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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시대 일반
· ISBN : 9791196407650
· 쪽수 : 456쪽
책 소개
목차
서언
국왕과 지배층의 소통과 불통 • 7
1부
국왕과 문관의 소통 구조 • 21
Ⅰ. 관료 체제 속의 소통 구조 23
1. 경관 체계와 소통 구조 25
2. 외관 체계와 소통 구조 36
Ⅱ. 국왕과 문관의 공적 소통 구조 41
1. 조회(朝會) 42
2. 윤대(輪對) 47
3. 외관 인견(引見) 54
Ⅲ. 경연(經筵)을 통한 소통 구조 63
1. 경연 규식 65
2. 경연 내용 76
Ⅳ. 언로를 통한 소통 구조 85
1. 차자(箚子) 86
2. 구언(求言) 89
3. 유소(儒疏) 93
2부
국왕과 무관의 소통 구조 • 99
I. 군사제도 속의 소통 구조 101
1. 국왕과 오위제 체제 101
2. 국왕과 오군영 체제 113
Ⅱ. 군사권 발휘를 통한 소통 구조 123
1. 발병부(發兵符)의 이용 123
2. 선전관(宣傳官)의 파견과 활용 133
3. 열무(閱武)와 진법 훈련 143
Ⅲ. 격려와 시험을 통한 소통 구조 152
1. 호궤 152
2. 활쏘기 시험 159
3부
국왕과 공신의 소통 구조 • 163
Ⅰ. 국왕과 훈봉공신의 소통 구조 165
1. 공신의 개념과 종류 165
2. 훈봉공신의 책봉 170
3. 회맹제와 회맹연 179
Ⅱ. 국왕과 배향공신의 소통 구조 197
1. 종묘와 문묘의 제향 197
2. 불천위와 치제(致祭) 218
4부
국왕과 친인척의 소통 구조 • 231
I. 국왕과 종친의 소통 구조 233
1. 국왕과 종친의 관계 233
2. 봉작(封爵) 240
3. 왕실 시위(侍衛) 261
4. 진연(進宴)․진찬(進饌) 273
Ⅱ. 국왕과 의빈․외척의 소통 구조 283
1. 문후(問候)와 하례(賀禮) 284
2. 선물[物膳]과 증여 293
5부
복식으로 본 국왕과 양반의 소통 구조 • 305
I. 관복을 통한 소통 구조 307
1. 구장복과 칠장복, 제복 309
2. 강사포와 조복 347
3. 곤룡포와 흑단령, 상복 360
4. 군복과 융복 381
5. 적의, 예복 388
Ⅱ. 선물과 잔치를 통한 소통 구조 399
1. 이엄 403
2. 표리 410
3. 잔치 419
참고문헌 • 430
색인 • 442
저자소개
책속에서
[서 언]
국왕과 지배층의 소통과 불통
이 책은 총 4책으로 구성된 ≪조선 국왕의 리더십과 소통≫ 시리즈 중에서 두 번째 주제인 ‘국왕과 지배층의 소통과 불통’을 다루었다. 본 주제에는 총 5명의 연구자가 참여하여 다섯 가지 측면에서 ‘국왕과 지배층의 소통과 불통’을 검토하였다. 첫 번째 연구자는 ‘국왕과 문관의 소통 구조’, 두 번째 연구자는 ‘국왕과 무관의 소통 구조’, 세 번째 연구자는 ‘국왕과 공신의 소통 구조’, 네 번째 연구자는 ‘국왕과 친인척의 소통 구조’,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연구자는 ‘복식으로 본 국왕과 양반의 소통 구조’를 검토하였다.
본 책의 검토 대상인 ‘국왕’, ‘문관’, ‘무관’, ‘공신’, ‘친인척’은 명실상부하게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지배층이었다. ‘국왕’과 ‘친인척’은 왕조국가 조선의 공식적인 최고 지배층이었다. ‘공신’은 조선왕조를 세우고 유지해온 핵심 지배층이었다. ‘문관’과 ‘무관’은 양반 관료체제를 지향한 조선왕조의 명실상부한 지배층이었다. 이들이 바로 조선왕조를 대표하는 지배층이었음은 재론할 필요도 없다. 조선시대 정치안정은 바로 이들 지배층의 소통과 불통에 직결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왕과 지배층이 원활하게 소통하였을 때, 조선왕조는 정치안정을 이루었다. 국왕과 지배층이 불통하여 대립하였을 때, 조선왕조는 정치안정을 이루지 못하였다. 바로 그런 때 모반, 역모, 고변 등이 만연하곤 했다.
