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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러시아소설
· ISBN : 9791198375322
· 쪽수 : 332쪽
· 출판일 : 2024-06-24
책 소개
목차
책 머리에
농담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진창
귀여운 여인
검은 수사
낯선 여인의 키스
6호실
신부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그는 딸과 대화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 그녀를 만나러 가는 중이지만 아무도 이러한 사실을 모르며 어쩌면 영원히 비밀로 남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두 개의 삶을 살았다. 하나는 의지만 있다면 확인할 수도 있고 알 수도 있는 삶, 상대적 진실과 거짓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의 지인이나 친구들의 삶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삶이었다. 또 다른 삶은 비밀리에 흘러가고 있었다. 우연의 일치로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지만, 어쩌면 그에게 소중하고 흥미롭고 꼭 필요하며, 그가 진심으로 대하는 모든 것, 즉, 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일어났다. 이를테면 은행일이나 클럽에서의 논쟁이나 ‘저급한 족속’이라든지, 아내와 함께 지인들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아 가는 일 같은, 진실을 숨기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만든 거짓된 빈 껍데기 같은 것은 모두 표면으로 드러났다.?그는 다른 사람들 역시 자기와 같은 삶을 살거라 치부하며, 눈으로 본 것을 믿지 않았다. 밤이 되면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듯이 인간은 누구나 진실된 인생, 가장 흥미로운 삶을 감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사람들은 비밀 덕분에 버틸 힘을 얻으며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에 교양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그토록 애쓰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들의 사랑이 언제 끝날지 알 수는 없지만 막연하게나마 앞으로 꽤 오랫동안 지속되리라 확신했다. 시간이 갈수록 그에 대한 안나 세르게예브나의 마음은 더 깊어졌고, 그녀는 그를 무척 사랑했으며,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이 끝날 수밖에 없다고 그녀에게 말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말한다 해도 그녀는 그의 말을 믿지도 않았겠지만.
그는 그녀를 달래주고 농담도 할 요량으로 다가가서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그 순간,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벌써 흰 머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이토록 늙고 추하게 변한 자신이 문득 낯설었다. 그의 손아래 놓인 그녀의 어깨는 따뜻했고, 떨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삶, 아직도 이토록 따뜻하고 아름답지만 그의 삶처럼 시들어 생기를 잃게 될 그녀의 삶이 측은해졌다. 그녀는 왜 그를 이토록 사랑하는 것일까? 그가 만난 여자들은 늘 그의 본 모습을 보지 않았고, 그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상상 속에 등장시키며 살면서 그토록 간절히 만나길 원하던 사람으로 포장하여 사랑했다. 나중에 자신들의 실수를 깨닫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그랬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와 함께 해서 행복하지 못했다. 시간은 흘렀고 여러 여자들과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사랑한 적은 없었다. 수많은 감정을 느끼긴 했지만 그 안에 사랑은 없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가 하얗게 세기 시작한 지금에 와서야 그는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사실 나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니까!″
중위는 미안하다는 듯 눈을 깜빡거리면서 속삭였다.
″정말이야, 나도 이해가 안 간다고! 나도 이렇게 끔찍한 여자는 난생처음이야! 예쁘지도 않고, 똑똑하지도 않은데, 그러니까 뻔뻔한 데다 특유의 냉소주의에 끌렸달까….″
″뻔뻔한데다 냉소적이라...참 정직하네! 뻔뻔함과 냉소주의가 그렇게 좋으면 더러운 돼지를 잡아다가 산 채로 잡아먹지 그랬냐? 돈이라도 적게 들었을 텐데, 2천 3백루블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