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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0727099
· 쪽수 : 312쪽
· 출판일 : 2020-04-20
책 소개
목차
머리말
제1부 양피지 사본
그와 나
미래의 서울
몸의 오솔길
원서헌
제2부 두루마리
시인의 말
시 「안항」의 터무니
작가의 말
소설 「굴뚝과 천장」의 터무니
제3부 그리운 얼굴
시인의 만장
큰 가슴과 작은 손
봄나들이
현대시 동인
제4부 시, 스토리텔링
소를 타고 어디를 가시나?
꽃을 심는 시인
노마드는 꿈속에서도 꿈을 꾼다
눈부신 돋을볕의 상상력
* 소묘와 대화
서정과 서사, 그 느리고 빠른 결합 -이숭원
저녁연기처럼 퍼지는 노래 -김정임
시적 프리즘 -신효순
낙타와 사자를 지나 어린아이로 -정진희
은근슬쩍 염염한 골계미 -박원식
작가 연보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해 여름부터 수련이 피기 시작하였다. 수련의 절묘한 아름다움은 그야말로 황금비의 극치여서 필설로 다 그려낼 수 없을 정도다. 수련은 이름 그대로 아침에 피었다가는 오후 서너 시가 되면 꽃잎을 오므리고 잠을 잔다. 서울에 갈 일이 있어서 출발하려다가도 수련이 아직 피어 있으면 일부러 연못가를 거닐면서 그놈들이 잠들 때를 기다리기도 했다. 비 내리는 날이면 수련에 빗물 듣는 소리를 들으며 혼자서 마냥 이 생각 저 생각에 빠졌다. 무념무상의 생각이니까 더는 생각이랄 것도 없는 그런 경지에 푹 빠졌다. 개구리가 알을 까고 잠자리가 날아오고 백로가 연못가에 내려앉아 쉬고 가기도 했다.
_「원서헌」 중에서
그동안 1973년부터 2019년까지 펴낸 열 권의 시집과 세 권의 시선집 머리말을 불러내어 한 자리에 앉힌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아주 없지 않지만 그래도 시집을 하나하나 낼 때마다 시에 대한 내 나름의 전망이나 소회가 있었을 것 아닌가. 녹음테이프를 되감아 들어보는 것 같기도 하고 사진첩에서 빛바랜 옛 사진을 꺼내보는 것 같기도 하다.
잘 안 들리는 소리도 있고 구겨진 사진도 있다. 녹음하고 사진 찍을 때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도 없지 않지만 그 전체가 나의 생애의 면면이라고 하겠다.
등단한 지 7년이 지난 1973년에 낸 첫 시집 『아침의 예언』의 것을 다시 읽어본다. 이건 머리말이 아니고 후기인데, 꼭 무슨 ‘시인 취임사’라도 되는 것 같아 정말 웃긴다.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뭐? ‘나와 이웃의 시와 산문과 학문에 큰 보람 있기를’ 바란다고? 예끼, 이 사람아.
_「시인의 말」 중에서
「처형의 땅」의 등장인물인 ‘우리들 중의 하나’가 나의 다면적 자화상이라면 「굴뚝과 천장」의 ‘그’ 또한 지울 수 없는 나의 자화상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 의식 속에는 한마디로 단정할 수 없는 신비스러운 패러다임이 있다. 악마와 천사가 가위바위보하고 소년과 노인이 숨바꼭질하는 곳, 이것이 나의 문학적 영토의 암사지도다. 나의 영혼 속에는 시와 소설이 회전하며 존재한다. 시와 소설은 대립 개념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의 시에는 앙증맞은 서사가 들어가기도 하고 또 소설의 어느 부분을 따로 떼어내면 그대로 시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_「소설 「굴뚝과 천장」의 터무니」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