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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파리에서 만난 말들](/img_thumb2/9791193811030.jpg)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3811030
· 쪽수 : 264쪽
· 출판일 : 2024-03-15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서른네 단어가 들려준 한 문명의 사연
1부 달콤한 인생을 주문하는 말
Doucement(두스망: 부드럽게)-아가의 머리를 매만지는 손길 같은
Vivre(비브르: 살다), Survivre(쉬르비브르: 생존하다)-생을 누릴 권리를 위해
Scrupule(스크뤼퓔: 세심함)-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마음
Il faut oser(일 포 오제: 감히 시도해야 해)-거리의 부랑아를 구도자로 바꾼 힘
Apero(아페로: 식전주)-일상의 천국을 여는 세 음절
Il fait beau(일 페 보: 아름다운 날씨로군요)-아름다움을 포착하고 찬미하는 감각
Envie(앙비: 욕망)-사소하고 경이로운 프랑스식 사치
Pain(빵)–달콤한 것은 빵이 아니다
La terre(라 테흐: 지구)-모든 생명의 어머니
Homeostasie(오메오스타지: 항상성)-인간이 우주와 하나가 될 때
Bonjour(봉주르: 안녕하세요)-순간을 어루만지는 온기
Resilience(레질리앙스: 탄성, 복원력)-바퀴 아래 짓눌렸던 인생일지라도
Bouder(부데: 삐지다)–애정 결핍의 신호
2부 생각을 조각하는 말
Epanouissement(에파누이스망: 개화)-자아가 만개하는 경이의 순간
Exception culturelle(엑셉시옹 퀼튀렐: 문화적 예외)-칸영화제에 울려 퍼진 일성
Laicite(라이시테: 정교분리 원칙)-공화국을 완성한 네 번째 가치
Transgenerationnel(트랑스제네라시오넬: 세대를 가로지르는)-조상이 남긴 업보
Lapsus(랍쉬스: 실수)-무의식을 드러내는 혀
Belle-mere(벨메르: 새어머니, 시어머니…)-나의 아름다운 새어머니
Vie par procuration (비 파르 프로퀴라시옹: 대리 인생)-왜 한국 드라마엔 늘 복수극이 등장하는가
Il s’est eteint(일 세 에탱: 그의 생명의 불이 꺼지다)-단선적 세계와 회귀하는 세계
On s’en fout(옹 상 푸: 아무도 관심 없어)-해방과 냉소, 두 얼굴의 언어
Pardon(빠흐동: 실례합니다)–갈등을 무장해제 하는 만능 에어백
Recul(르퀼: 뒷걸음질)-숲을 조망하기 위해 물러서는 지혜
3부 풍요로운 공동체를 견인하는 말
Greve(그레브: 파업)–풍요를 분배하기 위한 시간
Oligarchie(올리가르시: 과두정치)-우리의 삶은 그들의 이윤보다 소중하다
Solidarite(솔리다리테: 연대)–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으므로
Du coup(뒤 쿠)-전염병처럼 번지는 말
Denoncer(데농세: 일러바치다), Accuser(아퀴제: 고발하다)-나는 고발한다
Austerite(오스테리테: 긴축)-저항을 잠재우는 최면의 기술
Le doute(르 두트: 의심)-모든 권위주의에 대적할 첫 번째 도구
Sorciere(소르시에르: 마녀)-마녀들은 왜 화형당했을까
저자소개
책속에서
프랑스 사회에 발 딛고 사는 20년 동안, 각별한 인연으로 만난 말들을 한자리에 모아보았다. 그들을 모두 백지에 적고 나서 하나하나 차례로 응시하자 그들이 내게 길고 짧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말은 각각의 공동체가 경험과 성찰을 통해 빚어낸 열매다. 열매의 껍질을 벗겨내면 싱싱한 과육이 풍미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고, 그 속엔 더 단단한 씨앗이 웅크리고 있다. 과일이 품은 색깔과 향기, 풍미는 이야기고, 씨앗은 공동체가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해온 지혜와 철학, 경험이 응집된 정보의 결정체다. 다
음 세대에게 전해져 발아하기를 기다리는.
-〈프롤로그〉 중에서
Bonjour(봉주르: 안녕하세요), pardon(빠흐동: 실례합니다), doucement(두스망: 부드럽게), apero(아페로: 식전주)가 거친 현실에 베이거나 부딪히지 않고 유연하게 시대를 건너게 해주는 말이라면, austerite(오스테리테: 긴축)는 금융자본주의 시대의 승자들이 약자들을 현혹해 지배를 강화하는 데 쓰는 지배자의 언어다. 원인과 과정, 결과가 서로를 배반하는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du coup(뒤 쿠)를 남발하며 존재하지 않는 현상의 연계성을 허공에 지으려 애쓰는 모습은, 우리가 결핍한 요소들을 반영하는 언어적 현상이다. 그런가 하면 solidarite(솔리다리테: 연대)와 laicite(라이시테: 정교분리 원칙)는 숱한 대가를 지불하며 터득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궁극의 기술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Doucement은 ‘달콤한’ ‘부드러운’이란 의미의 형용사 douce에 부사형 어미 ment을 붙여 만든 부사다. 우리가 고기를 잴 때 육질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달콤한 배와 시럽, 설탕, 꿀 등을 넣는 것처럼, 부드러움과 달콤함이 하나의 단어 속에 들어가 복합적 의미를 구현하고 있는 모습도 재미있다. 거기에 ment을 더해 동작에 스미는 태도를 주문하는 부사가 되면, 이 어휘의 스펙트럼은 더욱 확장되어 ‘천천히’ ‘조심스럽게’ ‘살살’ ‘서두르지 말고’ ‘침착하게’라고 말하는 모든 경우에 등장할 수 있게 된다. (…)
마치 식수에 들어 있는 성분처럼, 산소와 함께 공기 중에 들어 있는 입자처럼, 날 때부터 두스망의 세례를 듬뿍 받고 일상적으로 들이켜며 성장한 이곳 사람들은 5분 늦을지언정 뛰는 법이 없다. 집단의 규율에 복종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의 평정이라 믿는, 자아에 무게중심을 두는 세계관도 뛰지 않는 이들의 문화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인일 것이다. 이는 거대 이데올로기 담론이 보듬지 못했던 개인의 자유와 욕망을 사회적 목소리로 전환하고 당당히 존재하게 해준 68혁명이 남긴 유산의 일부이기도 했다.
-〈Doucement(두스망: 부드럽게)-아가의 머리를 매만지는 손길 같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