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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0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0

(그래도 사랑할 만한 인간)

알베르 카뮈, 빅토르 위고,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오 헨리, 오스카 와일드, 다니자키 준이치로,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은이), 이문열 (엮은이)
무블(무블북스)
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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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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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0 (그래도 사랑할 만한 인간)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영미소설
· ISBN : 9791191433920
· 쪽수 : 364쪽
· 출판일 : 2026-06-15

책 소개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시리즈 10권 『그래도 사랑할 만한 인간』이 출간됐다. 새로이 추가된 알베르 카뮈의 「손님」 외에도, 세 편을 새로 번역한 개정판이다. 1996년 처음 출간된 이래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시리즈는 2020년부터 새로운 판형과 현대적인 번역으로 선보이고 있다. 1, 2, 7권에 이어 이번에 10권이 출간됐다.

목차

『세계명작산책』 개정판을 내며 5
『세계명작산책』 초판 서문 8
머리말 19

알베르 카뮈 - 손님
부조리 속 인간 본성에 대한 신뢰

빅토르 위고 - 가난한 사람들
가난해서 오히려 눈부신 인정

우고 와스트 - 고향에 돌아온 죄수
우리 밖 한 마리 양이 주는 감동

레프 톨스토이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래도 사랑할 만한 인간, 살 만한 세상

