을 연결) 등 대부분이 ‘성화동’이라는 지명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었는데 예외인 도로명이 있으니 바로 ‘장전로’다. ‘장전로’에서 ‘장전’은 어떤 의미일까?
총포에 탄알이나 화약을 재어 넣는 것을 ‘장전裝塡’이라고 하는데 그런 의미일까? ‘장전로’에서 ‘장전’은 한자로 ‘長田’(장전)이라고 쓴다.
‘장전’長田이 표기된 1910년대 지도에서 그 뜻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지도의 오른쪽에 있는 ‘原興(원흥)’이 산남동 원흥이방죽 일대에 있던 마을이고, ‘원흥’과 ‘장전리’ 사이에 있는 산이 구룡산이므로 ‘長田里(장전리)’는 현재의 성화동 지역에 있었던 마을이다.
1923년에 제작된 지도에는 開新里(개신리)와 農村里(농촌리) 사이에 ‘長田(장전)’이 있다. 그런데 ‘장전’ 양쪽에 괄호가 있는 것으로 보아 공식 이름은 농촌리로 바뀌었고 옛 이름을 남겨 놓은 듯하다.
『청주지명유래』에 나오는 ‘성화동’의 유래와 연혁은 이렇다.
성화동(聖化洞)은 본래 청주군(淸州郡) 남주내면(南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저산성 산지(低山性山地)여서 농사를 주로 짓게 됨으로써 농촌(農村)이라 하였다고 한다. 1914년 일제(日帝)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가서리(駕西里) 밑 서강내일상면(西江內一上面)의 농촌리(農村里) 일부를 병합하여 농촌리(農村里)라 명명하고 사주면(四州面)에 편입하였다. 1963년에 농촌동(農村洞)으로 바꾸었고, 1990년에 다시 농촌동(農村洞)을 성화동(聖化洞)으로 개명하였다.
성화동은 최근에 개명되었고, ‘장전’은 현재의 성화동(옛 농촌동·농촌리) 지역에 있었던 마을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장전’은 한자가 탄알과 관련된 ‘裝塡(장전)’이 아니라 ‘長田(장전)’이므로 ‘긴 밭’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유래비가 성화초등학교 앞에 있다.
이 유래비에는, 성화동에 있던 자연마을 중에 ‘긴밭재’가 있는데 ‘긴밭재’는 ‘길게 늘어진 밭에 있는 고개’로, 고개가 기다란 밭과 연결되어 그 고개를 ‘긴밭재’라 부른 것이며 ‘장전(長田)’으로도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개 이름이었다가 마을 이름으로 된 ‘긴밭재’는 택지개발이 되기 전에 성화동 도로변에 있던 마을이다. ‘긴밭’의 ‘긴’은 ‘길다’(長)의 활용형이므로 ‘긴밭’은 ‘기다란 밭’이다. 기다랗게 늘어진 밭이 있어서 ‘긴밭’이라 한 것이다. ‘긴밭’을 한자로 하면 ‘장전’(長田)이다.
‘긴밭재’가 표기된 지도의 ‘긴밭재’는 고개 이름이 아니라 마을 이름이다. 고개 아래에 마을이 형성되자 그 고개 이름을 마을 이름으로 삼아 부른 것이다. ‘긴밭재’는 1500년대에 자연마을로 시작하여 1760년대에는 25호가 살았다고 전한다.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간직한 ‘긴밭재’ 즉 ‘장전’長田으로 인해 ‘장전로’長田路라는 도로명이 생긴 것이다.
‘긴밭재’와 연관되어 성화초등학교 앞의 마을 유래비 외에도 청주성화휴먼시아 4단지 아파트 맞은편에 있는 성화마트 옆에 장전(진밭재)마을 유래비도 세워져 있다.
이 유래비에는 ‘긴밭재’가 ‘진밭재’로 되어 있다. ‘진밭재’는 ‘긴밭재’가 변한 것으로 ‘ㅣ’ 모음 앞에서 ‘ㄱ→ㅈ’의 변화에 따라 ‘긴밭재’가 ‘진밭재’로 나타난 것이라고 한다.
