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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책] 코펜하겐에서 일주일을](/img_thumb2/9791191192803.jpg)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교양 인문학
· ISBN : 9791191192803
· 쪽수 : 263쪽
· 출판일 : 2023-02-09
목차
8 자각몽 / 문득 덴마크
17 입구 / 게이트웨이에서
27 첫 번째 생각 / 낭만적 기차여행이란 존재하는가
51 두 번째 생각 / 자전거는 미디어다
85 세 번째 생각 / 벌레를 예쁘게 보는 법
111 네 번째 생각 / 예측 가능한 삶은 재미없을까
127 다섯 번째 생각 / 일자리 송가
155 여섯 번째 생각 / 외모와 온도의 관계
167 일곱 번째 생각 / 큰 행운과 적당한 행운의 차이
191 여덟 번째 생각 / 배금주의는 쥐덫이다
207 아홉 번째 생각 / 치킨게임의 끝, ‘치킨없다’
221 열 번째 생각 / 착한 사람의 매력
243 열한 번째 생각 / 행복, 행운 그리고 귀인(貴人)
257 출구 / 게이트웨이에서
저자소개
책속에서
“히게네씨와의 대화에서 내가 복지라고 말하면 히게네는 늘 소셜 시큐러티, 소셜세
이프티 즉 사회보장, 사회안전망이란 말로 바꾸었다. 같은 말인 줄 알았더니 덴마크는
안전하다는 것이지 모든 걸 대신해주는 건 아니라는 거다. 복지만을 강조하면 그건
덴마크에 대한 오해라고. 복지보다는 사회보장이 자기 생각에는 더 맞는 말이라고 한
다. 개인이 열심히 하는 것이 기본이고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죽지 않을 만큼
만 해준다. 노는 사람에게 절대 복지를 해주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익히 들어 별로 새
로울 것도 없었다. 그런데 히게네씨의 말에 똑같이 오덴세에 살고 있는 좡은 바로 옆
자리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다.”
“여기서 걷고 계셨네요. 선생님은 키가 커서 잘 보여요. 덴마크사람들도 큰 데 말이
죠.”
당돌한 말투는 여전했다. “전 지금 자전거 타고 있어요. 코펜하겐에선 자전거를 타야
죠.” 걷는 내가 답답해 보였는지 나오는 말투가 매섭다. 나도 자전거를 탈 걸 그랬나
. 역시 자전거는 걷는 것보다 빠르니 사람 만날 확률도 훨씬 높다. 그 확률에 이번엔
내가 걸렸다. 나도 자전거를 타며 여행했다면 사람 만날 확률이 더 높아졌겠지만 확
률은 늘 예외를 동반한다. 그랬다면 민서와 마주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기차용 강력 빈대약이 만든 내 얼굴 발진은 이제 긁어 부스럼이 되었고, 여전히 가려
웠다.
“아니, 다른 친구는 어디 가고?”
“아, 기차에서 만난 친구요? 그냥 기차만 같이 타고 왔어요. 쿠셋열차에 이상한 인
간들이 많다고 해서 기차에서만 같이 가기로 했죠.”
그 이상한 인간이 나는 아니었겠지. 그녀들이 실수로 내 얼굴에 빈대약을 분사했길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그녀들이 이상한 인간인 거다.
민서는 가던 길 쪽 방향을 틀고 자전거에서 내렸다.
“근데 덴마크는 사회주의예요 자본주의예요?”
이곳 덴마크는 네덜란드처럼 자전거 천국이다. 사전에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직접 와서
보니 자전거 참 대단하다. 이곳 사람들은 자동차가 비싸고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아
자전거를 타겠지만, 이미 자전거는 생활의 중심이 되었고 자전거 중심의 도로설계도
벌써 수십 년이 되었다. 물론 그들도 쉽게 이런 결과를 얻은 것은 아니다. 1970년대
자동차가 늘어나면서 환경오염이 심해지자, 자전거를 대중교통으로 육성하기 위해 자
동차에 300%의 세금을 ‘때리고’, 자동차 제조업을 아예 금지시켜버렸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도 자동차산업을 국가핵심산업으로 육성하느라 온 힘을 쏟아
키우는데, 기름 나는 덴마크가 자동차 제조공장까지 아예 금지해 버린 것은 우리 머
리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좋은 공기를 만들겠다고 일자리 수십만 개를 없애버린
‘순진한 인간들’의 나라다. 아니, 너무 무서운 인간들의 나라다. 그렇게 무서운 사
람들이니 ‘무력한 자전거’를 사랑하고 그래서 자전거가 일상생활에 들어오길 허락
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차별이 없다구요? 거짓말 마세요.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보는데 차별이 없을
수 있나요. 정말 목수와 의사가 차별이 없다구요? 물론 덴마크니까 살인적인 세금 때
문에 세금 주고 나면 수입이 비슷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사람들 보는 눈은 의사와
목수가 당연히 다를 거 아닙니까?”
나의 공격적이면서도 살짝 거친 말에 크리스창은 그냥 빙긋이 웃었다. 아마 한국 사
람에게선 당연히 나올 말로 짐작한 듯하다.
“여긴 다르게 볼 게 없는데요. 그냥 같은 직업이지요. 직업에 뭐가 좋고 나쁘고가 있
습니까. 자기들이 좋아서 선택한 것인데요. 의사 일이 좋은 사람은 의사를, 목수 일이
좋은 사람은 목수를 하는 것이지요. 스스로 좋아해서 하는 것인데 그것 때문에 차별
한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옛날 중세 시대도 아니고 말이죠.”
하긴 루소의 <에밀>에서도 이 세상 최고의 직업은 목수라고 했지.
“좋습니다. 직업에 차별이 없다면 뭔가 다른 차별은 있을 거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질문하는 내가 싫었다. 그만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
는데 해야지.
안데르센의 흔적을 찾기 위해 오덴세 역에 도착한 날, 비가 내렸다. 터미널 저쪽에서
우비를 파는 것 같다. 우비를 보려고 근방에 갔는데, 앞사람이 그냥 받아간다. 돈을
안 낸다. ‘어? 이거 공짜인가?’ 그런데 앞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받아가서
‘이거 뭐지?’ 했다. 그리고 우비를 나눠주는 사람에게 물었다.
“이거 공짜예요?”
약간 의외의 질문을 받은 듯 멋쩍은 표정을 짓는다. 비옷을 건네며 내놓는 답변이 이
렇다.
“지금 비 오잖아요.”
‘공짜’에 관해 가타부타 말이 없다. 그냥 이상한 소리 말고 가져가라는 거다. 비가
오니 비옷을 입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거기에 왜 물을 것이 있는가.
‘우린 돈이 없으면 우산을 살 수 없고 쫄딱 비 맞고 가야 하는데?’
덴마크 사람들은 사고구조 자체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세금을 강탈당한
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세금으로 나도 혜택을 받는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