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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문 에세이
· ISBN : 9791193044315
· 쪽수 : 172쪽
· 출판일 : 2025-06-10
책 소개
저자와 독자가 대개 일치하며,
쓰는 동안 생기 있는 고독을 선사하는 일기는
일종의 종이 묵주, 종이로 만든 묵주일 수도 있지 않을까.”
소란스러운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날이 있다. 세상은 언제나 태연하게 내 하루를 박살낼 돌을 던지고, 어찌해볼 새 없이 돌에 맞은 날에는 무얼 읽고, 무얼 들어도 눈과 귀 언저리만 맴돈다. 그럴 때 일기를 써본 사람은 알 것이다. 맺힌 말을 술술 풀어내고 일기장을 덮으면, 마음속에 불시착한 돌이 어느새 일기장으로 옮겨가 있는 기분을.
SF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 박문영은 그렇게 수천 번의 일기를 썼다. 세상에 홀로 떨어진 기분이 들 때마다 누구에게도 보여줄 필요 없는, 보여져선 안 될 그만의 빈 지면을 급히 찾아갔다. “산만해서, 관심사가 수시로 변해서, 한 우물을 진득하게 파지 못해서, 겁이 많아서, 말을 매끄럽게 할 수 없어서” 택한 것이 일기다. 네모난 일기장은 그에게 언제든 펼칠 수 있는 휴대용 돗자리, 안전한 직사각형의 방이 되어주었다.
‘그러므로 나는 일기를, 일기는 나를 지킬 수 있다’는 부제가 가리키듯 『종이 묵주』는 일기라는 매일의 글쓰기로 자기 자신을 단련해온 과정을 담았다. 과거의 일기 몇 편을 선별해 모은 책이 아니라 일기를 소재로 쓴 에세이들을 엮은 책이다. 일기를 쓰는 것은 혼란한 세상 한가운데 고요히 앉아 묵주를 한 알 한 알 매만지는 것과 같다. 스물여덟 개의 묵주알이 모여 한 달을 표현한 이 책의 표지처럼, 모두에게 일기를 쓸 수 있는 나날이 더 주어지기를, 그렇게 ‘일기인’이 되어 일기를 쓰며 더 안전하고 잠잠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펴낸 책이다.
한낱 종이 묶음이었던 일기장이 어느 날 내게 말을 걸었다
“너는 가고 있다, 하고 있다, 살고 있다”
“돌아보면 어떤 곳에 살든 발밑이 따뜻하거나 평평했던 적이 드물었다.” 박문영 작가가 그간 소설에 담아낸 세상은 자주 냉기가 감돌고, 믿었던 사람은 위로와 고통을 번갈아 주며, 뜻밖의 상처가 일상을 무너뜨린다. 현실의 박문영은 그럴 때 일기장을 펼치고 숨을 쉬었다. “나를 역할 정도로 끊임없이 기록했다. […] 손에 펜이 없다면 다른 걸 들게 될까 봐 겁이 난 걸까.” 내가 여기 살아 있다고 발버둥친 흔적은 일기장 군데군데 좌표로 남아 마침내 긴 궤적을 그렸다.
일기장은 그런 매 순간을 묵묵히 지켜보고, “인격이 없는 주치의”가 되어 말을 걸어왔다. 어느 날 일기는 오늘의 인상적인 사건을 한 가지라도 알려달라고 채근한다. 어떤 날 일기는 작가를 홉떠 보며 아픈 말을 한다. 또 다른 날 일기는 그런 건 좀 걱정하지 말라는 듯 하품을 한다. 그리고 일기는 담담히 속삭인다. 너는 가고 있고, 하고 있고, 살고 있다고. ‘나’를 주어에 두고 내면을 파고드는 일기, ‘일기’를 주어에 놓고 ‘나’와의 건강한 거리감을 회복하는 에세이가 서로를 마주하는 이 책이 어느덧 왕성해진 일기 에세이 시장에서 특별한 자리에 놓이는 이유다.