O. 헨리 - 마지막 잎새
사랑으로 완성되는 예술혼

오스카 와일드 - 행복한 왕자
순수하고 고양된 유미주의의 결정

다니자키 준이치로 - 어머니를 그리며
순수한 그리움과 아름다운 서정

요한 볼프강 괴테 - 헤르만과 도로테아
건강한 사랑, 조화로운 세계

부록–교체작품 해설
가와바타 야스나리 - 이즈의 무희
존 스타인벡 - 빨간 망아지
가브리엘 G. 마르케스 - 눈 속에 흘린 당신 피의 흔적

저자소개

오 헨리 (지은이)    정보 더보기
미국 단편소설 작가로 본명은 윌리엄 시드니 포터(William Sydney Porter)이고, 노스캐롤라이나 주 그린즈버러에서 내과의사인 아버지 알게몬 시드니 포터와 어머니 메리 제인 버지니아 와인 포터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어려서 양친을 잃어 숙모가 교사로 있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1882년 텍사스로, 1884년에는 오스틴으로 이주하면서 목장 관리, 제도사, 기자, 은행원 등의 직업을 전전하였다. 1887년 아솔 에스테스와 결혼했으며, 1891년 오스틴은행에 근무하면서 아내의 내조를 얻어 주간지를 창간했으며, 지방신문에 유머러스한 일화를 기고하는 등 문필생활을 시작하였다. 1896년 2월 은행 공금횡령혐의로 기소되었다가 친구들의 도움으로 온두라스로 도피했으나 아내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와 체포되었다. 1898년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는 교도소의 병원에서 약제사로 일하면서 딸의 부양비를 벌기 위해 글을 썼고, 즉각 잡지 독자들로부터 인기를 얻었으며, 출감하면서 이름을 오 헨리란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1903년 12월부터 1906년 1월까지 뉴욕의 《월드(World)》지에 매주 글을 기고하였다. 최초의 소설집 《캐비지와 왕(Cabbages and Kings)》(1904)을 시작으로, 《400만(The Four Million)》(1906), 《손질 잘한 램프(The Trimmed Lamp)》(1907), 《서부의 마음(Heart of the West)》(1907) 등의 단편집을 계속해서 출간했다. 헨리의 말년은 악화된 건강, 금전상 압박과의 싸움, 알코올 중독 등으로 얼룩졌다. 1907년에 한 재혼은 불행했다. 1910년 6월 5일, 과로와 간경화, 당뇨병 등으로 뉴욕 종합병원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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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자키 준이치로 (원작)    정보 더보기
1886년 도쿄 니혼바시에서 태어났다. 제일 고등학교를 거쳐 도쿄 제국 대학 국문과에 입학하였으나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퇴학당했다. 1910년 『신사조(新思潮)』를 재창간하여 「문신」, 「기린」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장했고, 소설가 나가이 가후로부터 격찬을 받으며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했다. 1915년 열 살 어린 이시카와 치요코와 결혼했는데, 시인인 친구 사토 하루오가 그의 부인과 사랑에 빠지자 아내를 양도하겠다는 합의문을 써 『아사히신문』에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문화 예술 운동에도 관심을 가진 그는 시나리오를 써 영화화하고 희곡 『오쿠니와 고헤이』를 발표한 뒤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1924년 『치인의 사랑』을 신문에 연재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검열로 중단되었다. 1942년 그는 세 번째 부인이자 그가 희구하던 여성인 마쓰코와 그 자매들을 모델로 『세설』을 쓰기 시작했다. 간사이 문화에 대한 애정이 짙게 배어 있는 『세설』은 몰락한 오사카 상류 계츨의 네 자매 이야기, 특히 셋째인 유키코의 혼담을 중심으로 당시의 풍속을 잔잔하게 전하는 풍속 소설이다. 1943년 『중앙공론』 신년호와 4월호에 게재되었고 7월호에도 실릴 예정이었으나 <시국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발표가 금지되어 전후에야 비로소 작품 전체가 발표되었다. 훗날 마이니치 출판문화상과 아사히 문화상을 받았다. 1948년에는 제8회 문화 훈장을 받았고 1941년 일본 예술원 회원, 1964년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문학예술 아카데미의 명예 회원에 뽑혔다. 1958년 펄 벅에 의해 노벨 문학상 후보로 추천된 이래 매년 후보에 올랐으며 1965년에 8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 밖의 대표작으로는 『치인의 사랑』, 『만』, 『킨쇼』, 『열쇠』, 『장님 이야기』, 『미친 노인의 일기』 등이 있고, 무라사키 시키부의 『겐지 이야기』를 현대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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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은이)    정보 더보기
1828년 러시아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1844년 카잔 대학교에 입학하나 대학 교육에 실망, 1847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일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삼 년간 방탕한 생활을 했다. 1851년 맏형이 있는 캅카스로 가서 군대에서 복무했다. 이듬해 잡지 《소브레멘니크》에 익명으로 「유년 시절」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작품 집필과 함께 농업 경영에 힘을 쏟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학교를 세우고 1861년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랴나》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문학에 전념하여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대작을 집필,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렸다. 