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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D 세트 - 전12권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D 세트 - 전12권

(모의고사 출제 작품)

최명익, 손창섭, 이광수, 이태준, 김남천, 이해조, 안국선, 최찬식, 오상원, 이무영, 김우진, 김명순, 유치진, 함세덕, 오영진, 차범석, 이근삼, 최인훈, 이현화, 이강백, 백신애, 나혜석, 김일엽, 이선희, 임순득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2022-01-20
  |  
140,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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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D 세트 - 전12권

책 정보

· 제목 :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D 세트 - 전12권 (모의고사 출제 작품)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88932039428
· 쪽수 : 5532쪽

책 소개

각종 모의고사와 논술고사에서 출제된 작품들로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문학사적 가치가 빛나는 작품들이 한데 모였다. 최근 특별히 더욱 주목받기 시작한 백신애, 김명순, 나혜석 등의 여성 작가 작품들도 담겼고 한국 현대희곡을 대표할 만한 앤솔러지 등을 포함하여 총 12편이 묶였다.

목차

비 오는 길
비 오는 날

까마귀
소년의 비애

추월색
유예
제1과 제1장
한국 현대희곡선(개정판)
혼명에서
근대여성작가선

저자소개

김남천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11년 평남 성천군에서 출생하여 1929년에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도쿄 호세이 대학에 입학하였다가 1929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가입하였고, 1930년 카프 동경지부에 발행한 ≪무산자≫에 동인으로 참여하였으며, 1931년에 제적되었다. 1931년 귀국하여 카프의 제2차 방향전환을 주도하였으며, 김기진의 문학 대중화론을 비판하고, 볼셰비키적 대중화를 주장한 바 있다. 1931년에 제1차 카프 검거사건 때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가담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출옥 후에 감옥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한 단편 「물」(1933)을 발표하고 문학적 실천에서의 계급적 주체 문제를 놓고 임화와 논쟁을 벌였다. 1934년 제2차 카프 검거사건에도 체포되어 복역하였으며, 1935년 임화·김기진 등과 함께 카프 해소파의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장편 ≪대하≫(1939), 연작인 ≪경영≫(1940)과 ≪맥≫(1941) 등을 발표했다. 8.15 광복 직후에는 조선문학건설본부를 조직하였고, 1946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을 결성하여 좌익 문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담당하던 중, 1947년 말 경 월북하여 해주 제일인쇄소의 편집국장으로서 남조선로동당의 대남공작활동을 주도하였으며, 한국 전쟁에도 조선인민군 종군 작가로 참전했으나, 1953년 박헌영을 중심으로 한 남조선로동당에서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김남천도 함께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한 사망 시기는 알 수 없다. 1953년이나 1955년에 사형당했다는 설, 1977년까지도 생존해 있었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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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엽 (지은이)    정보 더보기
스님이자 시인, 수필가. 1896년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태어났다. 진남포 삼숭보통학교, 서울 이화학당을 졸업하고 일본 동경 영화학교英和學校에서 수학했다. 본명은 김원주金元周, 일엽一葉은 아호이자 법호이며, 법명은 하엽荷葉, 도호는 백련도엽白蓮道葉이다. 1920년 여성들이 주체가 된 잡지 <신여자>를 창간하고, 평론 <우리 신여자의 요구와 주장> <여자의 자각> 등과 소설 <계시啓示> <나는 가오> <자각自覺> 등을 비롯해 시, 수필 등을 다수 발표했다. 제1세대 여성 문인으로서, 김명순, 나혜석 등과 함께 여성의 의식 계몽을 위한 글쓰기와 강연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불교에 귀의하고 만공선사를 만나 1933년 출가했으며, 이후 비구니 도량인 수덕사 견성암에서 참선 수행에 전념했다. 