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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89171698
· 쪽수 : 338쪽
· 출판일 : 2023-12-29
책 소개
목차
머리말
1. 최치원-유시연
2. 이규보-은미희
3. 김시습-엄광용
4. 허균-정라헬
5. 정철-정수남
6. 윤선도-마린
7. 김만중-김민주
8. 박지원-하아무
9. 김삿갓-채희문
한국고전문학사 연표
집필 작가 소개
저자소개
책속에서
중편소설 최치원-유시연
최치원은 신라시대 최고의 문장가이자 시인이다. 열두 살 어린 나이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빈공과 시험에 합격하고 벼슬을 지낸 그는 이후 절도사 고변의 종사관으로 병영 막사를 따라다니며 각종 문서를 정리하고 썼다. 특히 농민 반란의 우두머리인 황소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가 쓴 격문은 상대방의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빼어나다. 신라에 귀국한 후 최치원은 개혁안인 시무 10여조를 진성왕에게 바쳤으나 무위로 끝난다.
최치원은 제국 당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보았으며 천 년 왕국 신라의 쇠락을 몸소 체험했다. 그는 결국 가야산으로 은거에 들어간다. 해인사에 머무른 흔적이 있으며 가야산으로 들어가 신선이 되었다는 말도 전해진다. 최치원의 마지막을 아는 이는 없다. 그는 전국을 정처없이 유랑하였던 듯하다. 그의 흔적이 곳곳에 전해내려오기 때문이다. 최치원 관련 전설이 많은 것으로보아 그의 능력을 안타까워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계급사회였던 신라에서 육두품인 최치원이 그의 기량을 펼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왕조가 몇 번이나 바뀌며 천 년 전 최치원이 왕명으로 고승들을 위해 쓴 네 분의 비문, 사산비명이 현재 남아 있는 것도 신비스럽다. 쌍계사 대웅전 마당에는 그가 쓴 진감선사대공탑비가 세워져 있다. 세월의 흔적이 스쳐가기는 했어도 그의 높은 식견과 필체를 확인하는 마음은 감회가 새로웠다. 그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문중 사당에 하루 날을 잡아 찾아가던 날은 봄날이었다. 최치원이 당나라로 갈 때나 돌아올 때도 따뜻한 봄날이었다. 신선의 면모를 지닌 그는 넉넉한 풍채와 도인 같은 모습으로 살아 있었다. 촛불을 켜고 배향한 후 마주 앉아 그의 안식을 위해 기원을 했다.
중편소설 이규보- 은미희
이규보(1168~1241)는 고려시대 신흥 사대부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당대의 대문장가이다. 그가 남긴 시들은 당대의 유행에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시풍을 견지했다는 것만으로도 의의가 깊다. 당시 많은 문인들이 형식미를 강조하며 선인들의 문장을 차용해 자신들의 시를 지었던 것과는 달리 이규보는 고문에 사로잡히지 않고 오롯이 자신이 보고 느끼는 생각과 감흥을 자유롭게 시와 산문으로 남김으로써 자신만의 독창적인 문학세계를 형성했다. 특히 그는 민족서사시인 ‘동명왕편’을 비롯해 술을 의인화한 소설 ‘국선생전’ 같은 다양한 저술활동을 통해 고려시대의 문학사적 지평을 넓히고 민족애와 자긍심을 심어주는데 큰 역할을 했다. 몽골의 침략으로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몽골의 황제에게 보낸 진정표로 나라를 구한 이야기가 가장 극적이다. 하지만 이규보에 관해서는 두 가지 평가가 존재한다. 당대의 대문장가로서 시성(詩聖)이라는 평가와 함께 최충헌과 최우로 이어지는 무신정권시절, 지나치게 그들과 밀착된 행보를 보였다는 비판도 있다. 그가 남긴 시는 팔천여 수에 이르나 안타깝게도 현재 전하는 시는 이천여 수에 불과하다.
단편소설 김시습- 엄광용
‘오세 신동’이라 일컬어지는 김시습도 과거에 한 번 낙방한 적이 있다. 그가 열다섯 살 때 돌아가신 친모의 시묘살이 3년을 마쳤을 무렵, 단종이 즉위하고 나서 처음 시행한 과거시험에서 떨어졌던 것이다. 이처럼 절망에 빠져 있을 바로 시기에 수양대군이 어린 임금을 내쫓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계유정난이 일어나자, 김시습은 거꾸로 가는 세상을 한탄하며 불문에 들기 위해 입산한다. 이때 그가 출가하여 노승으로부터 받은 법명은 ‘설잠’이었다. 그러나 채 3년이 지나지 않아 단종 복위 사건으로 사육신이 사지가 찢기는 거열형에 당하자, 김시습은 하산하여 그 시신들을 거두어 노량진 언덕에 장례를 지낸다. 이때부터 김시습의 방랑 생활은 시작되었으며, 나이 서른 살이 훌쩍 넘어서부터 경주 금오산(지금의 남산)에 토굴을 짓고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현재 전해지고 있는『금오신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