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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종교에세이 > 기독교
· ISBN : 9788901148489
· 쪽수 : 268쪽
책 소개
목차
빈센트|고샅길|각시붕어|미역국|세발자전거|가라사대|피아노|고무신|종지기|거지|고구마에 동치미|흰눈이 하얗게|생신날|근심 걱정|나뭇광|겨울 손님|고춧가루|이틀밤|장난감 소방차|꽃놀이|연등|복그릇|달 이름|자전거포|담배 한 갑|나무 그늘 아래|우산|부채 바람|부라보콘|상사화|무화과나무|어우렁더우렁|산봉우리|창호지|빚잔치|홍단풍|동병상련|홍어회|텔레비전 수리공|휘파람 소리|선무당|누가 말려|산사 음악회|마중물
작가의 말|추천의 글
저자소개
책속에서
예배 시간에 느닷없이 “저그요!” 하고 누가 손을 높이 들어서 보았더니 진동댁 할매였다.
“왜요?”
“조퇴할라는디 나 잔 시켜주쇼.”
“무슨 일이신데요.”
“밖에 잔 보시란 말이요. 소낙비가 안 내리능가요. 마당에 빨래도 널어놨고 고추도 뽀슬라고(빻으려고) 팽상에 널어놨당게요.”
설교의 절정부였는데 이하 내용은 죄다 까먹을밖에. 할머니는 말씀과 동시에 조퇴해 밖으로 나가셨다. 학교에서 조퇴는 봤어도 교회에서 조퇴는 처음 보았다. 내가 이 시〈마중물〉을 처음 낭송했던 날 예배 풍경이 그랬다.
햇살 쨍쨍한 날, 빨래가 보송보송 잘 마를 법한 날에도 할매는 또다시 조퇴를 감행했다.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이런 귀여운 분들이 주눅 들지 않고 큰 소리 높이며 떵떵거리는 재미난 시골 교회를 꿈꿨다.
남녘교회에도 하루에 한 차례씩 우체부 아저씨가 오신다. 남프랑스 프로방스 못지않게 이곳도 햇살이 부시고 날이 따뜻하며 꽃과 청보리가 출렁거리는 남녘 땅이다. 나는 우체부에게〈폴 고갱의 안락의자〉에 나오는 듯한 의자 하나를 앉으시라 권한다. 고흐가 고갱을 추억하며 그린 그 그림 속 의자엔 책 한 권과 촛대가 나란히 있었지. 우체부가 보통 내게 가져다주는 건 소포로 배달되어오는 책과 편지들이다. 가끔 촛불 아래에서 나는 책을 찬찬히 읽기도 한다.
밖으로 나다니느라 꽃들과 교인들에게 충실하지 못한 잘못을 반성할 겸 교회 아래 마당을 비질하고 변소 청소도 했다. 아직 재래식 변소. 수세식을 놓자는 청도 있지만 불편한 삶이 가져다주는 행복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말렸다. 다음번 목사님은 아마도 수세식으로 바꿀 것이라고, 내가 머무는 동안은 이대로 살자고 했더니 협박으로들 아셨나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젊은 목사가 행여 도회지로 떠나버릴까 늘 노심초사하시는 어르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