장전(진밭재)마을 유래비에는 “옛날에 이 마을에 젊은 농부 내외가 작은 고갯길 길가에 있는 밭 한 뙈기에 농사를 지으며 살았으나 그 농사로는 가난을 면할 수가 없었다. 하루는 내외가 밭을 매러 나갔는데 때는 7, 8월의 뙤약볕이요 아침밥마저 든든히 먹지 못한 아내는 더위와 배고픔에 지치고 힘들어 그만 남편 몰래 도망가고 말았다. 같이 일하던 남편은 그 밭고랑이 길어서 아내가 도망간 것도 모르고 일하다 아내를 놓치고 말았다. 그 후 이 마을은 긴밭재(진밭재)라는 명칭으로 불렸다.”고 전하고 있다. 가슴이 찡한 이야기인데 일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또 밭이 얼마나 길었기에…….
성화동에서는 ‘긴밭재’라는 마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택지개발이 되면서 옛 마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다만 이전 지도를 통해 그 위치는 대략 알 수 있다. 성동교회 대각선 맞은편이면서 장전방죽(장전유수지) 건너편에 있었으므로, 현재 성화동 남양휴튼아파트가 들어선 자리가 긴밭재 마을이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긴밭재라는 지명을 사용하지 않아서 점점 잊혀져 가고 있다. 그렇지만 성화동에는 마을 유래비가 2개나 있고, 또한 ‘장전長田’이라는 이름을 살려 ‘장전로’라는 도로명과 도로명주소도 사용되고 있어 그나마 이름을 기억할 수 있다. 성화초등학교 앞에 있는 공원의 이름이 ‘장전공원’이고, 성화개신죽림동 행정복지센터 뒤편에 있는 옛 장전방죽을 지금은 ‘장전유수지’라 부른다. 이처럼 ‘긴밭재’라는 이름의 명맥을 장전長田으로 잇고 있는 것들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그림】 ‘장전로’의 기점과 종점 그리고 도로 구간
【그림】 1910년대에 제작된 청주 지도에 표기된 長田里(장전리)
【그림】 1923년 지도에 남아 있는 長田(장전)
【사진】 성화초등학교 앞에 있는 마을 지명 유래비
【그림】 농촌리, 농촌동, 성화동 각각의 시기에 모두 존재한 ‘긴밭재’ 마을
【사진】 성화마트 옆에 있는 장전마을 유래비
▶짐대로
‘짐대로’는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에 있는 증안초등학교와 복대중학교 사이에 있는 도로의 이름이다. ‘짐대로’가 ‘복대동’에 있으므로 ‘짐대’는 왠지 ‘복대’와 연관되어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짐대’는 무슨 뜻이고, 어떻게 ‘짐대’에서 ‘복대’로 변했을까?
먼저 《청주 지명 유래》에 나오는 복대동福臺洞에 대한 설명을 찾아보면 <‘복대동’은 본래 청주군 서주내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짐대마루’라고 부르던 지역이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죽천리, 화진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복대리(卜大里)라 명명하고 사주면에 편입하였다. 1963년 복대동(福臺洞)으로 바꾸어 청주시로 편입하였다. 『輿地圖書(여지도서)』, 『湖西邑誌(호서읍지)』, 『忠淸道邑誌(충청도읍지)』에는 ‘卜大(복대)’로 나오나 1961년에 간행된 『淸州誌』(청주지)부터 ‘福臺(복대)’라고 쓰기 시작하였다.>라고 나온다.
복대동은 짐대마루 → 복대(卜大) → 복대(福臺)로 바뀌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떻게 이같이 바뀌게 되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짐대마루’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짐대마루’는 ‘짐대’와 ‘마루’가 합쳐진 것이다. ‘짐대’는 ‘돛대’ 또는 ‘사찰에서 당이라는 깃발을 세우는 기구’이다. 여기에서 갑자기 배에 사용하는 ‘돛대’가 나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이 지역에 전하는 전설이 있다.
선조 때 토정 이지함과 박춘무가 아양산(부모산)에 올라 복대동 일대를 보니 행주형(行舟形)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장차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번창하게 될 것이지만 정착하는 사람은 적고 뜨내기가 많을 것을 알았다. 그것은 달리는 배에 짐대(돛)가 없기 때문이며, 행주형 지세에 물이 귀하다는 데 그 원인이 있음을 알았다. 그들은 이곳에 번창한 도시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무쇠로 만든 당간을 세우고 그곳 마을을 ‘짐대마루’라고 불렀다. 그리고 배가 함부로 떠내려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아양산 동쪽 기슭(현 지동동)에 쇠대를 박았다. 지금도 이곳을 ‘쇠대박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서 연유한다.
