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고대~고려시대 > 한국고대사 > 백제
· ISBN : 9791188990412
· 쪽수 : 332쪽
· 출판일 : 2019-08-12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1,370년 전 백제의 타임캡슐을 열다 / 미륵사지 사리장엄구 발견의 충격 / 미궁에 빠진 선화공주 / 한 해 6차례나 열린 학술대회 / 사리장엄구 발견, 그 뒤 10년 / 새로운 전설과 역사가 만들어지는 땅, 익산 / 이 책의 서술 방향과 구성
제1장 익산 지역 고적조사의 여명
익산 지역 고적조사의 여명 / 일제강점기, 한반도 고적조사의 시작 / 세키노의 첫 번째 익산 답사 / 1915년 미륵사지 석탑의 보수 / 1917년 익산 쌍릉 발굴 / 후지시마의 미륵사지 가람배치론 / 우현 고유섭의 석탑 연구 / 두계 이병도의 서동설화 연구 / 왕궁리 5층 석탑의 수리와 사리장엄구의 발견 / 제석사지와 《관세음응험기》의 발견 /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의 발족 / 익산문화권과 수로 교통 / 백제문화권 개발 사업의 시작
제2장 익산의 백제 왕궁과 사원의 조사
익산의 백제 왕궁과 사원의 조사 / 왕궁리유적의 초기 발굴 / 공방의 발견과 분위기의 반전 / 수세식 대형 화장실의 발견 / 익산에서 찾은 백제 왕궁 / 왕궁리 공방의 특징 / 왕궁에서 사원으로 / 5층 석탑과 사리장엄구의 비밀 / 금강경판의 제작 시기 / 금강경판의 제작 방법 / 연동리 석조여래좌상과 광배 / 제석사지 발굴의 시작 / 제석사지의 거대한 목탑지 / 제석사지 폐기장 유적의 발굴 / 제석사지와 왕궁리유적의 위치 관계
제3장 미륵사지 발굴과 동탑의 복원
미륵사지 발굴과 동탑의 복원 / 미륵사지의 발굴 전 상황 / 중원 목탑지와 금당지의 발견 / 마침내 드러난 가람배치 / 특이한 모양의 금당지 기단 / 백제 멸망 이후에도 이어진 법등 / 연못지와 사자사지의 발굴 / 라이벌, 황룡사지와의 비교 / 동탑을 복원하기까지 / 미륵사지 석탑은 몇 층이었을까 / 동탑의 복원 과정과 교훈 / 미륵사지유물전시관의 개관 / 미륵사지의 보존과 활용
제4장 미륵사지 서탑의 보수와 선화공주
미륵사지 서탑의 보수와 선화공주 / 서원 석탑의 해체 경위 / 서탑 해체 과정에서 밝혀진 것들 / 서탑 남서쪽 모서리에서 발견된 석인상 / 사리용기와 진신사리의 발견 / 청동합과 각종 공양품 / 사리 공양 의례와 공양품 / 사리봉영기의 내용 / 선화공주 논쟁 / 《삼국유사》 무왕 조의 설화적 접근 / 미륵사지 3원의 배치 계획 / 서탑 성토층에서 나온 수막새 / 출토 기와로 본 미륵사지의 조영 순서
제5장 쌍릉의 재조사와 백제 무왕
쌍릉의 재조사와 백제 무왕 / 문헌기록에 보이는 쌍릉 / 1917년 쌍릉의 조사 성과 / 100년 만에 나온 발굴 보고서 / 대왕묘 주인공에 대한 논란 / 대왕묘 봉토에서 확인된 판축 기법 / 부여 최대 고분보다 더 큰 대왕묘의 석실 / 대왕묘에서 발견된 인골 / 대왕묘의 묘도가 말하는 것 / 무왕의 부모는 누구인가 / 소왕묘에서 나온 유물들 / 소왕묘는 사택왕후의 무덤일까 / 소왕묘의 피장자는 누구일까 / 무왕의 익산 개발 배경
에필로그
감사의 글
부록
익산 지역의 백제 주요 유적 조사 및 정비 연표 / 익산 지역의 백제 주요 유적 분포지도
사진 제공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제2단 심주석이 산업용 로프에 단단히 묶여 육중한 크레인으로 공중에 들리는 순간, 현장에 있던 사람들에게서 일제히 탄성이 터져나왔다. 살짝 벌어진 심주석 사이로 1,000년이 넘게 갇혀 있던 다량의 보물이 그 자태를 드러낸 것이다. 심주석 한가운데 뚫린 사리공 안에는 금, 은, 유리로 만든 갖가지 보물이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보물창고를 발견한 순간이며, 백제사의 오랜 비밀을 간직해온 빗장이 열린 순간이다.
20세기 초 일본인 관학자들은 고고학이라는 신학문을 트레이닝하기 위한 연습장으로 한반도의 유적과 유물을 활용했다. 1910년 익산의 문화유산들이 처음 조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미륵사지 석탑이 시멘트 콘크리트로 덮이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다. 그 뒤 1917년 쌍릉 발굴과 1920년대 미륵사지 지표조사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익산은 이후 오랫동안 학계나 일반인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한 변경 지대였다.
익산 지역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경주나 부여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1960년대를 지나면서였다 그 서막을 올린 것이 왕궁리 5층 석탑의 해체 수리 공사였다. 이 석탑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이미 돌과 돌 사이 틈이 벌어지고 북쪽으로 기울어져 붕괴될 위험에 처해 있었다. 이에 1965년 11월부터 석탑을 전면적으로 해체하는 보수 작업을 실시하게 되었다. 동국대 교수 황수영을 책임자로 하여 진행된 이 공사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리장엄구가 대거 발견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