만년에 대중 포교를 위한 활발한 저술 활동을 펼쳐, 《어느 수도인의 회상》(1960) 《청춘을 불사르고》(1962) 《행복과 불행의 갈피에서》(1964) 등을 집필했다. 1971년 1월 28일(음력 1월 2일) 수덕사에서 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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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석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6년 4월,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1913년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1913년 도쿄 사립 여자미술학교 서양화부에 입학해 1918년에 졸업한 후 잠시 미술교사로 활동했으며, 1919년 3월 만세 운동을 한 혐의로 5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20년 외교관 김우영과 결혼했으며, 25세 때인 1921년 임신 9개월의 몸으로 첫 유화 개인전을 가졌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가 연 첫 여성 개인 전람회였다. 같은 해에 제1회 서화협회전람회에 홍일점으로 유화를 출품했으며, 1922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부에 해마다 작품을 출품해 수상과 특선을 거듭했다. 그는 작가이자 여성의 주체적 권리와 인권을 펼친 운동가이기도 했다. 1914년 〈이상적 부인〉을, 1918년에는 조혼 문제를 다룬 단편소설 〈경희〉를 썼으며, 1923년 〈모(母) 된 감상기〉와 1934년에 〈이혼 고백서〉를 발표하며 파문을 불러왔다. 특히 〈이혼 고백서〉에서 그는 이혼에 이르는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한편, 경직된 사회와 이로 인한 여성 문제를 비판했다. 이후 다양한 글을 쓰고 발표했으나 이혼녀라는 이유로 몸과 마음이 병들었다. 이후 수덕사 등을 떠돌다가 1944년 8월 한 양로원에 맡겨진 뒤 1949년 3월 14일에 관보에 무연고자 시신 공고로 그의 죽음이 알려졌다. 1948년 11월에 시립 자제원 병동에 무연고자로 입원해 있던 중 12월 10일 눈을 감은 것이다. 시대의 벽을 허물지 못한 채 무연고 시신으로 처리되었고, 그의 무덤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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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선 (지은이)    정보 더보기
경기도 안성 출생. 호는 천강(天江). 개화기 시대 신소설 작가. 구한말 개화를 부르짓은 대표적 정치가 안형수의 양자로, 1895년경 일본에 건너가 제1회 관비 유학생으로 도쿄전문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함. 독립협회 활동으로 투옥되어 참형을 선고받았다가 진도에 유배되었다. 1908년 탁지부 서기관에 임명되었고 1911년 청도군수를 지내기도 함. 저서로는 최초의 근대적 단편소설집 《공진회》와 우화소설 〈금수회의록〉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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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백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47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났다.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다섯>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1970년대 억압적인 정치·사회 상황에서 권력의 폭압성을 알레고리 장치를 통해 상징적으로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 1982년 동아연극상, 1983년 한국희곡문학상, 1985년 베네수엘라 제3세계 희곡경연대회 특별상, 1986년 대한민국문학상, 1996년 대산문학상, 1998년 서울연극제 희곡상, 2000년 백상예술대상 희곡상 등을 수상했다. 서울예술대학교 극작과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는 ≪이강백 희곡전집≫(전 9권, 평민사)이 있으며, 대표작으로는 <파수꾼>, <영월행 일기>, <느낌, 극락 같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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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지은이)    정보 더보기
한국 현대소설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매우 중요한 작가이면서, 일제강점기의 소설가이자 언론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조선왕조의 국운이 기울어가던 구한말에 평안북도 정주에서 출생하여, 일찍 부모를 여의고도 두 차례에 걸친 일본 유학을 통하여 근대사상과 문학에 눈뜨고 이를 한국적 사상 및 문학 전통에 접맥시켜 새로운 문학의 시대를 열어나갔으며, 한국전쟁 와중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붓을 놓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놀라운 창작적 삶을 이어간 작가였다. 