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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판타지/환상문학 > 외국판타지/환상소설
· ISBN : 9791197461477
· 쪽수 : 564쪽
· 출판일 : 2023-11-20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퍼트리셔가 울었다.
월리스 프라이스는 누가 울면 싫었다.
살짝 눈물을 비치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든 온몸을 흔들며 흐느끼든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울어봐야 소용없는 일인데 그는 시간만 낭비하고 있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퍼트리셔는 눈물로 뺨이 젖은 채 월리스의 책상에 놓인 크리넥스 상자를 향해 손을 뻗으며 물었다. 그는 월리스가 인상 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어떻게 모를 수 있지?” 월리스가 반문했다. 그가 오크나무 책상 위로 손깍지를 끼며 등받이에 몸을 묻자 아르퍼 아스톤 의자에서 끼익하는 소리가 났다. 월리스는 이 신파극이 금방 끝날 리 없겠다고 생각하며 표백제와 윈덱스 세정제 냄새에 얼굴을 찡그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야간 근무 조 직원이 그의 방에 뭘 쏟았는지 탁하고 역겨운 냄새가 났다. 그는 전 직원을 상대로 자신은 코가 예민해서 이런 환경에서는 일할 수 없다고 알리는 공문을 발송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건 정말이지 야만적이었다.
월리스는 오후 햇살이 들어오지 않도록 사무실 창문에 달린 블라인드를 닫고, 에어컨을 온몸이 얼어붙을 만큼 세게 틀어 놨다. 덕분에 직원들은 계속 똘망똘망한 정신을 유지했다. 3년 전에 한 직원이 실내 온도를 21도로 높이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폭소를 터뜨렸다. 더우면 사람이 게을러지고 추우면 계속 움직이게 됐다.
월리스의 방 밖에서는 회사가 기름칠이 잘된 기계처럼 바쁘게, 엄청난 인풋이 없어도 자기 혼자 알아서 잘 돌아갔다. 딱 그가 바라던 대로였다. 그가 모든 직원을 일일이 직접 관리해야 했다면 이 정도로 회사를 키우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계속 예의 주시하고는 있었다. 그의 직원들은 죽기 살기로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에게 제일 중요한 사람은 고객이었다. 월리스는 자신이 점프하라고 지시하면 모든 직원이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냥 기계처럼 점프하길 원했다.
기계가 고장 나면 마땅히 부품을 교체해야 한다. 기계가 그냥 망가지게 내버려둘 수는 없으니까. 우리도 마찬가지다. 절대 실수를 범하지 않는 인간은 없고, 나사 빠진 자들을 그냥 두려고 지금까지 그렇게 열심히 일한 게 아니었다. 지난해에는 이 회사가 역사상 가장 엄청난 수익을 냈다. 올해는 심지어 그 액수를 능가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세계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든 누군가는 항상 고소를 당했다.
“진심이시로군요.” 퍼트리셔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심장 마비 일으킬 일 있어, 이런 거 가지고 농담하게? 자, 이제 실례하지. 할 일이 산더미―”
“이 괴물!” 퍼트리셔는 고함을 질렀다. “나는 사과를 받아야겠어요!”
어련하실까. “사과는 내가 뭔가를 잘못했을 때 하는 건데, 나는 잘못한 게 없어. 오히려 내가 사과받으면 모를까.”
퍼트리셔의 악다구니에 사과하는 내용은 없었다.
월리스는 여전히 침착하게 인터컴에 달린 버튼을 다시 눌렀다.
“셜리? 경비 와 있어?”
“네, 대표님.”
“좋아. 내 머리로 뭐가 날아오기 전에 들여보내.”
월리스 프라이스가 마지막으로 그를 보았을 때 퍼트리셔 라이언은 월리스가 협박죄를 두고 한 경고를 무시한 채 제랄도라는 이름의 거한에게 끌려가며 발길질하고 비명을 질렀다. 뜨겁게 달군 부지깽이를 목구멍에서 아랫도리―그가 쓴 표현이었다―까지 쑤셔 넣어 고통으로 몸부림치게 만들겠다는 퍼트리셔의 한결같은 투지는, 인정하기 싫지만 인상적이었다. “이겨낼 수 있을 거야!” 월리스는 그 층 전 직원이 듣고 있다는 걸 알았기에 자신의 방문 앞에서 외쳤다. 그에게도 배려심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문이 닫히면 창문이 열린다고들 하잖아.”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르 닫히며 퍼트리셔의 독설을 중간에 잘랐다.
“아, 이제 좀 살겠네. 다들 다시 일에 매진합시다. 금요일이라고 해서 게으름 피워도 되는 건 아니야.”