그러나 이 무렵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그리하여 1880년 이후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면서 사유재산 제도와 러시아 정교에 비판을 가하고 『교의신학 비판』, 『고백록』 등을 통해 ‘톨스토이즘’이라 불리는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했다. 또한 술과 담배를 끊고 손수 밭일을 하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하며 빈민 구제 활동을 하기도 했다. 민중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민담 22편을 썼는데 그중에서도 「인간에게 많은 땅이 필요한가」는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가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이야기”로 꼽기도 했다.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다. 사유재산 및 저작권 포기 문제로 시작된 아내와의 불화 등으로 고민하던 중 1910년 집을 떠나 폐렴을 앓다가 아스타포보 역장의 관사에서 영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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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소설가, 극작가. 나폴레옹 휘하의 군인인 아버지와 왕당파 집안 출신인 어머니의 셋째아들로, 당시 아버지의 임지였던 브장송에서 태어났다. 이후 파리, 나폴리, 마드리드 등을 전전하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학창 시절 독서와 시 창작, 문예 비평에 열중하다 스무 살이 되던 1822년 첫 시집《송가와 여러 시》를 발표했다. 1823년 첫 장편소설《아이슬란드의 한Han》에 이어 1827년 운문 희곡〈크롬웰〉등을 발표하여 낭만주의 작가로 자리매김했고 1830년 초연된 희곡〈에르나니〉로 고전주의자들과의 싸움에서 주도권을 획득했다. 1831년 발표한 역사소설《파리의 노트르담》으로 대성공을 거두었고 루이 필리프의 7월 왕정 시기에 정치성을 띤 시집을 다수 발간했다. 현실 참여적인 지식인이자 인도주의자로서 사형제 폐지와 빈민 구제를 주장한 위고는 공화파 정치가로도 활약했다. 1851년 나폴레옹 3세가 쿠데타로 제정을 수립하려 하자 이에 반대하다 국외로 추방되어 브뤼셀 등지에서 19년간 망명 생활을 했다. 그 기간 동안 작품 집필에 몰두하여《명상시집》과《레 미제라블》을 비롯한 걸작들을 남겼다.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으로 나폴레옹 3세가 몰락하면서 파리에 돌아온 후 1876년 상원 의원으로 선출되지만 1878년 뇌출혈로 건강이 악화되어 정계에서 은퇴했다. 1885년 파리에서 폐울혈로 사망한 그의 장례는 국민적인 애도 속에 국장으로 거행되었고 시신은 팡테옹에 안장되었다. 대하소설《레 미제라블》에 여담 형태로 삽입된 ‘워털루 전투’ 이야기는 위고가 벨기에 전적지에서 두 달간 머무르며 곳곳을 답사하는 노력 끝에 집필한 것이다. 위고 특유의 비장미 넘치는 문체가 돋보이는 이 글은 일세를 풍미한 영웅 나폴레옹의 패배 과정을 극적이고도 박진감 넘치게 그려내는 동시에 전투의 역사적 의미를 일깨우며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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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 (지은이)    정보 더보기
그 모든 것에 항거하며 인간의 부조리와 자유로운 인생을 깊이 고민한 작가이자 철학자. 1913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몽드비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알사스 출신의 농업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차 세계대전 중 전사하고, 청각 장애인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가난 속에서 자란 카뮈는 유년 시절의 기억과 가난, 알제리의 빛나는 자연과 알제 서민가의 일상은 카뮈 작품의 뿌리에 내밀하게 엉기어 있다. 구역의 공립 학교에서 L. 제르맹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났다. “나는 자유를 빈곤 속에서 배웠다.”라고 하기도 했는데, 알제리에서 보낸 유년기는 그가 작가적 양분을 공급받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의 도움으로 장학금을 받고 1923년 프랑스 중등학교 리세에 입학했고, 이후 알제리 대학에 입학했으나 1930년 폐결핵으로 자퇴를 했다. 결핵 발병으로 누구보다 좋아했던 축구를 포기했다. 바칼로레아 준비반에서 철학 교수이자 에세이스트인 장 그르니에를 만나 큰 영향을 받고, 이후 평생 그와 교류를 이어갔다. 어렵게 대학에 진학해 고학으로 다니던 알제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해 철학을 전공하는 동시에 정치 활동과 연극 활동에 집중했다. 1932년 장 그르니에가 주도한 조그만 월간 문예지 [쉬드Sud]를 통해 처음으로 첫 에세이 《새로운 베를렌Un Nouveau Verlaine》을 발표했다. 대학시절에는 연극에 흥미를 가져 직접 배우로서 출연한 적도 있었다. 결핵으로 교수가 될 것을 단념하고 졸업한 뒤에는 진보적 신문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다. 한때 공산당에 가입했던 그는 비판적인 르포와 논설로 정치적인 추방을 당하기도 했고, 프랑스 사상계와 문학계를 대표했던 말로, 지드, 사르트르, 샤르 등과 교류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몰입했다. 1937년 첫 산문집 《안과 겉》을 발표하고, 이듬해부터 [알제 레퓌블리켕]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1940년에 파리로 활동 무대를 옮겨 [파리수아르]의 기자가 된다. 독일에 점령당한 파리에서 검열을 피해 지방으로 옮긴 [파리수아르]를 따라 이동하는 동안에도 집필 활동에 매진한다. 