이처럼 행주형 지세를 고려한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짐대’는 배의 ‘돛대’로 해석해야 한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짐대’의 뜻은 첫째가 돛대이고, 둘째가 불교에서 당을 달아 세우는 대라고 나온다. 여기에서 이 지역이 원시종교나 불교 등 신앙의 중심지였다면, ‘짐대’는 신앙의 징표가 된다. 즉 ‘짐대’란 불교에서건 무속에서건 어떤 상징물을 달기 위해 세운 ‘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짐대’는 ‘솟대·오릿대·솔대·소줏대·수살이·거릿대’라고도 하며 신앙의 대상물이었다. 그래서 혹자는 이 지역이 예전에 신성한 지역인 ‘소도(蘇塗 : 삼한시대에 천신을 제사 지내던 지역의 명칭)’였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짐대’는 ‘나무나 쇠로 만든 높게 세워진 대’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래서 ‘짐대마루’는 이 ‘짐대’가 있는 곳이었다.
‘짐대마루’에서 ‘마루’는 ‘넓은 곳’, ‘높은 곳’ 등을 뜻한다. 분평동의 넓은 들을 뜻하는 ‘원마루’나, 산등성이의 가장 높은 곳을 의미하는 ‘산마루’를 연상하면 되겠다. 그렇다면 ‘짐대마루’는 ‘짐대가 있는 넓고 높은 곳’이라는 뜻이 된다.
그러면 ‘짐대마루’라는 순우리말 지명이 어떻게 ‘福臺(복대)’로 변하게 되었을까? 이는 『청주의 지명』이라는 논문집에 잘 나와 있는데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짐대’가 갑자기 ‘福臺’(복대)로 변한 것이 아니고 그 중간에 ‘卜大’(복대)가 있었다고 한다.
훈민정음 창제 이전 또는 그 이후에 우리말을 표기하는 방식은 한자의 음과 훈을 이용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卜大’(복대)가 바로 이런 방식에 의하여 ‘짐대’를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卜’(복)은 ‘점’의 의미를 가지면서 ‘짐’으로 읽고 ‘大’(대)는 ‘대’로 읽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문자 ‘卜’(점 복)은 그 형상이 사람(ㅣ)이 등에 짐(`)을 진 모양이므로 우리나라에서는 ‘卜’(점 복)을 ‘짐’이라 읽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가 ‘卜’(점 복)과 ‘짐’의 결속력이 약해지면서 ‘卜’(점 복)의 일반적 한자음인 ‘복’으로 읽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래서 ‘짐대’를 표기했던 ‘卜大’(복대)가 ‘복대’로 읽히면서 결국에는 ‘卜’(점 복) 대신에 의미상 좋은 뜻을 지닌 ‘福’(복 복)을 쓰게 되었고, ‘大’(큰 대)를, 높고 평평한 건축물을 의미하는 ‘臺’(대 대)로 바꾼 것은 ‘짐대’에 후행하는 ‘마루’에 이끌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마루’가 ‘넓고 높은 곳’을 지시하기에 그 의미에 부합하는 ‘臺’(대 대)를 선택한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1999년에 설치된 ‘ 짐대마루 유래비’ 하단에 있는 설명문에도 간단히 나온다.
현재 복대동은 ‘짐대마루’ → ‘卜大’(복대) → ‘福臺’(복대)로 이름뿐만 아니라 많은 것이 변해왔고 변해가고 있다. 토정 이지함이 예언했던 것이 맞는지 많은 아파트가 들어섰고 5만 명이 넘는 인구가 복대동에 거주하고 있다.
모든 것이 변하고 발전한다 해서 뿌리를 잃어버리는 것은 언제나 안타까운 일인데 그나마 복대동에서는 복대1동 행정복지센터와 아름다운나날APT 사이에 ‘짐대마루 지명유래비’를 세워 복대동의 유래를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복대2동 경로당 이름이 ‘짐대경로당’이라고 하는 것과 서청주우체국 뒤편에 위치한 어린이공원의 이름이 ‘짐대어린이공원’이다. 이러한 것들이 현재 도로명인 ‘짐대로’와 더불어 ‘짐대마루’ 혹은 ‘짐대’의 명맥을 잇고 있다.
【그림】 ‘짐대로’의 기점과 종점 그리고 도로 구간
【그림】 『여지도서』 ‘卜大里(복대리)’ 기록
【사진】 복대1동 행정복지센터 앞 ‘짐대마루 유래비’
【사진】 복대1동 행정복지센터 옆 공원에 있었던 솟대들
【사진】 ‘짐대마루 유래비’ 하단에 있는 설명문
【사진】 ‘짐대마루’의 흔적이 이름으로 남아 있는 ‘짐대경로당’
【사진】 서청주우체국 뒤편 ‘짐대어린이공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