여기저기서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완벽해. 기계가 다시 순조롭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월리스는 방 안으로 들어가 등 뒤로 문을 닫았다. 그는 그날 오후 장학금 문제를 처리하겠다는 인사팀장의 이메일을 확인했을 때 말고는 퍼트리셔를 떠올린 적이 없었다. 가슴이 또 찌릿했지만 걱정할 만한 문제는 아니었다. 퇴근길에 텀스 제산제나 한 통 사면 됐다. 그는 흉통에 대해―그리고 퍼트리셔에 대해서도―다시 생각하지 않았다.
계속 전진하는 거야. 그는 이메일을 직원 고충 처리 폴더로 옮기며 속으로 주문처럼 외웠다.
계속 전진하는 거야.
월리스는 기분이 좋아졌다. 적어도 이제는 조용했다. 다음 주에 새 법무사가 출근하면 그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고 똑똑히 알려주기로 마음먹었다. 나중에 무능함을 맞닥뜨리느니 일찌감치 공포감을 조성하는 편이 나았다.
하지만 그는 그럴 기회를 누리지 못했다.
월리스 프라이스는 이틀 뒤에 죽었다.
“떠난다.” 월리스는 중얼거렸다. “휴고와 함께.”
메이는 고개를 젓다가 중간에 멈췄다. “뭐,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네. 그가 사공이니까.”
“뭐라고?”
“사공.” 메이는 다시 한번 말했다. “너를 태우고 강을 건널 사람.”
월리스의 머릿속이 미친 듯이 돌아가고 있었다. 뭐 하나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너무 거대해서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네가―”
“아우. 내가 마음에 들었구나? 고마워라.” 메이는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냥 사신이야, 월리스. 너를 사공한테 무사히 데려다주는 게 내 일이고. 나머지는 휴고가 알아서 할 거야. 두고 보면 알게 돼. 그를 찾아가면 기분이 좋아질 거야. 그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거든. 강을 건너기 전에 성가시고 찜찜한 부분을 그가 전부 설명해줄 거야.”
“강을 건넌다.” 월리스는 머릿속이 멍해졌다. “…어디로?”
메이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당연히 다음 단계로 건너가는 거지.”
“천국으로?” 끔찍한 생각이 천둥처럼 월리스를 강타하자 그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지옥으로?”
“그렇지.”
“그 대답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잖아.”
“나도 알아. 이거 재밌네. 나 지금 무지 재밌는데. 너는 안 그래?”
아니, 월리스는 전혀 재미없었다.
메이는 월리스를 재촉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늘이 분홍색과 주황색으로 물들고 3월의 태양이 지평선을 향해 점점 저물 때까지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아래윗니로 담배를 물고 코로 연기를 내뿜는 여자가 능수능란하게 운전하는 불도저가 등장할 때까지. 무덤은 월리스가 생각했던 것보다 금세 메워졌다. 여자가 작업을 끝냈을 무렵 샛별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지만 도시의 빛 공해 때문에 희미하게 보였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월리스 프라이스의 잔해라고는 봉분과, 벌레들의 먹이가 될 시신뿐이었다. 엄청나게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그럴 줄은 미처 몰랐고 정말 이상했다.
월리스는 메이를 쳐다보았다.
메이는 그를 보며 미소 지었다.
월리스는 “내가….”라고 입을 열었지만 어떤 식으로 말을 맺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메이는 월리스의 손등을 건드렸다. “맞아, 월리스. 이거 진짜야.”
놀랍고 놀랍게도 월리스는 메이의 말을 믿었다.
메이가 물었다. “휴고 만나러 갈래?”
아니다. 월리스는 휴고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도망치고 싶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별을 향해 주먹을 들고 너무한 거 아니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목표가 있었다. 할 일이 너무 많이 남아 있었는데 이제는 절대 그걸 할 수가….
월리스는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흐르는 게 느껴지자 화들짝 놀랐다. “나한테도 선택권이 있나?”
“이승에서? 항상 그렇지.”
“그럼 저승에서는?”
“저승에서는 좀 더 엄격하게 정해져 있지. 그건 다 당신을 위해서고. 진짜야.” 그는 얼른 덧붙였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어. 휴고가 전부 설명해줄 거야. 휴고는 대단한 사람이야. 너도 보면 알겠지만.”
그 말을 들어도 월리스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메이가 일어나 손을 내밀자 그는 1, 2초 정도 쳐다보다 그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월리스는 하늘 쪽으로 고개를 돌려 숨을 마시고 뱉었다.
메이가 말했다. “이번에는 느낌이 조금 이상할지 몰라. 거리가 아까보다 머니까 당연히 그렇겠지? 너도 모르는 새 끝날 거야.”
월리스가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메이가 다시 손가락을 튕겼고, 모든 게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