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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91190187558
· 쪽수 : 468쪽
· 출판일 : 2025-11-21
책 소개
목차
어란
새벽의 끝자락
겨울 너머 벚꽃
실을 건네다
파란 낙엽
구슬 저편
빨강은 앞으로도
책속에서
집에 오니 토키가 거실에서 미친 듯이 날뛰고 있다.
저렇게 날뛰는 모습을 보는 것도 근 10년 만이다. 한동안 뒷방 늙은이처럼 쥐 죽은 듯 지낸다 싶었더니, 그래도 꼴에서른 살 남자라고 체력과 기력은 아직 죽지 않은 모양이다. 난장판이 따로 없다고 감탄이 나올 만큼 집 안을 온통 헤집어 놓았다.
토키는 목욕수건을 휘두르며 뭐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소리를 입 밖으로 내는 일이 잘 없어서인지 목소리는 가성이었고 그마저도 쉰 소리가 났다. 간혹가다 듣는 '돼지 멱따는 소리'란 표현은 이런 소리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시끄럽고, 하여간 귀에 거슬렸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목에 가래가 차서 숨쉬기가 힘든지 토키가 깡마른 몸을 굽혀 기침을 심하게 해댔다. 입에서 흘러내린 침을 체육복 소매로 닦고는 다시 소리를 질렀다.
토키의 손이 순간 멈췄다.
"……소중했으니까."
"댄보 말하는 거지? 울고불고할 만큼 소중한 만화가 뭔데?"
"어란."
생소한 제목이었다. 그런 작품이 있었던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기억을 더듬는데 토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나코도 읽었을걸. 죽은 사람의 소원이 작고 빨간 구슬이 된다는 내용 있었잖아. 수염이 덥수룩한 주인공이 여행하면서."
이야기는 사람이 임종 순간에 강하게 염원하던 일이 작고 빨간 구슬이 되어 이 세상에 남는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생긴 게 연어알을 닮아서 어란魚卵이라 한다고 했던가? 주인공 아저씨는 어떤 사정 때문에 어란을 회수하러 다니는 여행을 했고, 어란을 발견할 때마다 입에 넣고 먹었다. 구슬을 꼭꼭 씹어 터트리면 죽은 사람의 소원이 생생하게 펼쳐져 공유할 수 있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어란은 망자가 손에 쥐고 있거나 입 속에 넣고 있는 등 다양한 곳에 있었다. 그런 어란을 찾아서 먹는 아저씨도 어딘지 무섭고, 죽은 사람들의 마지막 소원도 반드시 감동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서 기분만 찜찜했다. 정교한 설정 때문인지 묘하게 현실적인 데가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더 으스스했다. 당시 어린 학생이었던 내 눈에는 이런 작품이 어떻게 잡지에 실렸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환상의 만화로 불리고 있다면 수긍이 가는 부분도 있다. 그 잡지에서, 아니 그 잡지를 떠나 상당히 독특한 작품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