그는 『무정』, 『재생』, 『흙』, 『유정』, 『사랑』 등으로 연결되는 본격 장편소설들을 통하여 한국 현대소설의 ‘제1형식’을 창출하였고, 『매일신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의 한글 신문과 『조선문단』, 『동광』 등의 한글 잡지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문필 활동을 펼침으로써 현대 ‘한국어 문학’의 전통을 수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나아가 그는 『마의태자』, 『이차돈의 사』, 『단종애사』, 『이순신』, 『세조대왕』, 『원효대사』, 『사랑의 동명왕』 등 삼국시대로부터 조선왕조에 이르는 시대적 사건과 인물을 소설화함으로써 민족적 위기의 일제강점기에 역사의 기억을 소설의 장에 옮겨 민족적 ‘자아’를 보존하고자 했다. 요컨대, 그는 한국 현대소설의 성립을 증명한 『무정』의 작가요, 도산 안창호의 유정 세계의 꿈을 이어받은 사상가요, ‘2·8 유학생 독립선언’을 주도하고 상해로 망명, 임시정부에 가담한 민족운동가요, 민족적 ‘저항’과 ‘대일협력’의 간극 사이에서 파란만장하고도 처절한 생애를 살아간, 험난한 시대의 산증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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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영 (지은이)    정보 더보기
‘흙의 작가’라 불리는 이무영(李無影, 1908~1960)은 한국 현대 소설사에서 농민, 농촌의 테마를 가장 먼저 창작 현장으로 이끌어낸 문제적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소년기를 충북에서 보낸 그는 1920년 서울에 오면서부터 문학에 뜻을 두었다. 문학에의 큰 뜻을 품고 시작한 일본 유학에서 그는 가토오 다케오에게 문학 수업을 받았다. 귀국한 이후 신문사 학예부 기자로 근무하면서 소설가, 극작가로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였다. 본격적으로 농민 소설을 쓰면서는 농부들의 세계를 유머러스하고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농촌 소설의 선구자’라고 불렸다. 한편 1943년 친일 소설 「토룡」과 「향가」 발표, <매일신보>에 친일 논설을 실은 행적 등으로 2002년 민족단체가 발표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에 포함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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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 (지은이)    정보 더보기
호는 상허尙虛.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성장했다. 휘문고보 4학년 때 동맹 휴교 주모자로 퇴학당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1925년 도쿄에서 단편 <오몽녀>를 <조선문단>에 투고해 입선했다. 1927년 도쿄 조치대 예과를 중퇴한 후 귀국했다. 1929년 개벽사에 입사, 조선중앙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33년 구인회에 참가했으며, 이후 1930년대 말까지 주로 남녀 간의 사랑과 심리를 다룬 작품을 발표했다. 1940년경 일제의 압력으로 친일 활동에 동원되었고, 1941년 모던 일본사가 주관하는 제2회 조선예술상을 수상했다. 1943년 절필 후 낙향했다가 해방을 맞아 서울로 올라왔다. 해방 공간에서 좌익 작가 단체에 가입해 주도적으로 활동, 1946년 <해방 전후>로 제1회 해방문학상을 수상하고 그해 여름에 월북했다. 6·25 전쟁 중엔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와 종군 활동을 했다. 1956년 구인회 활동과 사상성을 이유로 숙청당한 이후 정확한 행적은 알려진 바 없으며 사망 연도도 불확실하다. 1934년 첫 단편집 《달밤》 발간을 시작으로 한국 전쟁 이전까지 《까마귀》《이태준 단편선집》《이태준 단편집》《해방 전후》 등 단편집 7권과 《구원의 여상》《화관》《청춘 무성》《사상의 월야》 등 장편 13권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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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석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24. 11. 15. 전라남도 목포 출생 2006. 6. 6. 사망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 학사 1955년 신춘문예 희곡 '밀주' 가작 입선으로 데뷔 _수상 1998 서울시 문화상 1993 이해랑연극상 1991 대한민국문학상 1982 대한민국예술원상 1981 대한민국 연극제 희곡상 1970 대한민국문화예술상 한국을 대표하는 사실주의 희곡작가이자 방송드라마 작가로, 극단 산하 대표,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사단법인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서울극작가그룹 회장, 청주대학교 교수, 서울예술전문대학 극작과 교수 등을 역임했다. 주요 희곡 작품으로 <귀향>, <산불>, <갈매기 떼>, <청기와 집>, <학이여, 사랑일레라>, <옥단어> 등이 있고, 주요 방송드라마로 <어둠 속에 피는 꽃>(1959), <물레방아>(1970), <전원일기>(1980), <드라마게임>(1984), <아리랑>(1994) 등이 있다. 2020년 그의 희곡ㆍ방송극ㆍ무용극ㆍ창극ㆍ뮤지컬ㆍ자서전ㆍ수필ㆍ논문ㆍ평론 등을 망라한 『차범석 전집』(전12권)이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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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익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14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도쿄제국대학에서 독문학을 전공했다. 