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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문 에세이
· ISBN : 9791193044315
· 쪽수 : 172쪽
· 출판일 : 2025-06-10
책 소개
목차
들어가며 일기장이 방에 있는 이유
1부 세상의 속도에 압도되지 않는
버스 맨 뒷자리
가지치기
2부 일기의 속도
헬스장에서
겨울 이별
겨울 이별2
3부 세상의 클리셰를 부수는
일기에 쓰는 것
금기
네모의 꿈
행사와 행사 사이
저자 사인본
종이 묵주
도넛과 탕수육
4부 일기의 클리셰
관망과 자존
스몰 토크
진짜와 가짜
황조롱이가 다녀온 곳
원 데이
미완의 이미지
나가며 기억하라, 당신은 하나다
저자소개
책속에서
우연히 나로 태어난 내게 이제껏 세상을 발견하기 가장 적합한 도구는 글과 그림이었다. 세상을 연역적으로 대하기 어려운 나는 매일의 기록이라는 채집 활동을 통해 주위 환경과 나름의 관계망을 만들어가는 중이고 글과 그림이라는 두 도구로 일기를 쓰는 시간은 하루 중에서 가장 적적하고 평화롭다. 이 또한 안전해서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쓰면서 안전해지는 것뿐이다. 내게 일기가 상징하는 공간은 넓고 아늑한 거실이 아니라 휴대용 돗자리에 가깝다.
이 휴대용 돗자리는 비상시에 밖으로 탈출할 수 있는 완강기가 될 수 있다. 강력한 직사광선을 막는 파라솔이 될 수 있다. 근력을 길러주는 계단이 될 수 있다. 숨과 시야가 트이는 옥상이 될 수 있다(의심쩍은 수사에 거부감이 든다면 다음의 장황한 접근은 어떨지). 일기는 파도가 밀려오는 모래사장에 그리는 크로키와 만다라 또는 뜨개질, 스트레칭, 마늘 까기에 이르기까지 묽고 연한 심경으로 할 수 있는 그 어떤 일과도 교집합이 드넓다.
시장에서, 거리에서, 카드 단말기 앞에서 그들은 김장 재료를 산 한 무리의 고령층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버스 뒷자리의 그들은 장바구니의 창백한 무, 파, 새우젓과는 전혀 무관해 보일 정도로 영민하고 생기 있는 개인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나는 곧 무거운 짐을 든 채 입을 다물고 집에 들어갈 각자의 뒷모습을 그려갔다. 다시 비워지고 말 뒷자리 의자들을 떠올렸다.
누구에게도 보여줄 필요가 없는 문장. 금세 휘발하고 말 장면과 심상. 사진과 영상으로 담을 수 없는 풍경. 뭉개진 원경에서 골라내는 각각의 존재들. 일기에 그런 걸 쓰고 그리는 일도 버스 뒷자리에 앉아 있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