본 책의 검토 대상 중에서 ‘복식으로 본 국왕과 양반의 소통 구조’는 다른 주제와 비교할 때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주제는 조선왕조를 대표하는 지배층 그 자체인데, 본 주제는 특이하게도 지배층이 아니라 ‘복식’이기 때문이다. 본 책에서 지배층 이외에 또 ‘복식’을 첨가한 이유는 ‘예악’을 중시한 조선왕조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주제가 ‘복식’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조선왕조는 주자성리학을 건국이념으로 하여 성립한 국가였다. 조선의 지배층은 자신들 사이의 소통과 정치 안정 및 국제관계 확립 등에 필요한 다양한 제도와 관행을 주자성리학에 입각하여 구상하고 실천했다. 조선시대의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는 바로 그런 구상과 실천을 대표하는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길례, 가례, 빈례, 군례, 흉례의 5례로 구성된 <국조오례의>는 조선왕조의 내치와 외교가 ‘예악’에 입각했음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 <국조오례의>에서 강조되는 것은 당연히 ‘예악’이지만, 그 ‘예악’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대표적인 상징물이 바로 ‘국왕과 양반의 복식’이었다. 따라서 ‘복식으로 본 국왕과 양반의 소통 구조’는 조선시대 국왕과 지배층들이 구상한 예악적 소통 구조를 시각적으로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주제라는 판단에서 본 책의 주제에 포함시켰다.
본 책의 공통 주제인 ‘국왕과 지배층의 소통과 불통’에서는 국왕이 핵심 지배층인 양반과 맺은 다양한 소통 방식을 공식?비공식적 측면에서 탐구하였다. 조선시대 양반에는 문반과 무반은 물론 공신, 왕의 친인척 등 다양한 층위가 존재했다. 본 연구에서는 국왕이 각 계층과 맺은 소통 방식을 세분화해 심층적으로 검토해 국왕과 양반의 사이에 이루어진 소통 방식의 전모를 해명하고자 하였다. (이하 생략)
Ⅰ. 관료 체제 속의 소통 구조
조선의 관료 체제는 유학 사상을 바탕으로 짜여 있었다. 조선을 건국한 신흥사대부는 중앙집권적인 국가를 지향하였다. 신흥사대부가 중앙집권적 국가의 틀을 만드는데 사용한 주요 텍스트는 <주례>였다. <주례>에서는 중국 주나라를 강한 통제력이 있는 중앙집권적 국가의 원형으로 묘사하고 있다. 송나라의 고문 학자들은 이 <주례>를 내세워서 중앙에서 사회 개혁을 주도하는 국가를 만들려고 하였다. 조선을 건국한 신흥사대부 역시 송나라의 고문에 큰 영향을 받아서 중앙집권적 국가 건설을 꿈꾸었다.
신흥사대부가 청사진으로 제시했던 유학적 이념 하에서의 중앙집권적 국가 관료체제는 어떠한 것이었을까? 그것은 정도전이 편찬한 <조선경국전>이나 <경국대전>에 잘 나타나 있다. <조선경국전> 치전治典 총서에서 총재?宰는 백관을 통솔하고 만민을 다스리는 중요한 직책이며, 인군人君의 직임은 총재 한사람을 잘 정하는데 있다고 하였다. <경국대전>에서는 정1품아문인 의정부가 백관을 총괄하고, 서무를 공평하게 하며 음양을 다스리고, 나라를 경영한다고 명시하였다.
정도전의 <조선경국전>에서 총재 1인의 직임이었던 ‘백관 총괄’이 <경국대전>에서는 의정부의 직임으로 확대되었다. 두 법전에서 변함없이 지향하는 바는 나라 경영의 최고 직임은 국왕이 아닌 재상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국왕의 역할은 의정부의 재상을 잘 선택하여 임무를 맡기는 것이다. 국왕이 관료 체제의 최고 정점에 있어 전권全權을 가진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재상을 선임하는 기능을 가진 행정 체제의 한 부분일 뿐이다. 국왕이 행정 체제의 일부분이라는 의식은 주희에게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국왕은 나라를 경영할 재상을 잘 선별해야 하고, 고위 관료들이 제시하는 정책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국왕이라고 해서 모두 현명한 자질을 가진 것은 아니다. 국왕이 자신의 지위에 걸 맞는 자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학문에 힘써야 한다. 국왕은 진정한 유학자를 초청해서 학문을 논해야 하며,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학문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 조선에서는 이러한 사상적 바탕 위에 국왕의 자질 향상을 위한 경연經筵이 주요 관서로 자리를 잡았다.
학문 이외에도 국왕이 인재를 잘 알아보아야 하고, 국가 정책에 대한 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실정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아랫 사람의 이야기를 잘 경청함으로써 국왕의 현명함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왕이 관료를 포함한 백성들의 사정을 들을 수 있도록 언로가 열려 있어야 한다. 조선에서는 국왕과 관료의 소통을 매우 중시하여 정사에 참여하지 않아서 국왕을 만날 수 없는 당하관까지도 국왕을 대면할 수 있는 만남의 장을 마련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