일본에서 일본어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그는 1936년 「짐」을 발표하고 1939년에는 「빛 속에」를 발표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 대표작으로 「빛 속에」 『낙조』 「천마」 『향수』 『집』 등이 있다. 1945년 일본의 지배에서 조국이 해방되고 나자 그는 북한으로 가서 문단 활동을 활발히 벌인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에 그는 조선인민군의 종군기자가 되었지만 같은 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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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36년 함북 회령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법대에서 수학했다(2017년 명예졸업). 1959년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와 「라울전(傳)」이 『자유문학』에 추천되어 등단했다. 1977년부터 2001년 5월까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작품 집필과 후진 양성에 힘써왔다. 『광장/구운몽』 『회색인』 『서유기』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태풍』 『크리스마스 캐럴/가면고』 『하늘의 다리/두만강』 『우상의 집』 『총독의 소리』 『화두』 등의 소설과 희곡집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산문집 『유토피아의 꿈』 『문학과 이데올로기』 『길에 관한 명상』 등을 출간했다. 동인문학상(1966),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희곡상(1977), 중앙문화대상 예술 부문 장려상(1978), 서울극평가그룹상(1979), 이산문학상(1994), 박경리문학상(2011) 등을 수상했다. 『광장』이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중국어 등으로, 『회색인』이 영어로, 『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이』가 영어와 러시아어 등으로 번역, 간행되었다. 2018년 7월 별세했다. 사후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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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조 (지은이)    정보 더보기
신소설 작가. 1869년 2월 27일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신평리 121번지에서 아버지 이철용(李哲鎔)과 어머니 청풍 김씨의 장남으로 출생. 서울 익선동, 와룡동, 도렴동 등지에서 살았다. 어릴 적부터 한학을 수학하여 19세 때 초시에 합격했으며, 25,6세 무렵에는 대동사문회를 주관했다. 일본어를 독학하고 1908년 대한 교육부 사무장, 실업부 평의원, 기호흥학회 평의원, 〈기호흥학회월보〉 편집인으로 활약. 양기탁, 주시경 등과 함께 광무사를 조직하여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활쏘기와 거문고타기가 취미였으며, 특히 국악에 조예가 깊었다. 1906년 11월부터 잡지 〈소년한반도〉에 소설 《잠상태》를 연재하면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한 그는 주로 양반가정 여인들의 구속적인 생활을 해방시키려는 의도로 실화에 근거하여 소설을 썼다. 1907년 대한협회와 1908년 기호흥학회 등의 사회단체에 가담하여 신학문의 소개와 민중계몽운동에 나서기도 하였고, 한때 〈제국신문〉 〈황성신문〉 〈매일신보〉 언론기관에 관계하면서 4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고 59세가 되던 1927년 5월 11일 포천에서 병사했다. 작품으로는, 《자유종》 《빈상설》 《구마검》 《화의 혈》 《춘외춘》 《월하가인》 《고목화》 《봉선화》 등의 창작 신소설과 《옥중화》 《연의 각》 《강상련》 《토의 간》 등의 개작 신소설이 있고 《철세계》 《화성돈전》 《앵속화 제조법》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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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찬식 (지은이)    정보 더보기
