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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책읽기/글쓰기 > 책읽기
· ISBN : 9791192628639
· 쪽수 : 480쪽
· 출판일 : 2026-03-30
책 소개
페미니즘 문학비평의 고전을 읽는다
주디스 페털리의 『저항하는 독자』는 미국 페미니즘 문학비평의 장을 연 핵심 고전으로, 출간 이후 오랫동안 페미니즘적 독서의 정치성을 드러내는 비평 이론의 전범으로 읽히고 언급되어 왔다. 이 책에서 페털리는 남성 중심적 문학 전통이 어떻게 여성 독자에게 순응을 요구하고, 여성 자신의 경험과 욕망을 배제하도록 독해 방식을 구조화해 왔는지 집요하게 분석한다.
그가 말하는 ‘저항하는 독자’는 단순한 비판적 독자를 뜻하지 않는다. 남성 중심의 문학을 읽으면서도 여성 독자로서 스스로를 배반하지 않는 읽기, ‘동일화하라’는 텍스트의 암묵적 요구에 저항하며 독자의 위치를 재정립하는 적극적 독법을 가리킨다. 페털리는 텍스트의 구조, 인물 구성, 서사적 시선이 여성 독자를 어떻게 주변화하는지 분석해 내고, 독서 행위 자체를 정치적·해방적 실천으로 변환시키는 가능성을 찾는다.
이 책이 지금도 유효한 이유는, 단순히 여성 중심 해석을 제안한다는 차원을 넘어 ‘누구의 시선으로 세계를 읽고 있는가’라는 독해의 근본 조건을 성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여성의 독법을 문제 삼지만, 그 성찰은 문학의 정치성과 독자의 주체성에 대한 폭넓은 질문으로 확장된다. 남성 중심성에 길들여진 독해 관습을 의식화하는 것만으로도 작품이 달리 보이기 시작하고, 독자가 자신이 읽기 과정에서 수행해 온 동일화의 방식을 낯설게 바라보게 만든다.
페털리는 문학이 여성에게 부과하는 위치를 비판하면서도, ‘여성만의 독법’처럼 본질주의적 결론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텍스트와 해석 주체가 놓여 있는 사회적·성별적 구조를 자각하는 일이며, 그런 자각을 통해 텍스트와의 관계를 새롭게 짜는 것이다. 『저항하는 독자』는 이 과정을 탁월하게 보여 주는 책으로, 이후 미국 페미니즘 비평의 출발점이자 참고문헌으로 끊임없이 호출되어 왔다.
한국어판에서는 독자적 가치가 있는 구성도 하나 포함했다. 이 책의 1장에서 분석하는 네 편의 미국 단편소설―워싱턴 어빙의 「립 밴 윙클」, 셔우드 앤더슨의 「이유를 알고 싶다」, 너새니얼 호손의 「모반」, 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에게 장미를」―을 옮긴이가 새롭게 번역해 함께 실었다. 한국에서 이 작품들의 번역본을 찾기가 쉽지 않은 현실을 고려해, 독자들이 본문의 분석을 바로 대조해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다. 이 책의 논의를 따라가며 텍스트를 직접 확인하고 싶은 독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목차
서문
서론 문학의 정치학에 대하여
1장 노골적인 기획 : 미국 단편 소설 네 편
아메리칸 드림 : 「립 밴 윙클」
미국에서 남자 어른으로 자란다는 것 : 「이유를 알고 싶다」
여성이여, 과학을 조심하라 : 「모반」
「에밀리에게 장미를」을 위한 장미
2장 『무기여 잘 있거라』 : 헤밍웨이의 ‘분노에 찬 암호문’
3장 『위대한 개츠비』 : 피츠제럴드의 영주의 초야권
4장 『보스턴 사람들』 : 헨리 제임스의 영원한 삼각관계
5장 『미국의 꿈』 : “훌라, 훌라” 마녀들이 말했다
부록 네 편의 단편
립 밴 윙클
이유를 알고 싶다
모반
에밀리에게 장미를
옮긴이 후기
책속에서
페미니스트 비평가의 첫번째 행동은 동의하는 독자가 아니라 저항하는 독자가 되는 것이어야 하며, 동의를 거부함으로써 우리 안에 이식된 남성의 정신을 몰아내는 과정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엑소시즘의 결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에이드리언 리치가 “과거를 돌아보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오래된 텍스트를 새로운 비평적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행위”라고 설명한 다시-보기의 능력이다. 그리고 이러한 다시-보기의 결과, 책은 더 이상 전에 읽혔던 방식으로 읽힐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우리를 무의식적으로 자신들의 기획으로 묶어 두었던 힘을 잃게 될 것이다. 여성들이 문학 작품을 우리 현실을 반영하는 작품으로 다시 써서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것이 되게 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작품들이 반영하는 현실을 정확하게 명명하는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문학 비평을 폐쇄적인 대화에서 적극적인 대화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무기여 잘 있거라』와 『위대한 개츠비』는 모두 사랑 이야기로, 두 작품은 함께 남성의 권력 유지에 낭만적 사랑의 신화가 다양하게 활용되는 방식을 보여 준다. 이에 더해 「립 밴 윙클」과 「모반」에 드러난 희생양 만들기의 기능이 자세히 설명된다. 사랑과 권력이라는 주제를 더욱 명징하게 연결함으로써 『위대한 개츠비』는 『무기여 잘 있거라』가 감추고 묻어 버리려 했던 적대감을 의식에 더욱 가까이 가져온다. 『보스턴 사람들』과 『미국의 꿈』은 전혀 예상치 못한, 어쩌면 가장 매혹적인 조합을 이룬다. 두 작품 모두 낭만적인 사랑의 모호함이 해소되고 권력의 문제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제임스의 소설은 남성의 권력, 여성의 무력함이라는 사회적 현실을 묘사하지만, 메일러의 소설은 그 현실을 뒤집는 사회적 신화, 즉 여성의 권력과 남성의 무력함을 만들어 냄으로써 이를 부정한다. 그러나 결국 메일러의 신화는 자신이 부정하는 현실을 유지하는 데 그 목적이 있을 뿐이다.
앤더슨의 이야기에는 페미니즘적 차원이 존재한다. 성장에 대한 소년의 저항은 남성으로 성장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으로 명확히 정의되며, 이러한 거부의 근원은 그가 속한 문화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와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남성에게 가부장적 체제가 미치는 결과를 표현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여성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여성 독자는 여전히 순전히 남성과 그들의 딜레마만을 다루는 이야기, 여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하등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마주한다. 이러한 배제는 특히 앤더슨의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립 밴 윙클」을 읽는 여성의 상황과 유사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면 더욱더 불쾌해진다. 용납할 수 없는 정체성의 결여가 두 경우 모두에서 트라우마의 요인이 되며, 이름 없음, 자기혐오, 미결정상황[림보]이 그 결과로 나타난다. 그러나 분열된 자아가 남성일 때 이러한 현상은 예술과 의식의 소재로 더 쉽게 정당화된다. 다 알면서도 어빙의 ‘온화한’ 성에 대한 분석에는 미소를 짓고,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여성이 겪는 갈등을 상상이 아니더라도 그저 사소한 일로 치부하게 될 독자들은 앤더슨의 이야기가 담고 있는 ‘보편적인’ 비극에 예리한 통증을 느끼고 소년들이 남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에 깊이 공감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