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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액션/스릴러소설 > 외국 액션/스릴러소설
· ISBN : 9791189995201
· 쪽수 : 472쪽
책 소개
목차
PART 1
PART 2
PART 3
EPILOGUE
리뷰
책속에서
열차가 굉음을 내며 들어온다.
그녀가 플랫폼 가장자리로 다가간다. 나는 속으로 소리를 지르며 경고한다. ‘너무 가까워요!’
그 순간, 나는 그녀가 지하철을 타려고 여기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손을 뻗으며 그녀에게 뭐라고 외친다. “안 돼요!” 혹은 “그러지 말아요!” ……하지만 너무 늦었다.
우리의 눈이 마주친다. 터널 입구에 열차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녀가 뛰어내린다.
찰나의 순간, 그녀는 무용수처럼 두 팔을 머리 위로 쳐든 채 얼어붙어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열차가 휙 지나가면서 바퀴가 선로를 심하게 긁는다. 내 평생 이렇게 높고 날카로운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속이 울렁거려 몸을 숙이고 토한다. 이 경악스러운 사건에 온몸이 주체할 수 없이 떨리는 동안 머릿속으론 어떻게든 상황을 이해해보려 미친 듯이 애쓰고 있다.
누군가가 계속 소리를 질러대고 있다. “911에 신고해요!”
열차가 멈춘다. 나는 억지로 눈을 들어 여자가 있던 곳을 본다. 여자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분명히 이 세상에 존재했던 여자가 다음 순간 지워져버렸다. 나는 벽 옆의 벤치로 가서 털썩 주저앉는다.
그 후 무표정한 얼굴의 형사에게 진술하고, 경찰의 안내를 받아 범죄 현장 테이프를 지난 다음 거리로 올라가고, 집까지 일곱 블록을 걸어가는 내내, 그 여자가 뛰어내리기 직전 나와 마주쳤던 그 눈이 계속 떠오른다. 내가 그 속에서 본 건 절망도 두려움도 결의도 아니었다.
그녀의 두 눈은 텅 비어 있었다.
어맨다의 자살로 두 자매는 어떻게든 답을 찾아야 할 의문들이 생겼다. 어맨다는 죽기 전 며칠 동안 어디에 있었을까? 누구와 얘기했을까? 유서 같은 어떤 증거라도 남겼을까? […]
“잘 넘길 수 있겠지?” 제인이 커샌드라에게 묻는다. 두 자매는 진이 다 빠져 있다. 눈 밑에는 연한 자줏빛 그늘이 져 있고, 커샌드라는 살이 빠져서 광대뼈가 전보다 훨씬 더 튀어나왔다.
“우린 항상 그렇잖아.” 커샌드라가 답한다.
“와인이나 마시자.” 제인이 일어나면서 커샌드라의 어깨를 한 번 꼭 쥐어준다.
커샌드라는 고맙다는 인사로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북 화면에 띄워져 있는 추도식 안내문 견본에 어맨다의 사진을 넣는다. 안내문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우고 있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점검해본다.
‘이 정도면 될까?’ 그녀는 이런 생각을 하며 인쇄 키를 누른다.
죽기 전 며칠 사이에 어맨다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누군가에게, 혹은 아무에게나 했다면, 그 사람은 추도식에 꼭 참석해야겠다고 느낄까?
두 자매는 어맨다가 미소 짓고 있는 사진 밑에 넣을 문구를 의논하다가 단순한 메시지를 미끼로 던지기로 했다. ‘꼭 와주세요. 누구나 환영합니다.’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는 인터넷 검색창에 ‘뉴욕시 33번가 지하철역 자살’을 입력해본다. 검색 결과로 나타나는 짧은 기사는 내 의문을 하나도 풀어주지 못한다. 그녀가 올해 뉴욕에서 지하철 앞으로 뛰어든 스물일곱 번째 사람이라는 사실만 새롭게 알았을 뿐.
이 도시의 시끌벅적한 부산함 밑에 흐르는 물처럼 숨어서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이 최후의, 절박한 선을 넘고 마는 이유는 뭘까? 그녀는 갑작스러운 비극 때문에 벼랑 끝으로 내몰렸을까? 아니면 그녀도 나처럼 느릿느릿 도는 소용돌이 속에 갇힌 기분이었을까?
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며 속으로 중얼거린다. ‘이제 그만.’ 우리 둘을 비교하는 짓은 그만두자. 내 미래는 그녀와 같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