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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학 > 사회학 일반
· ISBN : 9791192014043
· 쪽수 : 588쪽
· 출판일 : 2022-09-26
책 소개
목차
■ 추천사 •4
1장 _ 위안부 문제 ‘폭발’
1. 「아사히신문」의 기습 •19
2. 전사前史 -센다 가코千田夏光부터 윤정옥까지 •24
3. 원고 찾기로부터 소송으로 •31
4. 노동성 국장의 ‘실언’ •36
2장 _ 공창제公娼制 하의 일본
1. 공창제의 성립 •45
2. ‘매신賣身’의 양상 •52
3. 조선반도의 공창제 •62
4. ‘가라유키상’ 성쇠기 •70
5. 전시기의 변용變容 •77
6. 전시에서 매춘방지법까지 •84
3장 _ 중국전장과 만주에서는
1. 상하이에서 탄생한 위안소 •93
2. 성병 통계를 살피다 •97
3. 아소 군의軍医와 양가택楊可宅 위안소 •103
4. 난징학살과 위안 대책 •110
5. 군 직영에서 민영·사유물까지 •115
6. 2만 명의 낭자군 •121
7. 한커우漢口 위안소 사정 •129
8. 관동군특종연습의 위안부들 •135
4장 _ 태평양전선에서는
1. 은상과恩賞課가 관련 업무의 창구로 •145
2. 남방 도항과 수송선 •149
3. “성병 천국”이었던 남방 점령지 •154
4. 북쿠릴 열도에서 안다만 제도까지 •161
5. 위안소 규정은 말한다 •165
6. 패주하는 여자들–버마 •169
7. 패주하는 여자들–필리핀 •174
8. 해군의 ‘특요원特要員’ •179
9. 종전과 귀환 •186
5장 _ 제諸 외국의 ‘전장의 성’
1. 전사前史 •195
2. 독일 •201
3. 러시아 •205
4. 영연방군 •210
5. 대독對獨 전장의 미군 •214
6. 대일對日 전장의 미군 •218
7. 미美 점령군과 RAA •221
8. 베트남전쟁과 그 후 •226
6장 _ 위안부들의 신상 이야기
1. 한국-김학순, 문옥주 등 •237
2. 한국-대부분이 매신賣身? •252
3. 필리핀-강간형 •257
4. 중국–산시성山西省의 위안부들 •264
5. 대만 •273
6. 인도네시아-마르디엠 등 •276
7. 인도네시아-병보협회兵補協会의 설문 조사 •284
8. 네덜란드–네덜란드 억류 여성의 수난 •286
9. 침묵하는 일본 여성 •294
7장 _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의 작화作話
1. 제주도로 •305
2. 속아 넘어간 「아사히신문」 •312
3. 거짓말로 점철된 ‘라이프 히스토리’ •320
8장 _ 화근을 남긴 고노河野담화
1. 키워드는 “대체로” •331
2. 성난 고함 속의 청문회 •334
3. 당사자의 고백 •339
9장 _ 쿠마라스와미 선풍
1. 유엔인권위를 무대로 •345
2. 쿠마라스와미 권고–열렬한 환영의 목소리 •348
3. 대학생이 쓴 보고서였다면 낙제점 •353
4. 옛 위안부의 신상 이야기는 •362
5. 제네바의 공방전 •368
6. ‘유의留意’에 대한 해석 논의 •374
10장 _ 아시아여성기금의 공과功過
1. 규탄 속의 탄생 •383
2. ‘속죄금’의 행방 •388
3. 궁지에 빠진 기금 •396
4. 한국 •401
5. 북조선 •407
6. 타이완(대만) •410
7. 중국 •413
8. 필리핀 •414
9. 인도네시아 •417
10. 네덜란드 •419
11.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420
12. 파푸아뉴기니 •420
13. 미크로네시아 •422
11장 _ 환경조건과 주변 사정
1. 유엔과 국제 NGO •427
2. 일본의 지원 단체 •436
3. 보도기관의 논조 •444
4. 전후 보상의 법리 •449
5. 관부關釜재판과 위안부 소송 •454
6. 페미니즘의 난류 •460
12장 _ 7개의 쟁점 Q&A
Q1. ‘위안부’인가 ‘종군위안부’인가? •470
Q2. 여자정신대와 위안부의 혼동 •478
Q3. 위안부에 대한 강제연행은 있었는가? •489
Q4. 위안부는 어떻게 모집되었는가? •495
Q5. 위안소의 생활 조건은 가혹했는가? •505
Q6. 얼마나 많은 위안부가 있었는가? •513
Q7. 위안부의 민족별 구성은? •523
■ 저자후기 •530
■ 역자후기 •533
■ 부속자료 •536
■ 도표색인 •570
인명/용어색인 •573
언론/저작색인 •585
책속에서
정대협을 핵심으로 하는 한국 여성들의 위안부 운동은 당초에 한국 정부로부터 냉담한 반응을 얻었던 만큼, 일본의 운동 단체와 매스컴의 캠페인 없이는 유효한 정치 운동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위안부 운동은 이전부터 저류가 있었던 한국인 전쟁 희생자에 대한 보상 문제에 편승하는 형태로 그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청산”한 위에서 외교 관계를 확립한 1965년의 일한日韓조약에서 대일청구권문제에 대하여 일본으로부터 3억 달러의 무상 공여 등을 받는 것으로써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을 확인”했다. 게다가 합의 의사록에는 한국 정부가 제출한 모든 청구는 이제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하는 어구가 들어갔다. 뒷날의 분규를 피하기 위한 표현이었는데, 더구나 십수 년에 걸쳐 끊어졌다, 이어졌다를 반복하며 진행된 일한조약 체결 이전의 교섭 과정에서도 위안부 문제가 논의된 적은 없다.
(‘제1장 위안부 문제 ‘폭발’중에서)
통계상으로는 어떠한 영향인지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지만,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의 성립(1920년)을 전기轉機로 하는 세계적인 반反 공창운동을 배경으로 하여 일본의 공창제도는 크게 흔들리게 된다. 부녀매매의 규제를 취지로 하는 국제협정은 이미 1904년과 1910년에 성립되었지만, 1921년에 국제연맹이 주도한 ‘부인 및 아동의 매매금지에 관한 국제 조약’이 제네바에서 성립되자 그 가입을 둘러싸고 일본 제국의회 등에서 논의를 진행한 끝에 그로부터 4년 뒤인 1925년, 만 21세를 19세로 낮추는 유보 조건을 붙여 비준하였다. 그러나 각국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추밀원樞密院에서도 일본의 체면에 관계된다는 비판의 소리가 나오자 정부 는 2년 후에 이 유보 조건을 철회한다. 이때 일본은 연령 제한을 포함하여 식민지를 가진 유럽의 대국(영국, 프랑스 등. 여전히 미국은 가입하지 않았다)을 따라 조선, 대만, 관동주 등의 식민지를 이러한 적용에서 제외(식민지 제외 규정)했다
(‘제2장 공창제 하의 일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