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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6253394
· 쪽수 : 160쪽
· 출판일 : 2018-02-01
책 소개
목차
1 여는 시
詩로 쓴 반생기半生記
거룩한 노래
고혹 蠱惑
외로움의 부름
그러면 가리까
외로움
詩로 쓴 반생기半生記
2 생명의 과실果實
머리말
탄식
유리관 속에
사랑하는 이의 이름
귀여운 내 수리
싸움
無題
탄실의 초몽 初夢
길
분신
저주
기도
그쳐요
3
따스한 맘을 못잊어서
신시新詩
언니 오시는 길에
무제
창궁蒼穹
달밝다기에
五月의노래
황혼 黃昏
만년청 萬年靑
悲歌
비련 悲戀
수건 手巾
시내의 흐름아
마세요
외로움의 부름
4
애인의 선물
불꽃
희망 希望
무제
바람과 노래
秋景
貞節
郭公
두마음
시詩로 쓴 반생기
詩로 쓴 반생기半生記
5
석공의 노래
두벌꽃
고구려성을 찾아서
나 하나 별 하나
생물과 같이
石工의노래
尋秋*
두어라
추강씨秋江氏에게
6. 닫는 시
유언
유언
戀歌
그믐밤
번역시
웃음
나는 찾았다
주장 酒場
단편 소설
의심의 소녀
꿈 묻는 날 밤
나는 사랑한다
모르는 사람 같이 (콩트)
책속에서
그러면 가리까
긴 병자의 임종같이
흐리든 날이 방금 숨질 그때
왜? 당신은 머리를 돌립니까?
고운 꽃밭에 날이 그몰면*은
태양이 꽃 앗긴가 하련마는 아아
그대 앞에 내가 섰을 때
머리 돌리던 그대 위해서 아아
그러면 울던 내가 가리까?
그러면 내가 가릿가
한 영혼이 한 영혼에게
기꺼운 만남을 준것도
한행복幸福의 끄나풀이
우리를 얽어맨 것도
아아 또 내가 그대앞에 선 일도
고목枯木에 꽃이 핀 일까지도
다 잊어버리고 아아
그러면 웃던 내가 가릿가
오오 그대
오오 그대
가시덩굴옆에 꽃장미같이
내가 인생을 헤매일 때
빵긋 웃고 머리를 든
오오 그대
문란한 꽃을 사랑치않는 대신
사람을 사랑할줄 아는 그대
가시 같은 시기를 품고
내 양심을 무찌르지 않는 그대
가시덩쿨에 무찔린 나를
인생의 향기로 살려낸 그대
오오 그대여 내 사람이여
《조선일보》 1926. 8. 19
* 저물면의 옛 말
발문
김소월처럼 한국인의 민족적 정감이 깊이 담긴 고통과 사랑의 언어
신현림
김명순, 그녀를 위해 나는 꽃을 샀다. 그녀의 문학을 매장시키고 조국에서 추방시킨 온갖 루머와 상처를 풀어드리고 싶어 침향을 피웠다. 침향은 실타래처럼 풀어져갔다. 흰 연기도 가늘게 피어났다. 나는 기도를 드리며 되뇌었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고, 얼마나 배곯다 미쳐 죽어갔느냐고 그녀의 고운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울어주고 싶었다. 이제 당신은 당연히 한국대표시인이며, 아름답고 아픈 시를 사랑하는 한국인들이 참으로 많아질 거라고 되뇌었다. 김소월만큼 당신을 귀하게 여길 거라고. 당신의 시 “두벌꽃”처럼 꽃지고 난 후 새순에서 다시 피는 꽃인듯 살아나는 그녀를 생각하였다.
세계사, 문학과 예술의 역사는 남성들의 역사였다. 남성에 의해 재단되고 선택되어왔다. 역시 그녀도 남성들 세계에서 지워진, 의식 있고, 유능하고 고결한 정신을 가진 여성이었다. 한국시문학사에서의 선구적인 위치에 있음에도 정당한 평가를 못받은 채 80년 가까이 묻혀 있었다. 김명순의 시세계는 백석보다 먼저 평안도 방언이 빛나있었다. 김소월처럼 한국인의 민족적 정감과 서정이 깊이 담겨있다. 섬세하게, 사랑의 언어로 자전적인 뼈아픈 고통과 시대적인 설움이 뒤섞인 채로 애절하기만 하다. 그녀는 살아서 진지한 평가는 커녕 그동안 완전히 매장된 상태였다. 김명순의 조명은 너무 늦지만, 너무나 소중한 한국문학사의 재발견이다.
김명순은 누구인가. 어떤 시인이었는가.
