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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청소년 > 청소년 문학 > 청소년 소설
· ISBN : 9788901293912
· 쪽수 : 192쪽
· 출판일 : 2025-04-21
책 소개
목차
적을 빚다
동굴
라희
백사
장
붉은 운동장
류웨이
장의 집
탈출
갈대밭
인천항으로
집으로
편지
작가의 말
리뷰
책속에서
교실 문을 열자 낡은 나무문이 삐걱거리며 귀를 아프게 했다. 나는 자리에 앉아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교실에서 아이들의 얼굴을 흘낏거렸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찰흙을 꺼냈다. 흙을 만지니 조금 진정이 됐다. 조물조물 흙을 굴려서 동그란 머리통을 만들었다.
오늘은 누굴 빚을까.
반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씩 뜯어본다. 곧 캐나다로 떠난다는 마이클, 아빠가 공안이라는 장, 미친 류웨이, 비슷비슷하게 생긴 양리와 왕웨이……. 삐뚤어진 얼굴, 무언가 숨기고 있는 얼굴, 표정 없는 얼굴들을 자세히 살폈다.
오늘은 류웨이로 하자. 나는 무릎 위에 동그란 흙덩이를 놓고 흙 속으로 조각칼을 넣었다. 칼이 흙을 파고들자, 흙 속에서 점점 표정이 드러난다. 몸속에 피가 조금씩 도는 느낌이다. 병마용의 병사들처럼 표정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조각하려면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반 아이들이 제격이다. 나를 괴롭히는 아이들이 전생에 내 적군이었다는 상상을 한다. 그렇게 어떤 아이를 다 조각하고 나면 그 아이에 대한 미움도 희미해진다.
그때였다. 형 앞으로 모래를 실은 커다란 덤프트럭이 나타났다. 덤프트럭은 형을 집어삼킬 듯이 달려왔다. 트럭이 날카로운 경적을 울리며 멈췄다. 형의 자전거는 이미 삼켜진 뒤였다.
형이 밝은 옷을 입었으면 괜찮았을까. 아니 트럭이 흰색이었다면, 서로 피할 수 있었을까. 아니다. 내가 좀 더 빨랐다면, 그랬다면 형은 안전하게 신호등을 건넜을 것이다. 내가 조금만 더 빨랐다면. 형이 돌아보고 나를 기다려 주지 않았더라면.
형을 끌어낼 때도, 형이 구급차에 실려 가는 동안에도 나는 계속 그 말만 중얼거렸다.
병원은 아수라장이었다. 의사 한 명이 나한테 소리를 질렀다.
"환자랑 무슨 관계예요? 학생! 무슨 관계냐고!"
"동생, 동생이요."
"보호자한테 연락하세요. 빨리!"