소설가. 호는 해동초인(海東樵人), 동초(東樵). 1881년 음력 8월 16일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언론인인 영년(永年)이며, 어머니는 청송 심씨이다. 어릴 때 한학을 공부하여 사서삼경을 배우고, 1897년 아버지가 광주에 설립한 시흥학교에 입학하여 신학문을 공부한 뒤 서울로 올라와 관립한성중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07년에 중국 상해에서 발행한 소설전집 《설부총서》를 번역한 뒤 현대소설의 토대가 된 신소설 창작에 몰두하여 〈자선부인회잡지〉 편집인과 〈신문계〉 〈반도시론〉 등의 기자를 역임하고, 《추월색》 《안의 성》 《금강문》 《도화원》 《능라도》 《춘몽》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발표한 작품들은 주로 민족의식이나 자주독립 등의 정치적인 면보다 기구한 남녀의 사랑을 바탕으로 새로운 애정문제 · 신교육사상 · 민중의 반항 · 도덕관념 등을 내세워 시대의식을 반영하여 당대 신문학 개척에 공헌한 이인직, 이해조 등과 함께 선구자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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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섭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22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 1935년 만주를 거쳐 1936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학으로 니혼대학에 들어갔으나 중퇴 후 초등학교 교원, 잡지 편집원 등을 전전했다. 1946년 평양으로 돌아왔다가 1948년 월남했으며, 1949년 연합신문에 「얄궂은 비」를 연재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1952~1953년에 『문예』지에 「공휴일」과 「비오는 날」 등의 단편소설이 추천되어 활발한 집필활동을 펼쳤다. 1955년 「혈서」로 현대문학상을 받고, 1959년 「잉여인간」으로 동인문학상을 받았다. 1960년대 초반부터 작품활동이 뜸해지다가 1973년 홀연히 일본으로 떠났다. 1976~1977년 한국일보를 통해 장편소설 『유맹』과 『봉술랑』을 연재하였으나, 이후 오랫동안 소식이 두절되었다. 그후 아내와 함게 도쿄에서 거주해 오다가 2010년 6월 지병으로 타계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단편소설 「사연기(死緣記)」「치몽(稚夢)」「신의 희작(戱作)」 「육체추(肉體醜)」 「흑야(黑夜)」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 『낙서족(落書族)』 『부부』 『인간교실』 『길』 『삼부녀』 『유맹(流氓)』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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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진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5년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났다. 일본에서 유학하던 중 롤랑의 <민중예술론>을 읽고 연극에 뜻을 둔 뒤 귀국해 극예술연구회(劇藝術硏究會)를 조직해 신극 운동을 벌였다. 일제 탄압으로 극예술연구회가 해산되자 1941년에는 극단 현대극장(現代劇場)을 조직, <흑룡강(黑龍江)>(1941), <북진대(北進隊)>(1942), <대추나무>(1942) 같은 어용극을 직접 쓰기도 했다. 광복 직후에는 활동이 뜸하다 1947년 봄부터 연극계 전면에 나서 민족극을 주도했다. 이해랑(李海浪) 등을 내세워 극단 극예술협회(劇藝術協會)를 조직했고, 한국무대예술원을 창설해 초대 원장(1947)을 지냈다. 1950년에 국립극장이 창설되자 초대 극장장으로 취임했고, 자작극 <원술랑>으로 개관 기념 공연을 가졌다. 6·25가 발발한 뒤에는 은거하면서 희곡 창작에만 전념했다. 주요 희곡은 <토막(土幕)>(1932), <버드나무 선 동네 풍경>(1933), <소>(1934), <마의태자>(1937), <자명고>(1947), <한강(漢江)은 흐른다>(1958)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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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원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30년 평북 선천에서 출생했으며, 해방 후 월남해 용산중학교에 재학했다. 졸업 후 서울대 불어불문학과에 진학한다. 하지만 입학 직후 터진 한국전쟁으로 인해, 학도병으로 참전한다. 부산에 서울대학교 가교사가 생긴 이후 복교하고, 문학 동인 ‘구도’에 참여한다. 1952년 극협에서 주관한 장막극 공모에 희곡 <녹쓰는 파편>이 당선된다. 그 뒤 유치진의 지도를 받으면서 잠시 희곡 창작을 시도하지만, 자신의 희곡이 실제로 상연되는 것을 보고 실망을 느낀 나머지 소설로 전향한다.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유예>가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등단해 이후 1966년까지 활발한 작품 활동을 벌인다. 대학 졸업 후 한동안 공보처에서 일하다가 언론인으로 변신한다. 4·19를 다룬 미완 장편 ≪무명기≫에는 기자로서 그가 겪은 체험들이 반영되어 있다. 1966년 이후에는 작가로서의 활동보다는 언론인으로서의 활동에 더욱 치중한다. 1974년 단편 <모멸>을 발표하면서 작가로서의 재기를 의욕적으로 노리기도 했으나, 지속적인 창작 활동을 보여 주지는 못한다. 1981년 단편 <산>을 마지막으로 발표한 뒤, 1985년 지병인 간경화가 악화해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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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애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8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다. 