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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0178907
· 쪽수 : 236쪽
· 출판일 : 2022-03-21
책 소개
목차
책을 펴내며
1부 시를 심는 사람들
양승분이 흙에 시를 심고 있다
그까짓 것, 것들
언니들과의 저녁 식사
감나무 몇 그루 서 있는 집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만나 보니 우리의 사부들은
마중물과 쉼표
동거
살아서 하늘을 만났으니
2부 환하고 맛있고 즐거울 겁니다
텃밭 공화국에서
청소해 주고 밥해 주고 머리 감겨 주고
폐지 값과 시 값
만인에게 기본소득을
귀촌을 묻는 당신께
생애 가장 시원한 여름
봇짐
3부 방주에 실린 해피랜드
한 사람이 왔다 간 자리
모든 언더그라운드를 위해 건배
오늘 하루
문학이라는 말조차 잊고
한없이 기쁘고 가벼웁게
난 엉덩이만이 아니야
방주에 실린 해피랜드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천안에서 버스로 40여 분 거리에 있는 여기 사구실 마을 사는 동안, 이웃의 정이 이런 거구나 싶고요, 사는 게 이렇구나 실감하기도 했습니다. 이웃들이 돌아가며 나를 비춰 주는 입체적인 거울 같다고나 할까요. 도축장에서 장화 신고 곱창 밟으며 추었다는 ‘곱창 블루스’를 여기서 배웠고요, 겨울 견디고 파릇파릇 돋아난 시금치에 부추를 올려 자작자작 풀죽 넣으면 담백하고 구수한 물김치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
사람이 사람을 피해야 하는 팬데믹이라는 기이한 상황에서야 근대문명을 넘어 생태문명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절박한 외침들을 듣습니다.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기후위기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에 들어서고야, 우리 삶과 환경과 정치·경제와 의식을 바꾸는 생태문명의 길은 대지에 기반한 민중적 삶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대지의 상상력은 흙에 젖줄을 대고 살아가는 몸들에 새겨진 언어라는 걸 말이지요.
― ‘책을 펴내며’ 중에서
문맹의 언어는 흙과 닮았습니다. 시 안 쓰는 시인들의 말을 받아 적는 동안 저는 흙이 되고 문맹이 됩니다. 말한 게 다인 말이고, 나만 얻어먹고 되돌려주지 못한 듯싶은 미안한 말입니다. 저잣거리의 언어를 사러 다니는 장면이 나오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가 지나갑니다. 일부러 단어를 찾아다닐 건강을 타고나지 못한 저는 사는 곳에서 그냥 시어를 주고받습니다. 평생 농사짓고 사는 분들과 이웃해 살며 김치니 동치미니 나물이니 사철 내내 얻어먹고 살면서, 저는 땅에 묻혀 있는 시, 미래의 씨앗들에게 질문합니다.
제게 시는 흙에 내맡긴 초목의 수액과 닮았습니다. 소멸이라는 브레이크와 삶이라는 액셀 사이, 하늘과 땅을 잇는 돛단배가 출렁거립니다. 희디흰 한 필의 옥양목에서 한없이 풀려 나오는 노래를 달고 노래가 스미지 못하는 사막을 건너갑니다. 더 이상 원초의 상태로 남아 있지 않은 바다, 천공에 떠 있는 지구라는 배는 이미 난파되는 중입니다. 몇 조각 남은 널빤지 위에 올라서서 저는 가까스로 노래를 부릅니다. 오늘 노래는 액체로 흐르고 아직 부를 노래가 남아, 모음뿐인 노래가 흘러 나옵니다. 여러 해 죽을 고비를 넘고 농담처럼 살아남은 저는 신의 음식, 신음을 달게 들이킵니다. 농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