우연히 여성신문에서 그녀의 기사를 보게 되었다. 오래전 문학사의 기록에서 전혀 못보았던 그녀였기에 놀랍고 새로웠다. 이후 도서관에서 그녀 시와 많은 자료를 찾으면서 그녀를 하나씩 알아갔다. 내 일을 도와준 20대 인생후배는 김소월 시보다 더 좋다는 의견이었다.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일제 강점기 그 어떤 남성시인들을 넘어서는 역량을 보여주었다고 느껴졌다. 이 의견에 힘입어 더 찾아보게 되었다. 드디어 등단 백년 기념 행사가 조용히 기지개를 켜면서 살아서 남성위주의 문단에서 매장당했던 김명순은 죽어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등단 100년의 김명순의 시세계는 김소월과 맞닿은 한국인의 민족적 정감과 서정이 깊이 배여있다. 그리고 “詩로 쓴 반생기”..는 백석의 시들만큼, 어쩜 그 이상 값지고, 아주 좋았다. 그녀의 언어는 감정을 파고드는 언어였다. 사랑의 언어였다. 원래 시는 사랑의 고백과도 같은 것이다. 그녀의 시는 민감하게 깨어있고, 민감하게 대항하는 직관적인 언어로 흩날린다. 그녀가 시 발표 마지막 시간으로 향해 가던 1938년의 작품 “두벌꽃”을 보더라도 김소월과 맞닿는 한국인의 민족적 서정이 짙게 스며있다. 거기에 자전적인 아픔이 뒤섞여 애절하기 그지없다.
일찍 핀 앉은뱅이 /봄을 맞으려고/피었으나 꼭 한송이/ 그야 너무 적으나 /두더지의 맘 땅속에
숨어/흙 패여 길 갈 때// 내 적은 꼭 한 생각/너무 춥던 설움에는/구름감취는 애달픔/ 그야 너무
괴로우나/감람색甘藍色의 하늘 위에 숨겨서/다시 한송이 피울까
그는 18살에 ‘망양초’라는 이름으로, 최남선·이광수가 주재한 <청춘> 현상문예에 입선해 등단했다. 시집 <생명의 과실>을 비롯해 다수의 소설을 발표했다. 1920년대, 그녀는 “조선 최초의 여성 작가”로 떠올랐다. 동인지 『창조』의 유일한 여성 동인이 됐고, 한국과 일본을 넘나들며 이광수, 김동인 등 당대 문인들의 찬사 속에서 시, 소설, 희곡, 수필 등 수십 편의 작품을 썼다.
누가 김명순을 매장시켰는가
이 질문은 누가 여성과 이 세상 생각을 만들었으며, 누가 세상을 뒤흔들어 왔는가, 에 대한 질문과도 이어질 것이다. 엄밀히 말해 세계사, 문학과 예술의 역사는 남성들의 역사였다. 남성에 의해 재단되고 선택되어왔다. 당시 조국은 일본에 강탈당했고, 그녀의 몸도 사귀는 남자에게 강탈당했고, 이별을 통보받고, 매스컴에서 당대 저명한 시인소설가 김명순의 진실을 왜곡했고, 문단의 남성작가들조차 떠도는 루머였던 그녀 인생애기를 지멋대로 이용해 글 써먹었고, 소외시키고, 결국 매장시켰다. 김동인 소설로 <김연실전>(1939)이 그것이다. 기생 출신 어머니의 ‘나쁜 피’를 받은 신여성이 자유연애 행각을 벌이다 파멸한다는 이야기. 이 소설의 모델은 탄실 김명순(1896년 평양 태생)로 한다. 김동인의 대표적인 단편소설인 "발가락이 닮았다"의 모델이 염상섭으로 악명이 자자했다는데, 또 김명순이 엄청난 악성 루머로 시달리고 깊디 깊게 상처받은 이야기를 사실처럼 소설로 연재했다. 더군다나 김명순이 오빠처럼 여겼음에도 죄의식없이 진실을 헤아리지도 않고 루머를 그대로 이용해 소설을 쓴 것이다. 친일행적에도 놀랐는데, 뒤늦게 밝혀지는 이 사실에도 그저 놀랄따름이다. 100년 가까이 지나면 이렇게 우리가 주입식으로 받은 교육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사용되었는가 깨달으며, 허탈해진다. 그리고 팔봉 김기진은 김명순을 임노월의 맹목적 추종자로 매도했으며, 더이상 창작할 수 없을만치 모욕했다고 한다. 여기에 춘원과 방정환 등의 당시 문학권력이 배후에 있었단 사실을 분명히 우리는 기억하고 문학적 재평가와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김명순의 문학을 피해의식이 깃들었다 말하는 평자가 있다면 그녀의 글과 인생을 더 들여다보라고 말하고 싶다. 불의하고, 말도 안되는 남성권위주의 앞에 김명순은 미학적인 작품으로, 오직 창작예술로 대항하려 사력을 다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전영택은 ‘내가 아는 김명순’에서 “김명순은 변변한 작품 한 편을 남기지 못하고 마지막에 정신을 잃어버리고 구걸을 해서 연명하다가” 간 불행한 시인이라 썼다 한다. 잘못 쓰면 펜은 펜이 아니라 총과 칼이다. 잘 알지도 못하고 써댄 글로 남도 망치고, 스스로 인격과 작품성까지도 신뢰감을 떨어뜨리고 있다. 여기에는 5개국어를 하고, 시와 소설, 희곡까지 썼고, 당대 유명했기에 받았을 질투와 시샘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후손의 입장에서 문학과 인생이 무언지 다시 묻게 될 만치 참 부끄럽다. 김명순의 귀한 작품들은 광복이후 문학전집등 문학사에서 빠져 있음은 어쩔 수 없이 남성들이 쓴 문학사의 한계를 보여준다. 오래된 관습을 털고 정직하고 공정한 시선이란 늘 그리운 보석이다. 권력을 누리는 사람들이 놓치는 것이 정직하고 공정하고, 사려깊은 시선이 아닐까 한다. 더군다나 일제 암흑기의 문단 권력자들에게 무얼 기대할 수 있을까.