초기의 작품 《표리(表裏)》(1937), 《결혼》(1938)은 아름다운 산문으로, 그의 시인적 자질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1942년 7월, 자신의 첫 소설이자 대표작이 되는 문제작 《이방인(異邦人) L' tranger》을 발표하면서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이즈음 레지스탕스에 가담하여 프랑스 해방 운동에 참여한 카뮈는 철학 에세이 《시시포스 신화》(1943), 희곡 작품 「오해」(1944) 등 다양한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저항운동에 참가하여 레지스탕스 조직의 기관지였다가 후에 일간지가 된 [콩바]의 편집장으로서, 모든 정치 활동은 확고한 도덕적 기반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에 바탕을 둔 좌파적 입장을 견지했다. 또 집단적 폭력의 공포와 악성, 부조리함을 알레고리를 통해 형상화한 소설 《페스트》로 문학계의 대반향을 일으켰고 1951년에는 마르크시즘과 니힐리즘에 반대하며 제3의 부정정신을 옹호하는 평론 《반항적 인간》을 발표하여 지성계에 큰 논쟁을 촉발한 사르트르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다가 10년 가까운 우정에 금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1956년 《전락》을 발표하면서 사르트르에게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방인》, 《시지프의 신화》를 발표하며 문학가를 넘어 사상가로도 인정받기 시작했고, 실존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엄마, 무명인, 그리고 나의 ‘죽음’을 연달아 맞닥뜨리며 삶의 부조리를 고뇌하는 모습은 이후 오랫동안 수많은 독자를 실존주의의 세계로 이끈다. 와 라는 희곡을 쓰며 희곡 작가로도 활동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57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대문호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알제리 독립을 둘러싼 논쟁에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 가지만, 카뮈는 생전 인터뷰에서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보다 더 부조리한 죽음은 상상할 수 없다.”라고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1960년 1월 4일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이때 사고 차량에 있던 가방에서 초고 형태로 발견된 《최초의 인간》은 1994년에야 빛을 보게 된다. 이 외에도 《여름》, 《유배지와 왕국》, 《행복한 죽음》, 《정의의 사람들ㆍ계엄령》, 《결혼, 여름》, 《태양의 후예》, 《젊은 시절의 글》, 《스웨덴 연설ㆍ문학 비평》, 《최초의 인간》, 《여행일기》, 《단두대에 대한 성찰ㆍ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전락·추방과 왕국》, 《안과 겉》 등의 작품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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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세기 말 빅토리아 시대의 문학과 문화에 깊은 흔적을 남긴 오스카 와일드는 예술지상주의와 유미주의의 대표적 작가이자 사회를 조롱한 재담가였다. 1854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저명한 의사이자 고고학자였고 어머니는 시인이었다. 부모의 영향 아래 그는 어린 시절부터 문학과 예술에 깊이 빠져들었고,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한 후 옥스퍼드 대학교 모들린 칼리지로 진학했다. 1878년 시 「라벤나」로 뉴디게이트 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첫 발을 내디뎠고, 1888년에 동화집 『행복한 왕자와 그 밖의 이야기들』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1890년 발표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와일드의 유일한 장편소설이자 가장 논쟁적인 작품이었다.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내던지는 도리언의 이야기 속에서 와일드는 도덕과 타락, 미와 윤리,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탐구했다. 그러나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적 기준을 위배했다는 이유로 ‘위험하고 부도덕한 책’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이후 그는 1890년대 후반 희곡 작가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 〈하찮은 여인〉, 〈진지함의 중요성〉 같은 풍자극을 발표하여 사회의 위선을 날카롭게 조롱했다. 1895년에는 동성애 혐의로 기소되어 2년간의 강제 노동형을 선고받았다. 출소 후에 프랑스로 떠나 유랑 생활을 했는데, 건강이 악화된 그는 1900년 뇌수막염으로 생을 마감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19세기 영문학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로 남아 있다. 문학과 미학을 향한 와일드의 탐구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논의되며, 그는 여전히 ‘자신의 삶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창조한 작가’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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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은이)    정보 더보기
