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96842017
· 쪽수 : 170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_ 엄마의 사계절을 회상하며
따스한 봄을 닮았던 엄마
식탁 위에서 피어나던 온기
초여름 산딸기, 입안에서 터지는 추억 … 16
남편과 다툰 후 떠오른 엄마의 밥상 … 18
잘 차려진 한 그릇 음식의 힘 … 22
냉장고 한 켠의 소고기뭇국 … 24
한겨울, 화로 같았던 집
엄마가 쓰던 책상이 내게 오던 날 … 29
언제나 돌아오고 싶도록 … 31
연애시절 곰 인형의 새 주인 … 35
여전히 뜨거운 엄마의 일터
엄마, 지금 뭐하고 있어요? … 39
엄마가 날 두고 떠났다면 … 41
프랑스 한 달 살기를 응원하며 … 45
싱그러운 여름을 닮았던 엄마
넓은 세상을 만나는 법
작은 도서관 버스, 그 안의 큰 세상 … 52
국제관계학 그리고 해외 마케팅 … 55
남편의 케냐 발령, 애써 웃으며 떠나다 … 57
엄마가 너의 활이 돼 줄게 … 61
여행하듯 인생을 사는 비밀
내 영혼의 곱창국수 … 66
암보셀리 204호, 그곳의 작은 발코니 … 70
적도의 태양보다 뜨거운 추억 … 74
마음을 전하는 다정한 시선
보온 도시락보다 따뜻했던 손편지 … 78
트렁크를 가득 채웠던 마카다미아 … 81
나의 영원한 코치, 바로 당신 … 83
선선한 가을을 닮았던 엄마
재능이라는 우주를 만날 수 있도록
대단한 아이라는 달콤한 착각 … 92
그림책이 속삭여 주던 어떤 미래 … 97
고마워요, 이만큼 살게 해줘서 … 98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롤모델
만능손에 대한 비화 … 103
슬프고 반가운 엄마의 부장승진 … 105
돼지머리와 시루떡을 앞에 두고 … 110
미워도 다시 한 번
초등학교 입학식, 빨간 코트를 입다 … 116
엄마가 되려고 태어난 건 아니잖아 … 119
세상 하나 뿐인 너 … 124
시리던 겨울을 닮았던 엄마
예고없이 찾아온 고난 앞에서
절대 못 참아, 내 자식 춥고 배고픈 것 … 132
타인의 상처를 어루만질 때 생기는 힘 … 135
엄마, 많이 아팠지? … 137
인생을 춤추게 할 시와 음악
밤하늘에 울려퍼진 ‘아침이슬’ … 143
첼로 연주와 찰리 채플린을 사랑한 여자 … 145
모나미 볼펜으로 눌러 쓴 슬픈 시 … 147
두 돌 아이, 음악에 빠지다 … 150
백 번 만 번 믿어주는 힘
사라진 아빠의 빈자리 … 157
괜찮다, 이까짓 제적 통지서 … 159
넌 다시 돌아오게 돼 있어 … 164
책속에서
[봄을 닮은 엄마] by 김혜인
엄마는 돌이 안 된 나를 데리고 알레스카를 경유해 프랑스로 향했다. 17시간이 걸린 여정이었다. 러시아와 중국의 영공으로 비행기가 다닐 수 없던 그 시절, 엄마는 나를 떼놓고 혼자 갈 수 없어 아빠를 따라갔다. ‘그때 너를 두고 가지 못해서 후회된다’라고 조금이라도 원망 섞인 말을 들었다면 차라리 덜 미안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말을 내게 조금도 내뱉지 않았다. 온종일 둘이서 함께 대화도 하고 벼룩시장 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고 말하는 엄마를 보면서 여러 감정이 교차하곤 했다.
가끔 혼자서 엄마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본다. 엄마가 그때 나를 두고 공부하러 갔더라면 엄마의 삶에서 어떤 부분이 달라졌을까? 엄마가 원하는 꿈들을 이룰 수 있었을까? 나는 할머니 손에서 어떻게 자랐을까?
엄마의 꿈과 나를 맞바꿨다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는 종종 다시 태어난다면 스튜어디스를 하고 싶다거나, 프랑스 대사관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한다. ‘다시 태어난다면’이라는 조건을 꼭 달아서. 이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딸로서, 같은 여자로서 미안함을 느꼈고, 시간이 지나면서 미안함은 더 커졌다. 엄마는 그런 아쉬움을 달래고자 집 안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쉴 새 없이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다재다능했던 재능과 열정을 집 안에서 펼쳤거나. 이유가 무엇이든 아쉽고 미안했다. 이런 엄마와의 대화는 학창 시절 내내 계속 마음속에 빙빙 맴돌았고,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더욱더 깊은 고민에 빠지게 했다.
내가 엄마를 통해 느꼈던 집안의 따뜻함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에 그것을 내 아이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엄마가 하고 싶었던 일에 대한 아쉬움을 나는 느끼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나만의 ‘일’을 가져서, 아쉬움이 또 다른 아쉬움을 낳게 하고 싶지 않았다.
[여름을 닮은 엄마] by 최진주
신이 세상 모두를 보살필 수 없어서 집마다 엄마를 보냈다는 말이 있다.
그 무렵, 엄마는 어쩌면 ‘작은 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을 따라, 케냐에 오고 나는 혼자만의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작아진 내 마음을 어찌할 도리가 없어 축 늘어진 화초처럼 살고 있었다. 그런 딸을 살리기 위해 엄마는 케냐로 한걸음에 왔다. 엄마를 다시 만나고, 엄마의 햇살 같은 웃음을 보니 다시 내게 태양이 비추기라도 하듯 온몸에 생기와 활력이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엄마와 나는 암보셀리의 짙은 아몬드 컬러 발코니에 앉아 새소리를 듣고, 아침을 맞으며 끊이지 않는 이야기들을 나눴다. 케냐라는 낯선 땅이 우리에게 주는 새로운 기회, 아이들을 이런 자연과 함께 키우는 귀한 경험, 순박한 케냐 사람들의 모습과 정취가 주는 기쁨, 쉼표와 물음표로 점철된 것 같은 이 시간이 주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리고 엄마는 한국에 돌아오면 내가 배우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다 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마음에 온도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엄마와 매일 그곳에서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며 한겨울 같던 나는 매일 조금씩 따뜻해졌다. 이제는 가벼운 옷차림만 한 채 밖으로 나가도 될 것 같았다.
“고마워요. 엄마... 저를 언제나 믿고 응원해줘서.”
“고맙긴. 너와 함께 보내는 이 시간이 엄마에겐 가장 귀한 대접이고 선물인걸.”
바다 건너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 풍경화 같은 정원을 바라보며 우리가 나눴던 아늑한 대화들은 적도의 햇살처럼 눈부시게 내 마음을 밝히고, 야생의 초원같이 날 깨어나게 했다. 케냐에 있으면서 여러 곳을 여행했지만, 내 마음속의 명장면은 그 순간이었다. 일상을, 삶을 여행하는 법을 다시 일깨워주던 엄마. 지구 저편의 낯선 곳도 자신의 색으로 물들이는 그녀와 함께한 케냐의 암보셀리 204호, 그곳의 작은 발코니에 마주앉은 엄마와 나. 나를 살린 그날의 대화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