한문을 수학한 후 경북사범학교 강습과를 졸업하고, 2년 동안 보통학교 교원을 지내다 잡지사 기자로 전직했다. 이 무렵 조선여성동우회·경성여자청년동맹 등에 가담하여 여성운동을 벌였다. 1929년 박계화란 필명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나의 어머니」가 당선되어 데뷔했으며, 신춘문예로 등단한 첫 여성 작가가 되었다. 식민지 조국을 벗어나 만주와 시베리아 등지를 방랑하는 꺼래이(고려: 한국인)들의 고초를 그린 「꺼래이」(1933), 극심한 가난 속에 가정을 꾸려나가는 매촌댁의 애환을 그린 「적빈赤貧)」(1934), 남편의 외도를 목격한 뒤 미쳐버린 여인의 한탄을 담은 「광인수기」(1938) 등이 대표작이다. 그 밖의 주요 작품으로는 「채색교彩色橋」 「낙오落伍」 「정현수鄭賢洙」 「정조원貞操怨」 「호도糊途」 「소독부小毒婦」 「혼명混冥에서」 「아름다운 노을」 등이 있다. 5년여의 기간 동안 수십 편의 소설과 수필 및 기행문 등을 남겼으나 1939년 6월 23일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2007년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백신애문학상’이 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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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11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성장기의 대부분을 원산에서 보내다가 1929년 서울로 상경하여 잡지 『신여성』의 기자로 활동했다. 1934년 『중앙』에 단편 「가등」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소설 「계산서」 「매소부」 「탕자」 「처의 설계」 「창」 등을 비롯해 수필, 평론, 콩트 등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로도 활동했다. 1946년 7월경 남편 박영호와 함께 월북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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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7년 전라남도 장성에서 태어났다. 1920년 도쿄 유학생, 고학생 모임인 동우회에 참여하였고, 귀국 후 1925년 목포에서 문학 동호회 ‘5월회’를 조직하였다. 희곡 「정오」 「이영녀」 「두더기 시인의 환멸」 「난파」 「산돼지」 등을 집필하였다. 1926년 윤심덕과 현해탄에 투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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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덕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15년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났으며 인천에서 자라 서울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했다. 1936년 ≪조선문학≫에 단막극 <산허구리>를 발표한 이후 1939년 단막극 <동승>으로 동아일보사가 주최하는 제2회 연극경연대회에 참가했고, 1940년에 <해연>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됨으로써 정식 데뷔했다. 일제 말기에는 친일 연극을 다수 창작했다. 해방 직후에는 조선연극동맹에서 활동하면서 <기미년 삼 월 삼 일>, <고목>, <태백산맥> 등을 발표해 이 시기 대표적인 극작가로 확고히 자리 잡는다. 월북했다가 1950년 전쟁 중에 35세로 사망하기까지 10여 년 동안 번안과 각색을 포함해 장·단막 모두 24편을 발표했다. 대표작으로는 <동승>, <무의도 기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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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삼 (지은이)    정보 더보기
평양 출생. 6·25 전쟁에 통역관으로 참전한 후 육사 교관을 거쳐 동국대학교 영문과 교수가 되었다. 다음 해에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연극학과 대학원에서 연극이론과 희곡창작을 공부했다. 이 시기에 영어로 쓴 <끝없는 실마리>(The Eternal Thread>와 <다리 밑에서>(Below the Bridge>가 미국에서 공연되었다. 귀국 이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서 재직하였고 1966년, 뉴욕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1969년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로 옮겨 정년퇴직할 때까지 재직하였다. 1960년, 《사상계》에 단막극 <원고지>를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1966년 <국물있사옵니다>, 1974년 <30일간의 야유회>, 1991년, <막차 탄 동기동창>, 1998년 <어떤 노배우의 마지막 연기>, 2001년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기에> 등 60여 편의 희곡의 발표와 공연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의 작품은 연극성과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담고 있으며, 특히 현대적 연극기법과 현대적 감수성을 담은 새로운 희극을 발표함으로써 한국 현대 연극의 장을 연 극작가로 평가받는다. 