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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92828879
· 쪽수 : 362쪽
· 출판일 : 2025-06-20
책 소개
목차
그는 일어날까? / 7
길과 길 / 53
든든한 집 / 81
수수께끼 / 117
정상청은 죽었다 / 149
미혹 / 191
부끄럽지 않은 사랑 / 219
서쪽 하늘, 붉은 노을 / 255
잃어버린 시간 / 281
해설
서쪽 하늘 붉은 노을 속에 아직 끝나지 않은 짝사랑 _ 임철균 / 327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선배의 부탁은 어려운 수학 문제가 틀림없었다. 내 실력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난제였다. 하지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라는 말처럼, 같이 살면서 슬슬 풀어가면 풀지 못할 문제도 아니었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어머니가 그를 기둥처럼 붙들고 살았겠어? 정말 나, 바보 아니야? 나는 비로소 내가 바보천치라는 걸 절감했다. 후회막급이었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서 나는 선배에게 절반의 성공이라고, 문자를 보냈다. 답신은 기다리지 않았다. 이건 누가 봐도 실패한 게 아니니까.
이윽고 아파트 앞에 도착한 나는 힘껏 초인종을 눌렀다. 이 집이 이제부터 내가 살 집이라는 생각이 들자 색이 바랜 현관조차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인기척이 없자 나는 다시 초인종을 힘차게 눌렀다. 몇 번이나 눌렀을까. 마침내 안에서 인기척이 조그맣게 들렸다. 누구, 누구세요? 나는 맥이 풀린 듯한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도 모르게 크게 외쳤다. 누군 누구예요, 송주희지요. 이제부터 오빠하고 평생을 같이 살 여자. 나는 그 말을 뱉고 혼자 그만 쿡, 웃고 말았다. 웃지 말아야 하는데도 웃음이 자꾸 터져 나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소리가 마치 오래전에 예정되었던 일처럼 조금도 쑥스럽지 않았다. -「그는 일어날까?」 중에서
새잎이 돋기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공원묘지 주변은 벌써 여름이 온 것 같았다. 때늦은 바람이 가끔 옷깃을 파고들었지만 그래도 오는 계절은 막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산소로 올라가면서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왜, 하필이면 이렇듯 높은 곳에 자리를 잡았는지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이러다가 더 늙으면 혼자 걸어서 찾아올 수도 없을 것 같아 걱정스러웠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양손에 삽과 음식 꾸러미를 든 남편은 앞장서서 올라가고 있었다. 구부정한 허리를 흔들거리며 걷는 남편의 모습이 마치 잘 마른 삭정이 같았다.
산소는 변한 게 없었다. 작년 가을에 왔을 때 양쪽 화병에 꽂아두었던 흰 국화가 마르고 시든 채 머리를 숙이고 있다는 것뿐, 봉분도 비석도 상석도 모두 물로 씻은 듯 깨끗했다. 한숨을 길게 토해낸 나는 멀리 내려다보이는 주차장을 살펴보았다. 주차장에는 검은색 승용차와 흰색 승용차가 한 대, 그리고 빈 트럭이 한 대 누워있을 뿐 조용했다. 주영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남편의 얼굴을 살폈다. 산소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잡초를 뽑고 있는 남편의 얼굴에서는 그러나 초조한 빛 따위는 엿볼 수가 없었다.
주영이가 올까?
글쎄 기대하지 말라니까. -「길과 길」 중에서
딸이 오겠다는 연락을 할 적마다 나는 가슴이 뛰곤 하였다. 객지에 나가 있는 딸자식이 다녀가겠다고 하면 응당 반가워야 할 터인데 그렇지 않았다. 왜, 또 무슨 일 때문에 온다는 걸까, 불길한 예감이 앞섰다. 아니나 다를까. 그 예상은 딸이 아파트 문을 들어설 때 이미 적중한 셈이었다. 딸은 숨넘어가지 않으니까 좀 앉아서 차근차근 얘기하라고 일렀으나 내 말은 귓등으로 흘리고 허리를 곧추세운 채 항상 하던 대로 그날도 본론부터 꺼냈다.
나, 이번에 결혼하기로 했어. 며칠 뒤에 인사시키러 그 사람 데리고 올 테니까 준비 좀 해줘. 보통 사람 아니니까 은미랑 아빠한테도 단단히 일러주고……. -「든든한 집」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