1749년 8월 28일 독일 마인강 변의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부친 요한 카스파르(Johann Kaspar) 괴테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황실 고문관이라는 명예직을 가진 부유한 시민으로 합리적이고 이지적인 성격이었다. 프랑크푸르트 시장의 딸인 어머니 카타리나 엘리자베트(Katharina Elisabeth)는 라틴계 특유의 풍부한 감정과 활달하고 명랑한 성격의 여성으로 어린 아들에게 동화를 들려주고 인형극을 접하게 하여 아들의 예술 감각을 일깨워 주었다. 괴테는 1765년 10월 부친 뜻에 따라 라이프치히대학에서 법학 공부를 시작한다. 1771년 8월 법학석사 학위 시험을 치른 뒤 고향으로 돌아간다. 고향에서 변호사로 일을 시작하지만 본업보다는 문학에 더 힘을 기울인다. 이 시기 〈무쇠 손 괴츠 폰 베를리힝겐〉(1773)을 발표한다. 이후 3년은 괴테 일생에서 가장 풍성한 결실의 기간이다. 《젊은 베르터의 슬픔(Die Leiden des jungen Werther)》(1744)도 이때 발표된다. 1776년 괴테는 추밀원 고문관에 임명되는 것을 시작으로 10년간 여러 분야의 행정 업무를 담당한다. 1782년에 재무상이 되는 한편 신성로마제국 황제 요제프 2세로부터 귀족 작위도 받는다. 이 시기 바이마르 궁정의 여관 샤로테 폰 슈타인 부인과의 정신적 교류 영향으로 질풍노도기의 과도한 격정에서 벗어나 조화와 중용을 지향함으로써 좀 더 원숙한 문학 세계로 들어선다. 그 밖에 괴테는 지질학, 광물학, 해부학, 식물학 등 자연과학 연구에도 몰두한다. 1786년 9월 3일 괴테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바이마르를 떠나 이탈리아로 향한다. 이탈리아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을 접한 괴테는 이성과 감성을 조화시키고 중용을 지키며 교양을 갖춘 원숙한 인간상을 절제된 언어와 짜임새 있는 형식으로 표현하려는 고전주의 문학관을 확립한다.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후 별 성과 없이 여러 해를 지내던 괴테는 10년 연하의 실러와 아름다운 우정 관계를 맺는다. 1828년 카를 아우구스트 대공의 사망과 2년 뒤 아들의 죽음으로 최대 시련을 맞은 괴테는 미완성 작품에 매달림으로써 그 시련을 극복하려고 한다. 〈파우스트〉는 그때까지 인간 정신이 이룩한 모든 것과 예언적으로 이후에 창조될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방대한 스케일, 다양한 운율, 풍부한 상징 등으로 독일 문학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대작이다. 인간의 한평생이라 할 수 있는 60년이란 긴 세월 동안 그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던 〈파우스트〉의 완성과 함께 괴테의 일생도 종결된다. 괴테는 1832년 3월 22일 향년 83세로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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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향인 경북 영양, 밀양, 부산 등지에서 자랐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서 수학했으며 대구매일신문 기자로 재직하던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새하곡」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후 「그해 겨울」, 『황제를 위하여』,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 여러 작품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독보적인 문체로 풀어내어 폭넓은 대중적 호응을 얻었다. 특히 장편소설 『사람의 아들』은 문단의 주목을 이끈 초기 대표작이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소설 『젊은 날의 초상』 『영웅시대』 『금시조』 『시인』 『오디세이아 서울』 『선택』 『호모 엑세쿠탄스』 『불멸』 등 다수가 있고, 『이문열 중단편 전집』(전 6권), 산문집 『사색』 『시대와의 불화』 『신들메를 고쳐매며』, 대하소설 『변경』(전 12권) 『대륙의 한』(전 5권) 등이 있으며, 평역소설로 『삼국지』 『수호지』 『초한지』가 있다. 오늘의 작가상1979, 동인문학상1982, 대한민국문학상1983, 중앙문화대상1984, 이상문학상1987, 현대문학상1992, 21세기문학상1998, 호암예술상1999, 대한민국예술원상2009, 동리문학상2012 등을 수상했다. 또 1992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2015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2024년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그의 작품은 현재까지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 등 전 세계 31개국 24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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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너는 우리의 형제를 넘겨주었다.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다뤼는 하늘과 고원을, 그리고 그 너머 바다까지 뻗어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대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토록 사랑하던 이 드넓은 고장에서 그는 이제 혼자였다. -알베르 카뮈 「손님」 중에서


아아! 사랑하라, 살아라, 젊음을 즐겨라,
춤추어라, 웃어라, 가슴을 불태워라, 잔을 비워라.
모든 시냇물이 시커먼 대양에 이르듯이
운명은 결국 우리의 축제, 요람에,
그리고 활짝 핀 유년기를 찬미하는 어머니에게,
영혼조차 황홀해하는 육신의 입맞춤에.
노래에, 미소에, 신선하고, 아름다운 사랑에,
무덤의 음산한 차가움만을 가져다줄 뿐이다.
-빅토르 위고,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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