또한 ��서양연극사��, ��연극개론�� 등 연극 이론서를 집필하고 15편 이상의 영미 희곡의 번역을 통해 새로운 연극을 소개하는 데 앞장섰다. 국민훈장 모란장, 옥관문화훈장을 수상했고, 대한민국 예술원상과 대산문학상(희곡 부문)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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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화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43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났다. 서울고를 거쳐 연세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7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요한을 찾습니다>가 당선되면서 극작 활동을 시작했다. 친숙한 일상이 은폐하고 있는 낯설고 공포스러운 어떤 국면과 폭력 문제를 주로 다뤄 왔다. 1978년 제1회 서울극평가그룹상, 1979년 현대문학상을 수상했고, 1984년에는 대한민국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는 <0.917>, <카덴자>, <불가불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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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진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16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맹진사댁 경사」 「살아 있는 이중생 각하」 「해녀 뭍에 오르다」 「한네의 승천」 등을 발표했고, 시나리오 「시집가는 날」로 아시아영화제 최우수희극상을 수상했다. 1952년 월간 『문학예술』 주간을 역임했으며, 1974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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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득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15년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났다. 1937년 『조선문학』에 단편 「일요일」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여성해방문학을 주장하는 평론을 꾸준히 발표했으며, 해방 후 함경남도 원산에서 살다가 1947년 무렵 평양으로 이사했다. 소설 「일요일」 「이름 짓기」 「들국화」 「딸과 어머니와」 등을 비롯해 수필, 평론, 콩트 등 여러 작품을 남겼으나 1959년 『인민조선』에 발표한 「금 목걸이」를 끝으로 이후에 발표한 글들은 아직 찾을 수 없다. 북한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한 남편과 함께 축출되어 기계 운전기사로 일하면서도 단칸방에서 글을 썼고, 남편이 죽은 뒤로는 사회보장으로 살았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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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순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96년 1월 20일 평안남도 평양에서 태어났다. 1917년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가 『청춘』의 현상 공모에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 한국 최초의 여성 근대 소설가로 불린다. 등단 이후 김명순, 김탄실, 망양초, 망양생, 별그림 같은 필명으로 시, 소설, 산문, 평론, 희곡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발표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을 국내에 최초로 소개하고 보들레르의 시를 번역하는 등 외국어에 능통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피아노를 잘 치고 독일어로 곡을 만들 만큼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여성 작가 최초로 창작집 『생명의 과실』(1925) 『애인의 선물』(1929 추정)을 펴냈으며, 신문기자, 영화배우로도 활동했다. 조선과 일본을 오가며 공부와 집필에 힘썼으나 모욕적인 소문의 희생자가 되어 결국 글쓰기를 중단했다. 생의 마지막에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1951년 도쿄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랑은 무한대이외다』는 1918~1936년 사이 발표한 그의 에세이를 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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