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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2638119
· 쪽수 : 252쪽
· 출판일 : 2023-05-24
책 소개
목차
1부 여전히 좋아하지만
여전히 좋아하지만 9
목련과 택시 16
요즘 나는 이런 것들을 헤아리고 있어 23
아무튼, 싫음 31
할머니의 드립백 커피 40
거기에 있던 나의 무화과 50
여름의 연인을 좋아하세요… 60
멘토 선생님들께 70
그냥 믿어야 할 때 80
나를 기른 닭꼬치 87
저 많은 사람 중에서 97
왜 오래된 연인은 전처럼 키스하지 않을까 105
천천한 죽음 112
2부 우리가 최선을 다해볼 미래
타인의 기쁨이 되는 기쁨 123
학생이라는 쉬운 부름 133
나와 다른 나의 A에게 139
그저 당신과의 관계 145
쓸모없는 선물에 대한 과장 154
나에게 유리한 방식 162
최악을 상상하는 능력 173
수요 없는 공급 187
구림의 적립 195
놀리고만 싶은 교양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205
도둑맞은 섹스 212
웃는 듯 우는 듯 223
우리가 최선을 다해볼 미래 234
epilogue 아무리 헤아려도 244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는 물끄러미 그 구절을 읽고 또 읽었어. 이따금 네 계정에 찾아간 건 거기 남아 있는 것들이 무척 아름답게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하니까 말이야. 오래전 우리가 편지를 주고받았을 때도 그랬어. 다정하지만 문득 낯설게 느껴지는 네 문장에서 나는 여전히 네가 깨끗한 물 같다고, 그러나 전처럼 함부로 첨벙일 수 없겠다고 생각했어. 대신 그렇기에 상상할 수 있었지. 윤은 고요히 그러나 성실히, 얼었다 녹았다, 흐르다 고이기를 거듭해왔구나. 나는 알 수 없는 과정들이 거기 있구나. 그것이 네 문장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구나.
어떻게 늙고 싶든 그건 우리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 닐 거야. 그런 생각을 움켜쥐면서, 나는 동거인에게 할머니가 가실 때가 된 것 같다고 자주 말하곤 했다. 누가 물으면 그가 죽어가고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빠르게 받아들이면 덜 아프다는 양, 상실을 미리 수긍해보려는 노력이었다. 다만 그 말을 뱉을 때마다 처음 느껴보는 통제 불가한 슬픔이 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 감각은 매번 나의 노력이 무용하다는 것은 물론, 내가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법을 전혀 모른다는 걸 상기시켰다.
어제는 동네 어귀에서 붕어빵을 조금 샀다. 그제는 왜 안 보이셨느냐 물으니 붕어빵 아주머니는 단속 때문에 요즘 이곳저곳 돌아다닌다고, 날이 풀리기 전까지 바삐 팔아야 한다고 했다. 사려던 붕어빵을 천 원어치 더 사고 천막을 나오는데 바람이 매서웠다. 코가 시렸지만, 품속 붕어빵 덕에 몸은 따뜻했다. 어쩐지 겨울이 끝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은 기분으로 걸었다.
매일 오고 가는 길에는 탄천을 지난다. 여름엔 물장구를 치던 오리들이 있었는데, 한겨울엔 고요히 얕은 물결만 넘실거렸다. 빈 탄천을 보며 생각했다. 매 겨울 오 리들은 어디로 갈까. 오리들이 돌아올 즈음 붕어빵 아주머니는 어디로 갈까. 사라진 이들의 오늘과 누군가의 안 부를 묻기엔 지나치게 깨끗한 거리를 걸으면서, 모두 어디로 갔는지, 나는 늘 그런 게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