해가 좋은 날, 일기는 우쭐거리며 머리통을 쓰다듬는다. “할 수 있다고 여겼는데 더 잘했다. 할 수 없다고 여겼는데 해냈다.” 먹구름이 낀 날, 일기는 팔짱을 낀 채 나를 홉떠 본다. “너는 세심하고 주도면밀하다. 꼼꼼하고 음흉하다. 상냥하고 겉과 속이 다르다.” 그리고 아주 많은 날, 일기는 담담하게 읊조린다. “너는 가고 있다. 너는 하고 있다. 너는 살고 있다.” 그래. 나는 가고 있다. 나는 하고 있다. 나는 살고 있다. 도망친 일벌처럼 지낸다 해도, 일하지 않는 벌 역시 그저 벌이듯이.
어떤 감정은 손으로 적어낸 뒤에야 비로소 지상에 내려앉는다
일기, 나의 일부와 둘레를 돌보는 시간
별것 아닌 것도 한껏 부풀려 내보여야 하는 자기 광고의 시대, 일기라는 문학은 독특한 위치에 있다. 글과 그림이 생계수단인 박문영 작가에게 일기는 “출간될 리 없고, 될 수도 없으며, 그래선 절대 안 되는” 것이기에 더 간절했다. 일기장에는 어떤 얘기든 마구 떠들어댈 수 있다. 발이 없어, 어디에도 가지 못할 테니. “그는 세상 누구도 모를 나의 속도전을 물끄러미 지켜본다. 트랙이 비워지면 비워지는 대로, 채워지면 채워지는 대로. 나약한 나와 취약한 일기. 우리는 서로에게 뜨겁게 무심하다.”
일기 쓰기는 오직 일기장과 나, 둘 사이에서 은밀하게 진행되는 일이기에, 때로는 남의 의심스런 눈초리를 받기도 한다. 도대체 혼자 뭘 그렇게 쓰는 거야? 데스노트라도 만드나?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일기는 “‘나’라는 임시적이며 유한한 렌즈가 포착한 굴절의 풍경을 빈 지면에 쌓는 것”, 어쩌면 “편향과 왜곡의 기록”일 수 있다. 그러나 박문영 작가는 말한다. “하루를 자잘하게 닦다 보면 종종 세상을 감각하는 창이 같이 닦일 때가 있다”고. 아무리 시시하고 쪼잔하고 위선적인 이야기로 채워진다 해도 일기는 결국 그런 나를 돌아보는 거울이 되고, 바깥으로 향한 안테나를 곧게 바로잡아준다.
중요한 건 스스로에게 말 걸기를 멈추지 않는 것. 세상이 아무리 괴롭혀도 차가워지지 않는 것. 그래야 이 요란한 땅에 발을 단단히 디디고 살 수 있지 않을까. “매일 읽고 쓰고 움직이는 것만이 내가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최소한의 실재적 방식이라는 사실을 체감한다. 이 작은 행위가 나를 방임하지 않고 나의 일부와 둘레를 돌보는 일이라 추측한다.”
“우리는 하나가 아니더라도 가까스로 하나다”
나를 지긋이 바라보는 일기장의 시선을 느끼며, 그렇게 일기는 계속된다
‘일기(日記)’라는 단어 자체에서 드러나듯, 일기는 하루 단위로 초기화되는 과업이다. “살아 있는 동안 일기를 꾸릴 기회가 24시간 단위로 생성된다”는 것은 인생을 신선하게 해줄 새로운 바람처럼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은근한 부담이기도 하다. 새 일기장을 장만하려다 문득 쓰다 만 일기장이 떠올라 주저한 기억, 다들 한 번쯤은 있지 않을까?