결국 김명순은 이런 끔찍한 루머에 시달리다가 일본으로 건너갔다. 생각할수록 비인간적 폭력이며,잔혹한 추방이었다. 당대의 최초의 서양 화가이며 문필가며, 진보적 여성 운동가였던 나혜석이 무덤조차 찾을 수 없는 무연고 행려병자로 삶을 마쳤듯이, 그녀도 움막속에서 양아들과 비참하게 살다가 미쳐 비극적인 삶을 마감했다는 설 앞에 1백년이 지난 독자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가부장제 사회의 이데올로기의 정조에 대한 관습과 횡포가, 또한 그 속에서 자란 남자들에 의해 당대를 이끈 재능과 의식을 가진 여성 어떻게 쫓겨나고 매장 당했는지 그녀의 시를 읽는 내내 눈시울이 뜨거워질 것이다.
김명순은 철저히 가부장적 사회의 남성작가들에 의한 디아스포라 Diaspora였다.
그녀는 디아스포라 Diaspora에 속한다. 디아스포라 는 그리스어 διασπορ?에서 온 말로‘씨를 뿌린다’의 뜻이며, 일반적으로 고국을 떠나 살고 있는 '이산의 백성'이거나 ‘추방당한 사람들’을 말한다. 우리나라 경우는 재일조선인, 조선족, 고려인, 이주노동자, 국외입양자들을 말할 수 있겠다. 김명순에 있어서는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가부장적 사회의 남성작가들에 의한 박해와 추방이었다. 김명순을 소외시키고, 고국에서 쫓아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명순은 학식에 주린 우리 민족을 구하고픈 열망에 뜨거웠고, 남녀 불평등 세상에 대항한 미학적인 작품을 남긴 1세대 여성시인었다
김명순은 1세대 여성시인으로 신여성의 자의식이 뚜렷하게 드리운 시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녀의 시속에 피해의식을 운운하는 평문 조차도 남성 위주의 가치관에서 배여 나온 글일 뿐이다. 그녀는 남녀차이의 적극적인 극복과 여성의 순종과 정절을 요구하는 이상한 불평등을 뛰어넘으려는 몸부림과 내밀한 절규가 시속에 깊이 배여 있다. 또한 일본 강점기의 혹독한 조국 현실에 분노했고, 나라를 구하고 민족 발전을 위한 지식인의 사명을 가졌었다. 그것을 읽을 수 있는 김명순의 시 詩로 쓴 반생기 의 다음 구절이 있다. 인생선배로서 이 시는 백석에 비견되거나 앞선다는 생각이 든다. 평안도 방언을 살려 우리의 전통과 당대의 문화를 살필 수 있는 값진 작품에서 그녀가 조국을 구하고픈 열망이 얼마나 컸던지 살필 수 있다.
야학교안에는 여급의 전횡
성당안에는 스파이種類의 출몰
사람을낚는 총銃알 눈동자들
외로운 내한몸 의심疑心스러웟든가
머리를 숙이고 생각하여도
동경인사 반갑지안코
고난스런 살림 칠,팔년에
열렬한 정열올라왔다.
그學校 그聖堂 그대로
우리조선에 옮겨 올까
학식에 주린 우리들
정결한 마음씨로 오리랄가
김명순은 당당히 조국에 살고 싶어했다. 학식에 주린 우리 민족을 구하고픈 열망과 고뇌는 자신의 참담한 생활의 고뇌만큼 컸다. 이제라도 그녀를 매장했던 당대 문학의 정당한 평가와 자리매김으로 그녀를 애도하고 싶다
그녀를 위해 산 꽃의 향기와 침향은 100년의 시간을 흐릿하게 지워가고 있다. 그녀가 사라진 세상에 작품이 남아 그녀가 어떻게 살았으며, 당대의 분위기를 세세히 읽을 수 있었다. 인생이 허망할지라도 무언가 조금씩 진실되게 바꾸고, 바꿔지는 것이 눈물겹다. 자살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치열하게 작품을 남겨준 그녀가 고맙다. 그 작품들이 남아 한 시대의 증거하고 있다. 당대의 풍경과 색과, 감각, 향기가 100년 가까이 거짓루머와 거짓말들로 그녀가 어떻게 매장 당했는지 온 국민이 다 알고 진실을 알고 그녀만의 올곧고 한국의 정감을 애절하게 표현한 시들이 많이 사랑받길 기도한다.(시인.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