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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추리/미스터리소설 > 일본 추리/미스터리소설
· ISBN : 9791192579535
· 쪽수 : 500쪽
· 출판일 : 2023-03-29
책 소개
목차
Prologue
제1장
제2장
제3장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친구 집에는 항상 나이 든 할머니와 어린 여동생이 있었다. 스에오는 친구 집에서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노파는 여름에는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헐렁한 민소매 속옷에 주름치마를 입고 다 해져 거스러미가 일어난 다다미 위에 갓 찧어 온 떡처럼 철퍼덕 앉아 있었다. 듬성듬성 남은 머리카락을 정수리에 동그랗게 묶어놓았는데, 숱이 워낙 적어 체리 정도 크기밖에 되지 않았다. 축 처진 유방이 속옷 틈새로 훤히 들여다보였다.
골짜기 바닥에 있는 그 집에는 햇볕이 거의 들지 않았다. 노파는 간신히 비쳐 드는 빛을 역광으로 받으며 스에오를 향해 고개를 든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자그마한 귀신 같기도 하고 섬뜩한 생물 같기도 한 그 모습은 아무튼 이 세상 것이 아닌 존재처럼 느껴졌다. 세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동생은 말 한마디 없이 오빠를 따라다녔다. 스에오 눈에는 사람이라기보다 작은 동물처럼 보였다.
가난과 빈곤은 다르다. 가난은 돈이 없는 것뿐이다. 하지만 빈곤이란 인프라가 없는 땅과 같다. 말도 조리 있게 하지 못하는, 계산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사를 존중받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상상력이 성장하지 않아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상밖에 보지 못한다. 서로를 존중하는 행위는 상상력을 가진 사람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상상력이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나와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걸 자연스레 인식하니까. 타인을 존중하는 풍조가 없는 공동체 안에서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시당하느냐, 무시하느냐’ 둘 중 하나다. 아니면 ‘내게 이득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 그런 기준 안에서 아이는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성가신 존재다. 아이는 괴롭힘을 당하고 어른 기분에 따라 폭언을 듣고 때로는 폭력에 시달린다.
그런 가정에서 부모는 아이가 빨리 독립하길 바란다. 그 집에 아이가 몸 둘 곳은 없다. 사내아이는 패거리들과 무리를 이루고 계집아이는 몸을 팔아 돈을 번다.
자마 세이라의 모친도 그런 식으로 성장했으리라. 그래서 딸이 자신처럼 열세 살에 남자를 상대로 일하는 현실에 거부감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