“중세 소작농이 길드에 감자를 납품하듯” 묵묵히 일기를 쓰는 박문영 작가도 일기를 멈춘 날들이 있다. 그런 날의 빈 페이지도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 “쓰이지 않은 일기는 공백을 통해 뒤늦게 말한다. 이때의 나는 슬펐다. 허약했다. 어쩔 줄을 몰랐다.” 그렇게 촘촘하고도 느슨하게 이어진 그의 일기는 이제 막 시작할 소설의 씨앗(「가지치기」)이 되기도 했고, 반드시 건네야 했던 고백을 조금쯤 수월히 할 디딤돌(「겨울 이별」 1, 2)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창작의 선행 도구로서 일기의 유용함에서 나아가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매일매일 성실히 쓰는 행위 자체다. “세상의 큰 말은 언제나 작은 말로 엮여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일기 쓰기에 대한, 그리고 자기 자신을 향한 다짐을 책 곳곳에 심어두었다. 그리고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권한다. 일기를 써보라고. 쓰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그때 일기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지켜보는, 꼭 나를 닮은 서로의 동맹 관계가 되어줄 것이다.
“그저 나만큼의 나를 담아낸 기록, 그러므로 나에게서 아주 도약하지도 비상하지도 않은 이야기. 활자와 나는 서로를 데면데면 쳐다본다. 지친 우리는 서로 경쟁할 생각이 없다. 공격할 의지가 없다. 나는 너의 결점을 안다. 너도 나의 결점을 안다. 나는 너의 강점을 안다. 너도 나의 강점을 안다. 그런 연유로 우리는 하나가 아니더라도 가까스로 하나다.”
목차
들어가며 일기장이 방에 있는 이유
1부 세상의 속도에 압도되지 않는
버스 맨 뒷자리
가지치기
2부 일기의 속도
헬스장에서
겨울 이별
겨울 이별2
3부 세상의 클리셰를 부수는
일기에 쓰는 것
금기
네모의 꿈
행사와 행사 사이
저자 사인본
종이 묵주
도넛과 탕수육
4부 일기의 클리셰
관망과 자존
스몰 토크
진짜와 가짜
황조롱이가 다녀온 곳
원 데이
미완의 이미지
나가며 기억하라, 당신은 하나다
저자소개
책속에서
우연히 나로 태어난 내게 이제껏 세상을 발견하기 가장 적합한 도구는 글과 그림이었다. 세상을 연역적으로 대하기 어려운 나는 매일의 기록이라는 채집 활동을 통해 주위 환경과 나름의 관계망을 만들어가는 중이고 글과 그림이라는 두 도구로 일기를 쓰는 시간은 하루 중에서 가장 적적하고 평화롭다. 이 또한 안전해서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쓰면서 안전해지는 것뿐이다. 내게 일기가 상징하는 공간은 넓고 아늑한 거실이 아니라 휴대용 돗자리에 가깝다.
이 휴대용 돗자리는 비상시에 밖으로 탈출할 수 있는 완강기가 될 수 있다. 강력한 직사광선을 막는 파라솔이 될 수 있다. 근력을 길러주는 계단이 될 수 있다. 숨과 시야가 트이는 옥상이 될 수 있다(의심쩍은 수사에 거부감이 든다면 다음의 장황한 접근은 어떨지). 일기는 파도가 밀려오는 모래사장에 그리는 크로키와 만다라 또는 뜨개질, 스트레칭, 마늘 까기에 이르기까지 묽고 연한 심경으로 할 수 있는 그 어떤 일과도 교집합이 드넓다.
시장에서, 거리에서, 카드 단말기 앞에서 그들은 김장 재료를 산 한 무리의 고령층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버스 뒷자리의 그들은 장바구니의 창백한 무, 파, 새우젓과는 전혀 무관해 보일 정도로 영민하고 생기 있는 개인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나는 곧 무거운 짐을 든 채 입을 다물고 집에 들어갈 각자의 뒷모습을 그려갔다. 다시 비워지고 말 뒷자리 의자들을 떠올렸다.
누구에게도 보여줄 필요가 없는 문장. 금세 휘발하고 말 장면과 심상. 사진과 영상으로 담을 수 없는 풍경. 뭉개진 원경에서 골라내는 각각의 존재들. 일기에 그런 걸 쓰고 그리는 일도 버스 뒷자리에 앉아 있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