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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인문학 > 인문 에세이
· ISBN : 9791194087809
· 쪽수 : 312쪽
· 출판일 : 2024-06-25
책 소개
목차
1 상실
2 발견
3 그리고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제가 지난주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전과는 다르게 이 표현의 생경함에 붙들렸던 까닭은 그때까지도 상을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기에 익히 알던 세계의 많은 부분이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는, 왜곡된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어서였으리라. 아버지는 분명 소풍을 간 아이처럼 멀어진 것도, 난장판인 사무실에서 사라진 중요한 서류처럼 찾을 수 없게 된 것도 아니었다. 한데 이 표현은 죽음을 에둘러 말하는 여느 말들과는 달리 면피한다거나 공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슬픔 그 자체처럼 단순하고, 애달프고, 쓸쓸하게 들렸다.
그토록 슬픈 일이 정상적이고 필연적인 이치일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충격적이었다. 상실의 여파에 남겨진 각자의 삶은 그토록 많은 상심을 담기에 너무 짧은 것처럼 보였다. 나는 역사를 좋아했는데, 내가 그 침묵과 신비조차 늘 사랑했던 역사가 돌연 서사적 스케일로 기록된 상실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특히 기록이 전혀 없을 수도 있다는 부분이 그러했다. 세계 자체가 덧없게만 보였고, 빙하며 생물 종이며 생태계가 마냥 사라지고 있는 것만 같았고, 변화의 보폭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영원이라는 고통스러운 관점으로만 지켜보도록 허락된 것처럼, 저속 촬영한 것처럼 급속도로 느껴졌다. 하나같이 전부 위태롭고 유약하게만 보였다.(18)
잃어버린 결혼반지 하나 때문에 동네 공원의 소박한 지형도가 로키산맥으로 바뀔 수도 있다. 하이킹을 하다가 아이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평화로운 개울과 숲이 무시무시한 황무지로 돌변하기도 한다. (상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경외와 비탄처럼, 상실은 주변 환경과 우리의 크기를 단번에 변화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무언가 중요한 것이 사라질 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작아지고 이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광활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