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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문 에세이
· ISBN : 9791189709112
· 쪽수 : 244쪽
· 출판일 : 2018-12-15
책 소개
목차
1. 고통효용론의 시체가 아직도 꿈틀댄다 7
2. 형이상학을 끌어들이지 않고 질병을 사유하다 11
3. 철학자도 세상 모든 사람들처럼 건강 문제로 고민한다 17
4. 사회 폐기물로서의 병자 25
5. 나의 천일야화 30
6.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38
7. ‘회복탄력성’이 왜 필요한가? 43
8. 환자들의 왕국을 방문하다 48
9. 공포를 퍼뜨리는 단어 63
10. 애도의 5단계, ‘뉴에이지적’ 환상 71
11. 두 번째 의견의 철학 84
12.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 87
13. 환자들은 건강한 사람들보다 지적, 도덕적으로 우월한가? 92
14. 비극이자 희극인 질병 103
15. 만성 질환이 의료 이상(理想)에 끼치는 영향 118
16. 통증의 역사 137
17. 행복은 CEA 수치에 있다 149
18. 영구 화학 요법 173
19.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닌 고통 182
20. 병은 디테일에 숨어 있다 187
21. 만성은 시간 잡아먹기다 194
22. 질병 정책 198
23. “우리의 육체에게 동정을 구하는 건 낙지 앞에서 설교하기다.” 202
감사의 글 207
주 210
참고 문헌 232
책속에서
진료를 받는 동안 ‘장기’ 환자, 다시 말해 현 조건에서 ‘완치’ 가능성은 없을 듯한 질환을 안고 사는 사람으로서, 처음으로 내가 너무나 무력하고 취약하다는 느낌이 뼈저리게 와 닿았다.… 내가 나랏돈과 의료진의 노고가 깃든 치료를 받을 자격 없는 ‘쓰레기’로 보이고 싶지 않다면 ‘내보여야만’ 하는 나의 이미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몸이 쇠약해지는 와중에도 꿋꿋이 버티는 사람, 의사들의 권고를 진심으로 따르길 원하는 사람, 지적으로 항상 믿을 만하고 여전히 사회에 ‘쓸모’가 있을 만한 사람이라는 이미지.… 나는 다음번 ‘검사’ 때에는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은 구두를 신어야겠다, 코나 귀에 삐죽 튀어나온 털을 정리하고 와야겠다, 알 아라비아타 토마토소스가 묻은 바지는 입지 말아야겠다, 따위의 생각을 하곤 했다. _ 「4. 사회 폐기물로서의 병자」
나는 중병 환자가 의료진과 주위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연출에 쏟아붓는 노력에서 『천일야화』의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른바 ‘고질병’에 걸린 사람들은 페르시아 왕 샤리아르의 사악한 계획을 저지하려는 셰에라자드처럼 매일매일 무모한 술책을 새로 지어내야만 하는 것 같다고.… 셰에라자드는 매일 저녁 재미난 이야기로 왕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그녀는 절대로 이야기의 결말을 밝히지 않는다. 그래야만 왕이 적어도 이야기의 끝을 들을 때까지는 그녀를 살려 두고 싶어질 테니까.… 셰에라자드처럼 의료진들과 척지는 일 없이 유예를 끌고 나가기, 내가 내 병의 성격을 제대로 아는 거라면 이것이 앞으로 내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이다. _ 「5. 나의 천일야화」
회복탄력성은 ‘긍정’심리학을 떠받치는 기둥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심리학은 볼테르가 조롱했던 라이프니츠의 사상과도 비슷하게, 아둔하리만치 낙관적인 면이 있다. 지난한 실패와 고초로 점철된 삶을 위태위태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눈에는 그런 면이 같잖아 보일 법하다.
긍정심리학은 사유의 패배주의자들에게 죄의식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 절망을 극복할 힘이나 의욕이 없는 사람들은 모두 유죄다.
우리의 실존적 질문들에 고통효용론이 주는 대답들이 그렇듯, ‘긍정’심리학은 피폐한 삶을 사는 환자들에게 여전히 자행되는 사회적 가혹 행위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더없이 고약한 질병들을 긍정적으로 제시하는 경향이 있는 이 심리학을 참기가 힘들다. 질병이 ‘우리를 성장시키고’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며 우리 자신과 인간 조건에 대한 통찰력을 기르는 ‘도전 과제’라느니, 질병이 우리의 진가(우리의 ‘용기,’ 우리의 ‘회복탄력성’ 등)를 드러낼 수도 있는 중요한 시험이라느니 하는 개수작 말이다.
_ 「‘회복탄력성’이 왜 필요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