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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세계의 소설 > 북유럽소설
· ISBN : 9791192411729
· 쪽수 : 212쪽
책 소개
목차
영원한 어둠
색을 잃어버린 것들
비밀의 문
수상한 정원
해를 지키는 여인
불공평한 일
햇살의 축복
수상한 쪽지
언덕 밑의 낡은 집
소리 없는 비명
마지막 용기
너의 이름
집으로 가는 길
봄의 향기
리뷰
책속에서
눈을 감으면 아직도 코끝과 양볼에 내리쬐는 햇살을 느낄 수 있다. 그 간질간질한 따스함이 가슴속까지 스며 들어오면 심장이 녹아내릴 듯 평온해지면서 온몸에 활기와 자신감이 감돈다. 내가 기억하는 햇살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런데 내가 한 살 되던 때, 해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지금은 해를 볼 수가 없다. 내가 사는 세상에는 저 멀리 보이는 들판과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수천 개의 물방울이 되어 튀어오르는 빗물뿐이다. 여름도 없고 가을도 없고 겨울도 없다. 할아버지가 사계절 가운데서 여왕이라고 했던 봄도 당연히 없다.
심지어는 낮과 밤도 없다. 새벽이나 초저녁처럼 어스레한 시간이 영원히 계속된다. 산꼭대기의 희미한 빛 외에는 온통 어둠뿐이다. 잠자리에 들 시각과 일어나야 할 시각은 오로지 마을 광장의 시계탑을 보고 알아채야 한다. 나의 세상은 늘 어둡고 축축하다. 매일매일 비가 오고 구름이 낀 날이 이어지지만, 천둥이나 번개가 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날 만약 할아버지가 도시락을 가져갔더라면, 그래서 내가 할아버지의 온실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채지 못했더라면, 나의 세상은 아직도 영원한 어둠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지금껏 수도 없이 할아버지의 온실을 상상해 보곤 했다. 천장의 강렬한 불빛 아래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채소들,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잔가지들, 바닥에 단단하게 자리한 나무들, 그리고 온 세상의 색이란 색을 모두 담은 듯한 갖가지 과일들…….
하지만 내 눈에 비친 것은 그동안 상상했던 것과 너무나 달랐다. 금방이라도 스러질 것처럼 가느다랗고 연약한 식물의 줄기들뿐이었다. 그 옛날 마을 사람들이 농사짓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을 때, 어렵사리 흙을 뚫고 나온 각종 식물의 싹들이 끊임없이 내리는 비를 이기지 못하고 축 늘어져 버렸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갑자기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온실 출입문 쪽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곧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